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작은 체구에 똘망똘망한 눈으로 경기에 집중하는 윤재인 아나운서(26 KBS N, 이하 직함 생략)는 통역 없이 용병 선수들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캐나다 유학 시절, 치어리더로서 경기장을 찾았던 윤재인은 자연스럽게 스포츠와 가까워졌다. 그러나 처음 야구장에 발을 디뎠을 때는 지레 겁부터 났다고 한다. 그때 야구인들의 따뜻한 인사 한 마디가 얼어있던 윤재인에게 따뜻하게 다가왔다.
영어 인터뷰를 통해 외국인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윤재인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아나운서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중이다.
윤재인은 경주 문화재 관광 리포터 경험을 통해 아나운서의 꿈을 키웠다. 사진=옥영화 기자 |
윤재인은 고등학교 1학년을 한국에서 마치고 캐나다 행에 올랐다. 곧바로 고등학교 2학년으로 편입한 윤재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과와 문과 사이에서 고민을 했다. 한국에서부터 당연히 문과를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윤재인이었으나, 언어의 장벽에 걸려 고민해야 했다.
윤재인은 “캐나다에서도 대학교 입학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했다. 영어로 글짓기 등을 해야 하는데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다. 주변의 조언을 구해 결국 이과로 진학을 결정했고 열심히 공부해 토론토대학교 생명과학부에 진학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된 윤재인은 1~2학년 때까지 막연하게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3~4학년이 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라며 한 숨 쉬었다. 윤재인은 “졸업 후 의사 혹은 연구원에 지원하려고 했는데 막상 취업전선에 뛰어드니 적응하기가 싶지 않았다”라고 당시 답답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윤재인은 마음의 안정과 미래 계획을 위해 대학 3학년 때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캐나다에서는 언어와 인종의 장벽에 걸려 다양한 경험을 하기 전 안 보이는 장벽에 막혔었지만, 한국에 돌아오니 병원 연구소, 경주 문화재 관광 리포터, 단편 영화 출연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자아를 찾는데 주력한 윤재인은 경주 문화재 관광 리포터를 하면서 원하는 직업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며칠 동안 산만 탔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일한다는 기분이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 서니 숨통이 트였고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뿌듯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윤재인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니 아나운서를 추천해줬다. 곧장 실행에 옮겼고 드디어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현재 통역 없이 영어 인터뷰가 가능한 윤재인은 외국인 선수들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캐나다 유학시절 교내 치어리더로 활동한 윤재인은 주로 농구와 배구,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찾았다. 윤재인은 “스포츠와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각 종목별로 어떻게 득점이 나고 규칙은 어떠한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내 또래들이 땀을 흘리며 뛰는 모습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윤재인은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뉴 브런즈 윅(New Brunswick)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다. 당시 교내 농구부에는 하버드대학교에서도 보러올 정도로 유명한 선수가 있었다. 졸업 후 그 선수를 대학 치어리더 시절 경기장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윤재인은 “대학리그 때 우리학교 홈 경기였다. 엘릿 톰슨이란 친구였는데 상대팀 선수로 경기에 출전했다. 아는 사람이 뛰니 눈 여겨 보게 돼 경기가 확실히 더 재밌었다”라며 즐거워했다.
치어리더 경험은 윤재인에게 가장 쉽게 스포츠 정신을 가르쳐줬다. 윤재인은 “캐나다 치어리더는 한국과 다르게 서로를 들어 올려 공중으로 던져 받기도 한다. 때문에 많은 운동량과 협동심을 요구한다. 하프타임 때 한 공연을 위해 몇 시간을 연습하는 것이 한 경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선수들과 같았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윤재인은 “가끔 술 취한 팬들이나 욕설을 하는 상대팀 팬들 때문에 불편한 적도 있었다. 하루는 한 남성팬이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해 흥분한 적이 있다. 그러나 팀 리더가 ”여기는 경기장이니 마인드 컨트롤 하자. 지금 선수들은 경기 중이다“라고 말했다. 보여지는 사람으로서 감정 조절하는 법과 부진할 때 쓴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굴하지 않고 왜 이를 악물고 뛰는지 깨달았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윤재인은 교내 치어리더로 활동을 통해 스포츠 정신을 알았다고 말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스포츠 현장을 직접 경험한 윤재인으로선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는 전혀 낯선 직업이 아니었다. “한국의 치어리더는 예쁘고 몸매가 좋지만 캐나다 학교에서는 나처럼 작은 아이도 가능했다”라며 “치어리더 경험을 살려 채용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했다. 면접 때 치어리더 춤을 추기도 했다”고 웃었다.
그러나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까다로운 룰과 엄격한 분위기를 가진 야구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농구와 배구는 분위기를 알았지만 야구는 생소했다는 윤재인은 “야구장에 나오기 전부터 겁을 먹었었다. 주위에서도 인터뷰할 때 실수하면 많은 악성댓글이 달릴 것이고 선수들도 싫어할 것이다라며 겁을 줬다”라고 했다.
선배들의 교육은 야구장에 처음 나서는 윤재인의 마인드 컨트롤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윤재인은 “예전에는 여자 아나운서가 더그아웃을 찾으면 부정을 탄다는 것 때문에 힘들었단 소리를 들었다. 때문에 우리가 더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힘들게 운동하는 야구인들 앞에서 경솔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주변의 관심도 윤재인을 야구장으로 이끌었다. 윤재인은 “첫 경기를 위해 사직구장을 찾았다. 그때 김시진 롯데 자이언츠 감독님이 어색한 나를 딸처럼 반겨줬다. 구종에 대해 설명을 해줬고 시집갈 때 남자 고르는 법도 가르쳐줬다”라며 “긴장하고 있는 나를 가족처럼 대해줘서 정말 고마웠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낯설었던 야구장에서 야구인들의 따뜻한 인사 한 마디가 윤재인에게는 큰 힘이 됐다. 사진=옥영화 기자 |
영어권 국가에서의 유학생활은 윤재인이 스포츠 아나운서를 하는 데에 있어 큰 도움이 됐다. 현재 윤재인은 외국인 수훈 선수 인터뷰 때 통역 없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용병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윤재인은 “유먼이 ‘윤!재!인’이라며 내 이름을 불렀다. 내 이름을 말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인터뷰 영상을 찾아봤거나 주변에 물어본 것 같다”라며 기뻐했다. 이어 “하루는 롯데 프런트에서 회사로 전화가 왔었다. 평소 인터뷰 때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하지 않던 유먼이 많은 내용을 꺼내놓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라며 “인상 깊었다. 외국인 선수들도 인터뷰에 관심을 가지니깐 선수들도 마음을 여는 것 같다. 선수들에 대해 더 알고 예의 있는 표현을 사용하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영어 인터뷰를 통해 윤재인은 용병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외국생활 중 우리말을 하는 외국인을 만난 것 보다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편해 속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앤드류 밴 헤켄(34 넥센 히어로즈)을 만났을 때도 내 발음을 듣고 캐나다에서 공부한 것을 알았다며 마음을 열어줬다. 밴 헤켄은 ‘사실 힘들다. 떨린다. 2년 차라 팬들이 기대하는 바가 커 솔직히 부담스럽다’, ‘가족이 한국에 와서 기쁘다. 아내가 오니 확실히 힘이 난다’ 등의 이야기를 해줬다”라고 털어놨다.
외로운 유학생활이 있었기에 용병 선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윤재인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만나 좋다는 외국인 선수들이 있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외로웠을까’란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윤재인은 “단순히 영어 실력을 보여주
낯선 야구장에서 어색해 제대로 인사조차 못 했다는 윤재인은 “이제는 용기내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할 수 있는 편안한 아나운서가 되도록 노력 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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