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독일 마인츠) 이상철 기자] 박주호(마인츠)는 계단 오르는 법을 아주 잘 아는 축구선수다.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2007년 U-20 월드컵에 참가한 뒤 이듬해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뤘고, 유럽 진출 그리고 빅 리그 진출까지 해냈다.
정착은 없었다. 길어야 2년이었다. 한 계단을 더 오르기 위해 도전을 택했다. 뒷걸음질은 없었으니 그것 또한 성공이었다. 마인츠로 이적하면서 빅 리그 무대를 밟은, 그렇게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박주호를 2일(현지시간) 마인츠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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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는 언제나 꿈을 꾸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도전을 택하고 있다. 그렇게 한 계단씩 오르며 성장했는데, 이제는 말재주와 패션 감각도 뛰어나다. 사진(독일 마인츠)=김영구 기자 |
박주호는 지난 여름 빅 리그에 입성했다. 바젤(스위스)을 떠나, 마인츠로 이적했다. 유럽축구의 패권을 쥐고 있는 분데스리가에 발을 내딛었지만, 스위스 리그 최강 팀인 바젤에서의 안정과 성공을 내려놓았다.
바젤에 있던 2년 동안 박주호는 2번의 스위스 리그 우승, 1번의 스위스 컵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차범근, 박지성, 이영표, 김동진에 이어 가장 성공적인 유럽 클럽 대항전 커리어도 가졌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2011-12시즌), UEFA 유로파리그 4강(2012-13시즌)을 경험했다.
이를 뒤로 하고 분데스리가 중하위권의 마인츠로 둥지를 옮겼다. 이제 강등도 걱정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도 떠안게 됐다. 그러나 계획대로 모든 게 착착 진행된 일이었다.
박주호는 “바젤에 갔을 때부터 2년만 뛰고 빅 리그로 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바람대로 이뤄졌다”라며 “바젤에서는 모든 걸 다 이뤘다. 잔류했다면 안정적일지 몰라도, 나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언제 또 유럽에 올지 모른다. 돌아가기 전까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적을 결심했다. 불안정할 지라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도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박주호를 원했던 팀은 마인츠만이 아니었다. 옛 스승인 토르스텐 핑크 감독이 있던 함부르크와 슈투트가르트에서도 박주호에게 관심을 보였다. 3개 팀 가운데 마인츠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박주호는 “함부르크와 슈투트가르트가 내게 관심을 나타냈지만 크게 진척된 건 없었다. 함부르크는 좀 더 이야기가 있었지만. 마인츠가 보다 적극적이었다. 나 또한 마인츠 이적에 대해 듣는 순간, 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무조건 (마인츠로)가고 싶었다”라고 이적 배경을 설명했다.
인터뷰 전날, 바젤은 세인트 야콥 파크에서 샬케와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경기를 가졌다. ‘꿈의 무대’를 뛸 수 있는, 그 달콤한 메리트를 놓친 게 아쉽지 않냐고 물으니 박주호는 그저 웃었다. 박주호는 “나도 어제 그 경기를 봤다. 유럽 클럽 대항전은 정말 재미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바이에른 뮌헨, 토트넘, 제니트 등 강팀을 이겼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그렇지만 독일에서는 주말마다 그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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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리그 최강팀에 있던 박주호는 이제 독일 리그 중하위권팀에서 활동한다. 익숙했던 정상 자리는 이제 오르기가 힘겨워졌다. 그렇지만 새로운 동기부여와 함께 강팀을 꺾는 짜릿한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박주호다. 사진(독일 마인츠)=김영구 기자 |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마인츠는 작은 도시다. 자동차를 타고 몇 십분만 돌면 다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다. 그렇게 작은 ‘동네’지만 박주호가 적응하며 지내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박주호는 “건축 양식이나 강을 끼고 있는 것도 그렇고, 도시 분위기가 바젤과 비슷하다. 그래서 독일에 와 적응하는데 크게 어럽지 않다”라고 했다.
소속팀에서도 그렇다. 독일어보다 영어가 그리고 영보다 일본어가 더 익숙한 박주호인데, 오카자키 신지가 있어 보다 깊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 또한, 마인츠는 주 3,4회씩 단체 식사를 하며 선수들끼리 끈끈해질 수 있도록 한다. 박주호가 동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마인츠는 분데스리가에서도 독특한 팀이다. 훈련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특색이 있다. 토마스 푸헬 감독의 공격 지향적인 전술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마인츠 경기를 지켜본 차범근 SBS 축구 해설위원이 “상당히 진보적이어서 매력적이다”라고 평할 정도였다.
박주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박주호는 “감독님께서 상당히 열정적이신 분인데 훈련마다 테마가 있다. 주말 경기에 상대할 팀에 맞춰 훈련 프로그램을 짜는데 규칙이 다양하다. 5,6번 볼을 주고받은 뒤 측면 크로스를 띄운다든지, 작은 골대에 골을 넣은 뒤 큰 골대에 넣어야 한다든지 독특하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재미있게 즐기고 있다”라고 말했다.
즐겁기는 해도 프로는 성적으로 직결된다. 마인츠가 2010-11시즌 5위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전통적으로 1부와 2부를 오가는 중소클럽이다. 지난 2시즌 성적도 모두 13위였다. 강등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위치는 아니다.
스위스에서는 정상에 놀던 박주호였지만, 냉정히 말해 마인츠에서 우승을 노리긴 쉽지 않다. 올 시즌에는 DFB 포칼도 2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분데스리가 밖에 남지 않았는데 우승트로피 차지는 힘겹다. 그렇지만 상관없다는 박주호다.
박주호는 “독일에 와서 좋은 게 참 많다. 축구 환경이 매우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축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또한,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아 이들과 부딪히는 재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마인츠가 약하긴 하나)강팀을 잡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독일에 오면서 잃어버렸던 동기부여도 다시 생겼다”라고 덧붙였다.
독일에 많은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뛰고 있는 것도 흥미요소다. 박주호는 올 시즌 프라이부르크전을 제외하고 매주 코리안 더비나 아시아 더비를 치르고 있다. 박주호는 “색다른 느낌이다. 스위스에서 못 해봤던 터라, 정말 재미있다”라며 “내게도 나라는 상품을 알릴 좋은 기회의 장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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