지난해 11월30일 대구 시민운동장. 대구FC와 경남FC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0-0으로 끝나면서 실낱같은 잔류 희망을 품었던 대구FC의 꿈은 물거품 됐다. 물론 승리했어도 잔류는 불가능했다. 같은 날 열린 강원과 제주의 경기에서 강원이 3-0으로 이기면서 대구가 12위가 될 가능성은 없었다. 하지만, 유종의 미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경기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선수들은 복받친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트랙을 돌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자 팬들 역시 같은 감정으로 흐느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쉬움의 눈물 속에서도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던 팬들의 모습이다. 일부 팬들이 강등이라는 결과를 원망하며 선수들에게 욕을 퍼붓자 대다수의 서포터들이 오히려 그 팬을 나무라는 장면도 나왔다. 도대체 왜 열심히 뛴 우리 선수에게 욕을 하느냐는 ‘응징’이었다. 클럽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그리고 따뜻한 ‘우리들의 축구단’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대구FC의 새 역사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 팬들만 있다면, 2부든 3부든 뛰는 곳이 중요하지 않다. 준비된 팬들을 향해 손을 벌리는, 대구FC의 ‘우리들의 축구단’ 운동을 응원한다. 사진= 스포츠공감 제공 |
대구FC는 오는 22일 오후 2시 대구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광주FC와의 개막전과 함께 ‘K리그 챌린지’를 시작한다. 구단은 이 경기부터 ‘2014시즌 후원회원’을 모집한다. 연간회원권(시즌권)을 폐지하고 새롭게 도입한 후원회원제는 1구좌 당 1만원에 가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구단을 운영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민들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냥 손을 벌리는 것은 아니다. 후원가입자에게는 ▲홈경기 입장권 할인 ▲무비플러스 연계 최대 6인까지 영화 할인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대구 구단 측은 “후원제를 통해 대구시민들과 기업이 ‘우리 지역의 구단’, ‘내가 후원하는 구단’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면서 “시민의 힘으로 재정난을 극복하는 시민구단의 마케팅 모델을 실현할 것”이라는 계획을 전했다. ‘기프트권’도 있다. 후원회원이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면, 대구FC 기프트권은 지인들을 위한 선물용이다. 5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기프트권은 대구FC 홈경기 입장 교환권 10장을 비롯해 대구FC의 후원사인 아웃백 황금점에서 제공하는 ‘키즈 찹 스테이크’ 쿠폰, 투썸플레이스 스타디움점에서 제공하는 ‘아메리카노’ 교환권, 대구FC 기념품 상품권이 함께 들어가 있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팬들에게 무엇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구FC의 받고자 하는 노력은 꽤나 흥미롭다. 그리고 이것은 의미 있는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지금 대구FC를 비롯해 많은 시도민구단들의 목표는 ‘성적’이 아니라 연고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작업이다. 모든 팀이 우승할 수는 없고, 그렇게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클럽도 상위권의 소수다. 그런데도 모두들 황새처럼 성큼성큼 다리만 찢고 있는 것이 K리그의 현실이다. 각자 클럽에 어울리는 지향점을 가져야한다. 결과가 다소 좋지 않아도 팬들의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우리 팀’에 대한 충성심 강한 팬들 속에서 자리 잡고자 하는 대구의 노력은 그래서 의미 있다.
J리그의 반포레 고후라는 클럽이 있다. 10여 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클럽이다.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간 4억엔(한화 약 42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던 쓰러져가는 클럽이었다. 회생은 어려워보였다. 전문가들은 해체만이 답이라고 했지만, 고후 시민들은 ‘아니다’를 외쳤다. 3만 명이 해체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서명에서 그친 것도 아니다.
재정을 돕기 위한 자발적 움직임이 나왔다. 유니폼을 무료로 세탁해주겠다는 팬이 있었고, 얼음을 제공해주겠다는 서포터가 있었다. 이런 도움이 하나둘 쌓이면서 경비를 절감할 수 있었다. 십시일반의 힘으로 반포레 고후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반포레 고후의 우미노 가즈유키 회장은 “팬들의 노력을 보며 이기지는 못해도, 적어도 지역민들에게 사랑 받는 팀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 다짐은 10여년 뒤 현실이 됐다. 현재 반포레 고후는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구FC는 올해 선수들이 착용할 유니폼 상의 뒷면에 ‘우리들의 축구단’이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선수들도 시민들도 모두가 하나 되자는 뜻이다. 2014년 캐치프레이즈는 <뜨거운 함성! 마카다 대구FC>다. ‘마카다’는 ‘전부’, ‘모두’를 의미하는 경상도 방언이다. 이 역시 뜨거운 함성으로 모두가 하나 되자는
지난해 마지막 경기가 열리던 날, 대구FC 팬들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플래카드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팬들이 없으면 우승도 의미 없다. 팬들만 있다면, 2부든 3부든 뛰는 곳이 중요하지 않다. 준비된 팬들을 향해 손을 벌리는, 대구FC의 ‘우리들의 축구단’ 운동을 응원한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