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이상철 기자]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 사냥에 도전하는 이광종호는 첫 출항부터 쓴맛을 봤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2 챔피언십 우승을 자신했지만 결승 문턱도 밟지 못했고, 절대 ‘아시아 No.1’이 아니라는 현실도 깨달았다.
환상을 깨줬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무대였다. 남은 8개월 동안 눈앞에 놓인 숙제가 적지 않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이를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데 빠듯한 게 현실이다.
이광종호의 항해가 순탄치 않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생각 외로 강했던 경쟁 국가들이었다. 우승국 이라크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시리아, 오만은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펼쳤다. 한국보다 적응하기 용이한 중동에서 열렸다는 점을 감안해도 꽤나 강렬했다. 골 결정력 부족으로 조별리그 탈락을 했지만 북한의 경기 내용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금메달 프로젝트를 무산시킬 가장 위협적인 요소가 될 터다. 이광종 감독은 “아시아축구가 상향평준화됐다”라며 경계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광종호의 가장 큰 숙제는 적을 알기 전에 내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부적인 문제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U-22 축구대표팀은 AFC U-22 챔피언십 4위에 그쳤다. ‘팀’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졌다. 남은 8개월 동안 이 숙제를 얼마나 풀어내느냐가, 28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그렇지만 무엇보다 하나로 끈끈하게 뭉치지 못했다. 냉정히 말해 ‘하나의 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우수하나, 이를 하나로 꿰지 못했다. 조직적인 연계 플레이는 실종됐다. 패스 미스가 여러 차례 나오는 등 세밀한 플레이가 실종됐다.
선수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주장 황도연(제주)은 “준비기간이 부족하면서 제대로 손발을 맞춰볼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보니 호흡이 맞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꽤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그는 “다들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였지만 약속된 플레이는 없었다. 그저 소속팀에서 했던대로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광종호 만의 팀플레이나 색깔이 없었다는 것이다.
‘팀’으로서 완성도를 키워야 한다는 건 이광종 감독도 인지하고 있다. 이광종 감독은 “남은 시간 동안 조직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실적으로 조직력을 다질 시간이 많지 않다. 3월 한 차례 평가전을 치르지만 소집기간은 짧다. 말 그대로 평가전일 뿐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이 열리는 동안, 2~3주 동안 소집을 할 예정인데, 사실상 이 기간에 기본 뼈대와 조직력을 다듬어야 한다.
4년 전 홍명보호는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파주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소집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소집 명단 가운데 구자철(마인츠),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 김승규(울산) 등 13명이 3개월 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혀 동메달을 땄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 이광종호로선 이 기간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 훈련의 효율도 키우며 ‘개인’을 버리고 ‘팀’
실상 이번 대회를 임하면서 준비기간이 아주 부족했던 건 아니다. 이광종호는 지난해 12월 16일 경남 양산에 첫 소집해 손발을 맞췄다. 대회 개막 1달여 전부터 만들어가고 있었다. 비시즌 기간이고,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하나, 준비가 그만큼 완벽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그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rok1954@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