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최강희 감독은 말주변이 좋다.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비유와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쓸 때 없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거나 실없이 떠들지는 않는다. 그의 말속에는 대부분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 숨어 있다.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포항과의 FA컵 결승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최강희 감독은 농담 속에 뼈를 담아 각오를 대신했다. 최강희 감독은 “황선홍 감독에게 꼭 전해줘. 황 감독은 작년에 했으니까 올해는 우리가 한다고. 황 감독은 내년에 다시 하면 되잖아”라는 우스갯소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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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 감독은 입담이 좋다. 하지만 실없이 떠들지는 않는다. 그의 말속에는 대부분 곱씹어 봐야할 대목이 숨어 있다. 황선홍 감독에게 전한 농담에도 뼈가 들어 있다. 사진= MK스포츠 DB |
최강희 감독은 “한 팀이 2년 연속 우승을 하는데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으면 다른 팀들이 문제 있는 것 아닌가”라는 말로 한 팀이 정상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다는 뜻을 에둘러 전했다. 후배 감독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마냥 허락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최 감독은 “결승에서 질 것이라면 그 전에 떨어지는 게 낫다”는 표현까지 썼다. 승부사 기질의 발동이다.
당연히 지고 싶지 않은 마지막 승부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어디까지 추락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다. 목표를 잃은 상실감에서 나오는 후폭풍에 대한 걱정이다.
최 감독은 “올해는 확실히 스쿼드가 좋지 않다. 이동국과 이승기 등 부상자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는 이대로 가야한다. 때문에 화려한 축구, 공격적인 축구보다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면서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게 FA컵 결승이다. 지금 구성으로 결승까지 올라간 자체도 대단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다른 쪽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바짝 조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데, FA컵
최강희 감독이 황선홍 감독에게 전한 농담 속에는 한명의 장수로서 상대방의 승승장구를 마냥 지켜보지 않겠다는 의지, 여기서 멈추면 팀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 승부사의 촉이 모두 담겨 있다. 허허실실 농담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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