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지난해 여름 전북의 ‘녹색 독수리’ 에닝요가 장춘 야타이로 떠났을 때, 그리고 올해 초 득점왕 3연패에 빛나는 데얀이 중국행을 선언했을 때 K리그 팬들은 적잖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A급 플레이어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섭섭함이었다. 이제는 외국인 선수라도 잘하면 사랑도 받고 가치도 인정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2012년 말 너무도 조용하게 한국을 떠났던 에스티벤의 뒷모습은 개인적으로 심심한 위로라도 전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에스티벤의 ‘급’을 감안한다면 초라했던 이별이다. J2리그 비셀 고베라는 행선지도 어울리지 않았다. 일본이 문제가 아니라 울산의 아시아 정상을 이끈 K리그 최고의 수비형 MF가 이웃나라 2부리그로 간다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랬던 에스티벤이 K리그로 돌아왔다.
↑ 일당백 미드필더 에스티벤이 돌아왔다. 1년 만의 컴백이다. 그립던 고수가 가세한 제주유나이티드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진= 제주유나이티드 제공 |
‘그립던 고수’의 컴백이다. 2010년 울산에 합류, 3년간 헌신했던 중앙미드필더 에스티벤이 없었다면 ‘철퇴축구’라는 브랜드는 자리 잡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2012년 ACL 정상에 오르는 과정 속에서도 에스티벤은 극찬이 아깝지 않았다.
알 만한 사람들은 에스티벤을 K리그 최고의 외국인 플레이어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데얀과 몰리나, 에닝요에 버금가는 기량이라 칭찬이 자자했다. 주목도가 떨어졌을 뿐이다. 포지션 탓에 조명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에스티벤은 K리그 통산 106경기에 출전해 1골1도움을 기록했다. 3년간 포인트가 딱 2개다. 2012년에는 39경기를 뛰면서 포인트가 단 1개도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일당백 플레이어’이자 ‘스태미나의 화신’이란 표현이 아깝지 않다. 허리라인 근처에 공이 있다면 그 주위 어딘가에는 에스티벤이 있을 정도다. 왕성한 활동량과 저돌적인 압박으로 상대의 숨통을 조인다. 그렇다고 마냥 힘으로 몰아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도 특별히 체력 저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판세를 읽고 뛰어다닌다는 뜻이다. 공의 흐름을 알고 차단하기에 파울이 많지도 않다. 기본적으로 공수의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췄음은 물론이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중요한 미덕인 롱킥도 제법이다. 요컨대, 갖출 것을 다 갖춘 알짜배기 선수다.
수비형MF라는 포지션의 한계로 스포트라이트가 적었지만 ‘선수’들은 에스티벤의 진가를 알고 있었다. 울산이 ACL 정상에 올랐던 2012년 말, 축구전문지 <베스트일레븐>이 K리그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에스티벤은 2가지 부분에서 1위로 뽑혔다. 하나는 “체력이 가장 왕성한 선수는?”이라는 질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팀을 위해 가장 헌신한 선수는?”이라는 부문이었다. 그랬던 고수 에스티벤이 다시 K리그로 돌아온다.
행선지가 제주라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윤빛가람, 송진형 등 공격적 재능이 뛰어난 미드필더들이 많은 제주에 ‘돌쇠형’ 에스티벤의 가세는 충분한 시너지를 기대케 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수비적인 역할을 나눠맡아야 하는 것과, 수비형MF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이가 뒤에 있는 것은 큰 차이다.
박경훈 감독 역시 “K리그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손꼽혔던 에스티벤의 가세로 중원이 더 견고해졌다. 1차 저지선으로 수비 안정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공격 면에서도 송진형, 윤빛가람 등 다른 미드필더들의 발끝을 가볍게 해줄 적임자”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지켜보는 이도 기
그립던 고수 에스티벤이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기량을 유지하고 있을지 혹은 더 업그레이드됐을지 궁금하다. 미드필더 플레이를 중시하는 박경훈 감독 품에 안겨 넘치는 미드필더들과 호흡을 맞출 제주가 새 둥지라는 것도 흥미롭다. 에스티벤이 합류한 제주, 제주에 입단한 에스티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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