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11일 오전(한국시간) 끝난 2014 소치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레이스에서 화제를 모은 건 다니엘 그레이그(23·호주)였다.
전통적으로 빙상 경기에 약한 호주를 대표해 출전한 그는 쟁쟁한 선수들과 겨루며 높은 벽을 실감했다. 얀 스메켄스(네덜란드), 미셸 뮬더(네덜란드) 같이 메달을 목에 건 가운데 그의 이름은 순위표 맨 아래에 있었다. 최하위였다.
1,2차 레이스 합계 기록은 115초84였다. 70초대를 훌쩍 넘었다. 이렇게 뒤처진 건 1차 레이스 탓이 컸다. 그레이그는 1차 레이스에서 80초55로 1분을 넘겼다. 보통 34~35초대를 기록하는 걸 고려하면, 참담한 수준이다. 생애 첫 참가한 올림픽에서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그레이그의 뜨거운 열정이 너무 뜨거웠다. 오이카와 유야(일본)와 함께 16조에 속한 그레이그는 총성과 함께 두 팔을 좌우로 흔들며 힘차게 치고 나갔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앞섰다. 상체가 앞으로 쏠리면서 무게중심이 무너졌고,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자 했으나 왼발의 스케이트가 빙상에 걸려 앞으로 쓰러졌다. 반 바퀴를 돌아 빙상에 드러누운 그레이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아쉬워했다.
불운이었다. 그러나 기권은 없었다. 다시 일어나 스케이트를 밀면서 앞으로 나가 결승선을 통과해 레이스를 마쳤다.
자책감이 컸고, 그의 표정은 밝을 수가 없었다. 허무감이 컸을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다. 하지만 어떻게 준비했던 올림픽이었는가. 그레이그는 마음을 다잡고 2차 레이스에서 그 울분을 토했다.
2차 레이스 1조에 속한 그레이그는 빠르게 치고 나가면서 멋지게 코너를 돌았다. 1차
금, 은, 동을 싹쓸이한 네덜란드 3총사 못지않게 빛났다. 순위를 떠나 포기를 모르고 최선을 다하는 올림픽 정신에 걸맞은 ‘역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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