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골키퍼가 꼼짝도 못하는 궤적으로 날아간 손흥민의 슈팅은 정해진 지점에 ‘꽂혔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정확했다. 그렇게 상대 골망에 골을 꽂은 뒤 손흥민은 설명하기 어려운 세리머니를 펼쳤다. 아니, 즐겼다.
두 팔을 벌린 채 고개를 끄덕이던 그의 모습은, “내가 손흥민이다”라는 당당함부터 “별거 아니야”라는 호탕함 그리고 “도대체 어쩌자고 슈팅하게 내버려 둔거야”라는 거만함까지 섞여 있었다. 소름 돋는 쾌감이었다. 가깝게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모습이 오버랩 됐고 다소 멀게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그 유명했던 카리스마 에릭 칸토나도 연상되던 모습이다. 대한민국 축구선수가 그렇게 뻔뻔한 세리머니를 펼쳤던 기억, 흔치 않다.
↑ 손흥민에게서 호날두의 모습이 오버랩 됐고 멀게는 칸토나도 연상됐다. 대한민국 축구선수가 그렇게 뻔뻔한 세리머니를 펼쳤던 기억, 흔치 않다. 사진= MK스포츠 DB |
역습 상황에서 시드니 샘에게 패스를 받은 손흥민은 페널티에어리어 정면에서 과감한 오른발 슈팅으로 골문 오른쪽 상단을 꿰뚫었다. 경기 후 손흥민은 “항상 연습했던 장면이 오늘 빛을 봤다”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혹은 뿌듯하다는 듯 소감을 전했다. 골잡이로서의 타고난 감각과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연습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지체 없던 슈팅이었다. 볼 컨트롤을 한 번 더 했거나 잠시 망설였다면 상대 수비가 달려들 수 있었고 그렇다면 자유로운 슈팅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 찰나의 선택이 결국 결승골로 이어졌고 뮌헨글라트바흐 골키퍼를 흥분케 했다. 왜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냐는 동료를 향한 타박이었는데, 실상 손흥민의 과감한 판단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 셈이다.
‘망설임’이란 스트라이커가 가장 경계해야할 적이다. 잠시잠깐 고민하고 흔들리는 사이 결정적인 찬스가 허무한 기회로 되기 일쑤이고 이는 대한민국 축구가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고질병에 시달려야하는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역사 속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들은 항상 그 망설임에 발목이 잡혀 순도를 스스로 많이 떨어뜨렸다. 하지만 8일 새벽 손흥민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스스로를 향한 당당한 믿음 속에서 나온 슈팅과 이어진 뻔뻔한 세리머니는 슈팅을, 나아가 축구를 즐길 수 있기에 가능한 장면이다. 축구를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기본적인 바탕이다. 그것을 넘어 즐길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레벨’이 크게 달라지는 법인데 적어도 손흥민은 마지막 단계에서도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손흥민은 10대 나이에 출전했던 2011년 아시안컵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슈팅을 날렸다. A매치 데뷔와 다름없던 무대이고 위로 선배들이 수두룩했으나 풋풋한 새내기 손흥민은 개의치 않고 적극적으로 드리블했고 또 자신 있게 슈팅했다. 그 될 성 부른 모습이 8일 새벽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서의 뻔뻔한 세리머니를 낳
과거 ‘차붐’으로 통했던 차범근 해설위원의 발자취를 넘어서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 수준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손흥민은 충분히 손흥민의 역사를 남길 수 있는 자질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대한민국 축구사에 손흥민만큼 뻔뻔했던 골잡이가 있었을까 싶다. 그의 당돌한 뻔뻔함에 더욱 기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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