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은 요즘도 분명히 말한다. “다시 유니폼을 입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가 갈 길이 아니다.” 그에게는 쓰디 쓴 경험이었다.
1985년 5월 1일, 삼미 슈퍼스타즈가 요즘말로 ‘듣보잡’ 기업인 청보식품에 70억 원에 팔렸다. 프로야구단 첫 매각으로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인천의 첫 주인 삼미는 3년 남짓 동안 온갖 불명예 기록과 아픈 기억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 해 후반기부터 페넌트레이스에 참가한 청보 핀토스는 시즌이 끝나자 서둘러 김진영 감독을 경질했다. 후임 감독은 놀랍게도 허구연 MBC 해설위원. 만 34세 7개월의 젊은 나이도 파격이었지만 불과 몇 달 전 타 구단의 감독 영입제의를 거절한 전력이 있어 더욱 의외였다.
1985년 4월이었다. MBC 청룡이 성적부진을 이유로 어우홍 감독을 치고 허구연을 영입하려 했다. 당시 이웅희 MBC 사장이 허구연을 모셔가기 위해 ‘삼고초려’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허구연은 끝내 MBC 청룡 감독직을 고사했다. 경남고 은사인 어우홍 감독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어서였다.
허구연은 청보 핀토스 감독도 처음엔 완강히 거절했다. 그때도 김정우 청보식품 회장이 직접 나서 허구연을 설득했다. 허구연이 마음을 바꿔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는 딱 하나. “단 한 번만 우승을 하면 해설가로 돌아간다”는 조건을 주고받았기 때문이다.
1985년 10월 17일은 국내 최연소 사령탑 허구연 청보 핀토스 감독이 부임한 날이다. 계약기간 3년에 계약금, 연봉 각 3000만 원을 받았다. 이 또한 당시로선 매우 귀한 대우였다.
허구연은 지휘봉을 잡자마자 팀 체질개선에 나섰다. 삼미 슈퍼스타즈식 운영방식으론 우승은 커녕 상위권 도약도 백년하청이라 생각했다. 코칭스태프부터 물갈이했다. 팀 내 최고참 김무관을 코치로 승격시켰고, 김명성 강태정 한동화 등 베테랑 코치를 수혈했다.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자신의 약점을 풍부한 경험의 선배들을 통해 메우기 위해서였다. 나이와 선후배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인재를 중용한 첫 번째 시도였다.
다음으론 선수단에 메스를 들이댔다. 투수력이 안정되지 않곤 성적을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장 먼저 기량 면에서 용도폐기 된데다 구단과 잡음이 끊이지 않던 장명부를 정리했다. 대신 재일동포 언더핸드드로 투수 김기태와 김신부, 그리고 3루수 고광수를 영입했다. 이어 정구선 정성만 우경하를 롯데에 내주고 임호균 배경환 이진우 양상문 김진근을 받아들이는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투수력 보강이 주된 목적이었다. 사실상 팀의 근간을 모두 바꾼 셈이었다.
허구연은 의기양양했다.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1986 시즌 개막과 함께 청보는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7연패에 빠졌다. 허구연을 향한 언론의 질타가 이어졌다. 초보 감독 편은 아무도 없었다.
시즌 개막 한 지 한 달 여 흐른 5월 11일. 허구연은 8승 23패, 승률 2할5푼8리의 중간 성적표를 남기고 감독직을 일시적으로 내려놓는다. 일본 단기연수가 이유였다. 지금 같으면 시즌 중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땐 감독이 잠시 지휘권을 넘기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두 달 여 동안 휴식기를 보낸 허구연은 후기리그부터 사령탑에 복귀했다. 하지만 성적은 좀체 좋아지지 않았다.
후기리그 7승 2무 17패(0.292)를 기록 중이던 1986년 8월 6일은 허구연이 9개월 20일 동안의 짧은 감독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날이다.
허구연은 청보 유니폼을 벗으며 “경험과 역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감독이 됐다. 중계석과 감독, 코치가 하는 일이 얼마나 다른 지 알 수 있는 기회였다”는 말을 남겼다.
허구연은 1987년부터 2년 동안 롯데 자이언츠 타격코치를 하며 현장 감각을 익혔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때도 롯데의 성적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허구연도 심각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허구연은 미련 없이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1990년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유학길에 올랐다.
1991년 마이크를 다시 잡은 허구연은 그 길이 ‘천직’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 뒤로 20년 넘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정감 넘치는 경상도 사투리에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해박한 야구지식으로 ‘스포츠 해설가’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그는 2007년부터 1년에 한 차례 야구 불모지인 캄보디아로 건너 가 야구 장비를 나눠주고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27년 전 그가 겪은 ‘짧은 외도’는 야구인 허구연 인생에 큰 전기가 됐음에 틀림없다.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대호 편집국장 dhkim@maekyung.com]
사진제공=장원우 전 주간야구 사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