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홍명보는 자타공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였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과 1998년 프랑스월드컵 그리고 대미를 장식했던 2002년 월드컵까지, 대한민국 대표팀 수비라인의 기둥은 늘 홍명보였다. 새내기였을 때도 노장이었을 때도 그는 늘 중심이었다.
그 세월 속에서 쌓아올린 홍명보의 A매치 기록은 135회에 이른다. 대한민국 센추리클럽 가입자(차범근-121경기, 홍명보-135경기, 황선홍-103경기, 유상철-122경기, 김태영-105경기, 이운재-132경기, 이영표-127경기, 박지성-100경기) 중에서도 최다출전자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었다. 그런 선수생활에 비한다면 아직 지도자로서의 경력은 가야할 길이 멀다.
↑ 홍명보 감독은 한국이 16강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좋아한다고 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당당함이다. 사진= 한희재 기자 |
당장 같은 조에 속한 러시아를 이끄는 파비오 카펠로 같은 세계적인 명장과 견주면 쌓인 시간이 부족하다. 하지만, 단순히 ‘오랜 시간’이 지도자 능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홍명보 감독은 “앞으로 6개월 동안 내가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해서 카펠로의 커리어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겸손해하면서도 “꼭 감독들의 대결이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난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말로 당당한 승부욕을 전했다.
조추첨 직후 홍명보 감독은 “우리는 H조에서 3위 혹은 4위다. 그 수준을 어떻게 해서는 2위까지 올리는 것이 과제”라는 뜻을 전한 바 있다. 괜한 겸손은 아니다. 정확한 현실직시다. 그리고 신중함이다. 어떤 안일함도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는 도전자의 자세다. 홍명보 감독은 “정말로 신중하게 대회를 준비할 것이다. 해외 언론들이 혹은 다른 팀 감독들이 한국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면서 “난 결코 상대를 자극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과 함께 웃었다. 허허실실 같으나 결국 필드에서 말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모두의 예상을 비웃는 결과를 위해 홍명보 감독은 지난 6개월을 부지런히 달려왔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남은 6개월을 매진할 참이다. 홍 감독은 “전체적인 엔트리의 80%는 완성됐다”는 뜻을 전했다. 홍명보 감독은 “전체적인 윤곽은 나왔다. 현재 우리 팀에는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다. 다만 경험적인 부족함은 있다. 그것을 어떻게 채워야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말로 부족한 20%는 노련한 선수들의 ‘조화’가 필요함을 설명했다.
하지만 마냥 ‘나이 많은’ 선수를 의미하는 보강은 아니다. 홍 감독은 “무조건 베테랑을 부른다고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대표팀의 연령이 22~25살이다. 그들을 이끌 수 있는 선수들, 그들과 합쳐졌을 때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면서 그가 강조하는 ‘원팀’에 도움을 줄 조화로움을 강조했다.
↑ 이제 6개월 남았다. 홍명보 감독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사진= 한희재 기자 |
떠오른 2014년의 태양과 함께 이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지금부터의 6개월은 알차게 써야한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홍명보 감독이 러시아 안지 시절 인연을 맺은 네덜란드 출신의 하타니어르 코치를 영입하려 하는 것은 사전 ‘정보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홍명보 감독은 “(하타니어르 코치는)히딩크 감독 밑에서 상대팀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던 사람이다. 러시아전을 대비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 내가 항상 같이 할 수 없는 유럽파들도 네덜란드 코치가 가세하면 관리가 될 것이다. 수시로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나 그 팀의 감독 코치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이다. 깊숙이 관여해서 체크할 생각”이라는 말로 이전보다 더 체계적인 준비가 시작될 것임을 알렸다. 1월부터 시작될 전체적인 로드맵도 완성됐다.
홍명보 감독은 “K리거 중심으로 운영될 1월 전지훈련은 모든 선수들이 함께 하지는 못하나 마지막 경쟁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요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면서 “3월에 있을 평가전은 유럽에 나가서 경기하길 원한다. 5월에 있을 평가전은 알제리, 벨기에와 유사한 팀과, 그리고 최종 평가전은 조별예선 첫 상대인 러시아와 비슷한 팀을 원한다”는 설명으로 이미 브라질로 가는 길에 대한 구상을 마쳤음을 전했다. 홍 감독은 “남은 기간 동안 우리의 장점을 살려야하고 우리가 단점이라 생각하는 것 보완해야한다”는 평범하고도 비장한 각오를 전했다. 2년 전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아무래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으나 홍명보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올림픽과 월드컵은 분명 다르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고 해서 월드컵이 쉽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면서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레벨이기에 또 다른 것을 준비해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부터는 모두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도 언급했듯, 작은 안일함도 배제시키겠다는 독한 다짐이다.
홍명보 감독은 “우리 국민들은 월드컵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국민들의 불만은 왜 2002년처럼 못하냐는 것이다”는 말과 함께 웃었다. 높아진 눈높이를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어 “얼마나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나도 기다려진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냥 부담이 아닌, 기대를 말하고 있었다. 자신도 있다는 뜻이다. 때
“난 항상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이라는 것은 물론 결과로 말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결과를 얻기까지 그 안의 과정을 무시할 수 없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쳤을 때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다. 남은 기간, 후회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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