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울산) 임성일 기자] 만약 2013년 K리그 클래식이라는 드라마를 집필한 작가가 있다면, 적잖은 욕을 먹었을 것이다. 너무 비현실적인 스토리였던 까닭이다. 그런 허무맹랑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들이 필드에서 펼쳐졌다. 아무리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 칭하지만, 이런 구성은 사람이 쓰기 힘든 내용이다.
포항이 12월의 첫날 울산 문수경기장에서 열린 2013 K리그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울산을 꺾으면서 챔피언에 등극했다.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김원일의 결승골과 함께 포항은 통산 5번째 별을 가슴에 달았다. 비겨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울산은 허망하게도 빈손이 됐다. 어디서부터 ‘신의 간섭’이 시작됐는지 몰라도, 기막힌 시나리오였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시나리오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됐다. K리그 30년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2013년 시즌 마무리였다. 사진(울산)= 김영구 기자 |
단순히 울산과 포항이 만나는 스케줄에서 그친 게 아니다. 두 팀이 맛을 높였다. 울산은 지난 27일 부산과의 경기 전까지 6연승을 달렸다. 여느 시즌이었으면, 시즌 막판에 그쯤 파죽지세를 거둔 팀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르는 게 자연스럽다. 그런데 문제는, 포항도 5연승을 달렸다는 것이다. 3점씩 성큼성큼 달아나도 3점씩 성큼성큼 쫓아왔다. 때문에 승점 73점의 울산과 71점의 포항이 만날 수 있었다.
울산의 홈에서 열리는 경기였고 울산은 무승부만 거둬도 정상에 오를 수 있었으니 여전히 울산이 유리했으나 심리적인 부담을 감안했을 때 유불리는 생각지 않는 게 좋을 판이었다. 게다 울산은 김신욱과 하피냐라는 간판 공격수들이 모두 경고누적으로 출전할 수 없었다.
경기 양상도 극명하게 갈렸다. 마치 흑과 백처럼 구분이 명확했다. 포항은 두드렸고, 울산은 마음먹고 내려앉아 벽을 쌓았다. 특히 후반 들어서는 노골적으로 철옹성을 쌓은 울산이다. 간판 공격수의 부재와 함께 울산이 들고 나온 고육책이었는데, 이 선택은 호불호를 떠나 결국 통하는 듯싶었다. 포항은 좀처럼 울산에 틈새를 발견하지 못했다. ‘철퇴’ 이미지가 강하지만 울산은 확실히 수비가 단단한 팀이었다.
전광판이 정규시간의 끝을 알리고 추가시간 4분이 주어졌을 때, 누구나 울산의 우승을 예상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여기서 또 신이 간섭했다. 울산 문전에서 몇 명인지 헤아리기도 힘들만큼 많은 포항 선수들과 울산 선수들이 엉켜있던 상황에서 포항의 수비수 김원일이 기어이 골을 성공시켰다. 그 찰나, 문수구장의 희비는 엇갈렸다. 울산 홈팬들과 울산 선수들은 망연자실이었고, 포항 서포터와 포항 선수단은 크레이지 모드였다. 대단한 반전이었다.
황선홍 감독은 경기 후 “이런 것이 기적이구나 싶었다”면서 얼떨떨하다는 소감만을 반복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반응이 정확했다. 이미 FA컵 트로피를 품은 포항은 정규리그까지 거머쥐면서 사상 첫 ‘더블 크라운’을 달성했다. 외국인 선수 1명도 없이 시즌을 소화한 포항이 ‘더블’을 달성할 것이라 짐작한 이도 없었다. 이 역시 사람이 썼다면 ‘에이’라고 타박 받았을 내용이다.
K리그 30년 역사 속에 두고두고 회자될 시즌 마무리가 됐다. 언젠가는 한계에 이를 것이라던 포항은 다 가졌고, 손쉽게 트로피를 가져갈 것이라던 울산은 빈손이 됐다. 엎친 데 덮쳐 마지막 경기에 출전치 못한 김신욱은 데얀에게 득점왕 타이틀마저 빼앗겼다. 신이 간섭했던 비현실적 시나리오가 전부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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