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버티는 자와 버텨야 사는 자.’
한때 동계올림픽의 ‘메달밭’ 혹은 ‘효자종목’이라고 불렸던 한국 쇼트트랙의 집행부와 현장의 온도차가 극명하게 나뉜다.
행정을 책임져야 할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최근 불거진 추문 논란 잠식을 위해 버티기에 들어간 모양새이고, 올림픽 성적을 위해 뛰는 쇼트트랙대표팀은 열정 하나로 눈감고 귀막고 버텨야 살아남는 한심한 작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한국 쇼트트랙의 현주소다.
↑ 최광복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가 지난 15일 서울 공릉동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2014 소치동계올림픽 빙상대표선수단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착찹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옥영화 기자 |
막바지 훈련에 총력을 다해야 할 쇼트트랙은 최악의 분위기 속에서 대회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여자대표팀 장비 담당 코치의 성추행 파문으로 뒤늦은 퇴촌 촌극이 빚어진 데 이어 남자대표팀 맏형 노진규(22‧한국체대)가 훈련 도중 왼 팔꿈치 골절상을 당해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대표선수의 갑작스런 부상은 안타까운 악재다. 노진규의 공백은 베테랑 이호석(28‧고양시청)으로 긴급 수혈할 방침을 세웠다. 이호석은 2006년 토리노 대회와 2010년 밴쿠버 대회 경험이 풍부하고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을 병행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판단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전망이다. 이호석의 최종 대표팀 합류 여부는 상임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빙상연맹이다. 여전히 해결책 없이 또 어물쩍 넘어갈 태세다. 빙상연맹 고위임원이 논란이 되고 있는 성추행 파문 코치를 뒤에서 비호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진상 조사는 뒷전이다. 지난 14일에는 장명희 아시아빙상경기연맹(ASU)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빙상연맹 집행부를 공개 비판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빙상계 원로들까지 나서 뿌리까지 썩은 빙상연맹을 향해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으나, 정작 빙상연맹은 요지부동이다. ‘안현수 사태’ 등 전횡을 일삼는 이 임원이 원흉인 것은 빙상계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연맹 내에서 막강한 힘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바뀔 것이 없다는 것이 빙상계의 시선이다.
빙상연맹은 지난 12일 첫 상벌위원회를 열었으나 어떤 결론도 내지 못했고, 추후 상벌위 소집 일정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임원의 측근들로 구성된 상벌위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빙상계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다 올림픽 이슈가 지나가면 유야무야 넘어가려고 저러는 것 아니냐. 지금 매를 맞더라도 버티면 그만”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보이고 있다.
대책 마련 없는 빙상연맹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이 대표팀은 세계 최강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굵은 땀을 쏟고 있다. 게다가 여자대표팀 장비 담당 코치가 퇴촌하면서 최광복 코치가 새벽 4시에 일어나 남녀 선수단 스케이트날을 혼자 갈며 식사도 거르고 있는 형편이다. 실로 눈물겨운 사투다.
미디어데이 현장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앞서 진행된 피겨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은 기자회견과는 확연히 다른 엄숙한 분위기였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애써 태릉선수촌 외벽을 높게 쌓고 훈련에만 집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날 모인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입을 모아 “운동 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외부의 일에 휩쓸리거나 주변의 시선을 신경
위기의 쇼트트랙이 소치올림픽에서 금빛 소식으로 물들인다고 해도 빙상연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는 쉬이 잠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쇼트트랙의 세계 최강 자존심은 메달의 색깔이 아니라는 것을 빙상연맹만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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