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베테랑 미드필더 김상식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식사마’라는 애칭을 얻었을 정도의 유쾌한 입담과 37세의 나이로도 후배들 못지않은 기량과 체력을 선보이며 팬들의 사랑과 후배들의 귀감이 됐던 선수다. 5번이나 K리그 정상을 경험한 우승 청부사였으며 그만큼 치열한 승부근성을 지녔던 프로페셔널이었다.
필드 밖에서는 형님이었고 필드 안에서는 ‘독사’였던 그가 올 시즌을 끝으로 정든 필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1999년 성남의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후 14년간의 현역시절을 이제 정리하기로 했다.
사실 올 시즌부터 떠날 것을 준비했던 김상식이다. 전북 구단은 김상식에게 ‘플레잉코치’라는 직함을 달아주었다. 지도자로서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라는 신호였다. 올 시즌 초반, 김상식은 플레이어보다는 코치 쪽에 가까웠다. 주로 백업요원들과 부상 등으로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는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코치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에서 돌아온 뒤 상황이 달라졌다.
김상식이 올 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더 뛰기를 원하는 최강희 감독의 권유를 뿌리쳤다. 팀과 후배들을 위한 배려였다. 아름다운 이별이다. 사진= 전북현대 제공 |
최 감독은 지난 10월 MK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6월말에 전북에 복귀해서 김상식을 불렀다. 넌 더 뛸 수 있으니 코치는 생각하지 말고 당장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몸을 만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단호하게 지시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최 감독은 “더 뛸 수 있는 아저씨다.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말로 김상식의 의견은 듣지도 않았다고 했다.
이후 몸 상태를 끌어올린 김상식은 전반기와 다르게 중요한 자원으로 시즌 중후반을 소화했다. 가뜩이나 부상자가 속출했던 상황에서 김상식의 노련함과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헌신은 흔들리던 전북의 큰 힘이 됐다. 김상식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던 최강희 감독의 ‘이기적인’ 배려심은 옳았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김상식이 최강희 감독의 고집을 꺾고 이기적인 판단을 내렸다.
최강희 감독 입장에서 김상식의 은퇴선언은 갑작스러웠다. 올 시즌 활약상을 봤을 때 김상식의 현역생활은 충분히 연장 가능했다. 최강희 감독도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전북의 한 관계자는 “최강희 감독은 김상식에게 1년 더 뛰라는 뜻을 전했다. 그런데 김상식이 은퇴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며칠 전, 김상식은 최강희 감독의 방을 찾았다고 한다. 이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전북 관계자는 “최강희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상식은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후배들의 길을 막고 싶진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상식은 은퇴 결정 보도가 나간 26일, 구단 사무실을 찾아 이철근 단장과 면담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은퇴가 번복될 확률은 없어졌다. 감독과 팀을 배려한 김상식의 이기심이 ‘최씨 고집’을 꺾은 셈이다.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모순된 표현은 꽤나 이상적이다. 현실에서 헤어짐이 아름답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노장 선수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선수에게 힘을 북돋아준 최강희 감독, 그 고마움을 품고서 역으로 감독을 배려한 김상식. 이들의 헤어짐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MK스포츠 축구팀장 lastuncle@mae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