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진격의 여인구단 女友야’에서 야구선수가 된 김선신 아나운서(26· MBC 스포츠플러스, 이하 직함생략)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있던 그녀에게 오랫동안 숨겨 놓았던 욕구가 꿈틀거렸다.
김선신은 접어 놓았던 ‘꿈 노트’를 다시 펼쳤다. 그곳엔 또렷하게 스포츠 아나운서가 적혀 있었다.
김선신은 2011년 중반 스포츠 아나운서의 길에 들었다. 입사해 올해로 프로야구 두 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현재 “2년 차 징크스를 겪고 있다”라고 털어놓는 그녀. 자신을 자책하던 김선신은 포기의 문턱에 서있을 때 직접 야구를 체험했다. 야구를 통해 잠시 잊었던 꿈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깨달은 김선신은 “야구는 내 인생의 결정판”이라고 대답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선신 아나운서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건 관심과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
김선신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곳은 서울 소재 한 초등학교였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선신은 작은 키와 귀여운 얼굴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특히 고학년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김선신은 “3학년은 그나마 나은데 6학년들 중에는 키 180cm가 넘는 친구들이 많았다.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첫 사랑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나를 좋아해주는 걸 알고 더 잘 해줬다”라며 한 때 초등학생들의 첫 사랑이었던 지난 추억을 술술 털어놨다.
보통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 짓궂은 법. 선생님이지만 김선신은 남학생들에게 헤드록을 걸리거나 친하다는 표현으로 어깨동무로 키를 눌리기도 했다. 김선신도 “야! 손 치워!”라고 큰 소리도 내봤지만, 장난기가 발동한 남학생들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위기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 김선신에게도 흑기사 같은 학생들이 있었다. 김선신은 “목이 아파 말을 못할 때 리더 역할을 하는 남학생이 “너희 때문에 선생님이 아프잖아”라고 말하면 금방 교실이 조용해졌다. 하나의 회유책이었다. 순수한 모습의 아이들이 예쁘고 좋았다”라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환하게 웃으며 반 아이들을 반기는 것이었다. 김선신은 교실 앞에서 차례대로 등교하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하교 길에 오르는 아이들을 안아주며 배웅해줬다.
김선신은 “집에서 사랑을 못 받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은 사랑을 주면 그 사랑을 온전히 받아 들였다”라며 운을 뗐다. 이어 “정이 고픈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귀가하지 않고 학교 주변을 빙빙 돌았다. 여학생들은 내 머리를 따주거나 안마를 해주며 시간을 지체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혼한 부모가 있거나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았다. 혹은 친구들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라며 한 숨을 쉬었다.
선생님으로서 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관심이었다. 김선신은 “소외받고 힘들어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나는 사랑밖에 줄 수 없었다. 그 아이들도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라며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부터 적어온 "꿈 노트"가 선생님이었던 김선신을 아나운서로 이끌었다. 사진=옥영화 기자 |
시험기간이 끝났다. 김선신은 6학년 학생들과 1시간 동안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김선신의 강의 주제는 ‘Secret-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였다. 김선신은 “6학년이지만 이미 미래를 포기한 친구들이 많다. ‘전 못해요’라며 자신의 잠재력과 재능을 배제했다”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날 김선신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어릴 적부터 적어온 ‘꿈 노트’를 소개했다. 김선신은 아이들에게 “중학교 1학년 때 공부를 못 했어. 전교 1등이 하고 싶다는 생각에 ‘꿈 노트’에 ‘1등이 되게 해줘’라고 계속 적었어. 전교 1등은 못 됐지만 반에서 1등은 했단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부에 민감한 아이들은 김선신의 경험담에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귀를 기울였다. 아이들은 김선신의 말에 동요돼 “진짜 되느냐?”며 물어오기 시작했다. 김선신은 범위를 넓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도 똑같이 적었더니 한 번에 합격 했어. 꿈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봐. 그리고 너희들만의 ‘꿈 노트’를 적어봐”라고 추천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던 김선신에게도 꿈이 있었다. 선생님의 꿈은 이뤘으나, 겁이 나서 도전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김선신을 떠올렸다.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 꿈이 바로 아나운서다.
김선신은 “쉬는 시간마다 교사 휴게실이 아닌 교실에서 아이들과 뒤섞여서 놀았다. 아이들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겁이 났다. 만약 내 자서전을 쓴다면 ‘김선신은 교사가 돼서 교사로 끝났다’로 마침표를 찍을 것 같았다”라고 전했다.
젊음을 믿고 평소 꿈꿔왔던 일이 무엇인가를 떠올렸다. 동경하고 있었던 일, 하고 싶었지만 포기했던 일 등을 찾았다. 마침내 그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김선신은 “어렸을 때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방송부에 지원하고 아나운서 채용 공고가 뜨면 달려가 시험도 봤다. 중학생 때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원고를 작성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관심만으로는 부족했다. 무작정의 도전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지원에 앞서 덜컥 겁을 먹은 김선신은 신문방송학과 대신 교육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김선신은 “언론고시에 자신감이 없었다. 몇 천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한다는 것이 두려웠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놨다.
김선신은 아이들과의 꿈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자신을 되돌아봤다. 다시 ‘꿈 노트’를 펼쳐 들은 김선신은 그 곳에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라고 적기 시작했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스포츠 캐스터 연합회에서 인정받은 연예인이다. 사진=옥영화 기자 |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에 지원한 김선신은 정형화(?)되지 않은 복장으로 면접장을 찾았다. 단발머리도 아니었다. 비싼 정장 차림도 아니었다. 스포츠 아나운서이기에 편안한 캐주얼 차림으로 당당하게 면접장 문을 열었다. 김선신은 “화장도, 머리도 혼자 했다. 그 부분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생각 한다”라며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이어 김선신은 “입사 후 선배들에게 들었다. 아무 것도 없는데 ‘깡’이 있어보였다고 한다. 무슨 질문에도 ‘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고, 키가 작아 선수들과 인터뷰하기 힘들겠다라고 하면 ‘의자 놓고 올라가겠다’고 말했다. 성형에 대해서도 ‘먹고 살 얼굴은 된다’라며 자신감과 패기를 보였다. 간절했기 때문에 두려움이 나를 막아설 수 없었다”라며 살벌했던 면접장을 자신의 장점인 밝은 성격으로 웃음 바이러스를 번지게 했던 사실을 전했다.
김선신의 긍정적인 성격은 쉽지 않았던 도전을 이루는데에 가장 큰 힘이 됐다. 아나운서가 된 김선신은 제자들에게도 본보기가 됐다. “SNS를 통해 제자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칫 포기할 뻔한 꿈을 내 모습을 보며 다시 꿈꾸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 내가 그들의 조언자가 된 것이 행복하다”라며 흐뭇해했다.
꿈을 이뤘다고 모든 것이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도전이 김선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포츠 중 룰(Rule)이 가장 어렵다는 야구를 만났다. 김선신은 입사 1년 만에 2012 런던올림픽에 파견된 김민아 아나운서(30 MBC 스포츠플러스)를 대신해 생방송 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을 맡았다.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회가 찾아왔지만 정신이 혼미해지면서도 무서웠다고 한다.
다행히 야구팬들은 “김민아 아나운서를 대신한 신입 아나운서니깐”,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엽다” 등 김선신을 응원했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2시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김선신 역시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더 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스스로 ‘2년 차 징크스’라 붙였다. 김선신은 “생각과 고민이 많았다. 내적으로는 어떻게든 차별성을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왜 다른 이들과 다른 질문을 하지 못할까란 생각에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외적으로는 현실을 직시했다. 야구 아나운서로 신전은 터질 정도다. 내 위치가 불안했고 내가 갈 수 있는 길의 끝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명예, 지위 등 가치관에 혼란을 느꼈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고민해결을 위해 선배들의 조언을 구했다. 그들의 조언은 김선신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김선신은 “선배들이 ‘이 연차에서 하는 당연한 고민이다’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선수들과 같다. 공만 보고 경기에 집중한다. 타석에 섰을 때 타자가 4번 타자를 보며 자신의 타격감을 탓한다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진다"라며 ”자격지심이었다. 인생의 그래프 곡선을 직선으로만 생각했다. 사실은 계단식인데 말이다“라며 자신을 되돌아봤다.
김선신은 “숙성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시간에 몸을 맡기니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배였다. 울며 공부하고 발성 연습한 것은 소용이 없었다”라며 “포기하는 사람보다 버티는 사람이 승자다. 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내 자신을 믿는다”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김선신 아나운서는 "야구는 내 인생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사진=옥영화 기자 |
김선신은 스포츠 아나운서계에서도 발랄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매년 캐스터 연합회 모임에서 그녀는 단연 스타로 꼽혔다. 배지현 아나운서(26 SBS ESPN)의 제보에 의하면 김선신은 음주보다 가무에 능했다. 김선신은 “굳이 즐거운 회식 자리에서 침묵을 지키고 싶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잔뜩 들뜬 목소리의 김선신은 “노래는 최신가요를 부르면 안 된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선곡해야 한다. 60~90년대의 풍미를 장식할 수 있는 곡을 부르면 분위기가 고조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선신은 “보여줄 순 없지만, 노래방 전후의 모습이 달라져 있다. 너무 신나게 뛰어서인지 많이 헝클어져 있다”라며 크게 웃었다.
회식 자리를 빛냈던 김선신에게도 강적이 나타났다. 김선신은 “(윤)태진이 무대를 보고 선의의 라이벌 의식을 느꼈다. 나 말고 강자로 불리는 춤사위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화 충격을 받은 듯 강한 적수를 만났구나라고 생각했다”라며 윤태진 아나운서(26 KBS N)을 꼽았다.
이날 김선신은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을 불렀고 마이크를 이어 받은 윤태진이 자우림의 ‘하하하쏭’을 열창했다. 그 자리에 있던 스포츠 아나운서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두 사람은 합심해 함께 마이크를 잡고 온 몸으로 무대를 휘저었다. 그 자리를 압도한 무대의 곡은 아쉽게도 김선신 윤태진 모두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 자리를 지켜본 아나운서들의 말을 빌리면 “정말 대단했다”, “반전 이미지다. 정말 웃겼고 재미있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야구장에서만큼은 얌전했다. 입사 3년 차인 김선신은 “선배들에게 많은 교육을 받았다. 절대 이를 보이면서 크게 웃지 말라고 했다. 선수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물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지 말라라고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김선신은 현장에 자주 나오지 않기 때문에 친분이 있는 선수도 없다고 한다. 가끔 야구장을 찾았을 때만큼은 원래 성격대로 밝게 인사하고 싶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기에 말수를 줄인다고 한다. “야구는 직접 그라운드를 밟고 타 종목에 비해 인기가 많아 덩달아 여자 아나운서들까지 관심을 많이 받는다. 행동에 더 조심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며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이 맞는 것 같다. 이 부분은 우리 여자 아나운서들에게는 지켜야할 불문율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선신은 MBC 스포츠플러스 ‘진격의 여인구단 女友야’에서 체조선수 신수지, 달샤벳 수빈 가은, 모델 송해나, 방송인 이수정 등과 여성 야구팀을 구성했다. 야구선수가 된 김선신은 “내 인생은 ‘여우야’ 촬영 전후로 나눠진다. 야구가 자극제로 돌아왔다”라며 “타석에 섰을 때의 부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진루를 연결시켜야 하는데 내 아웃카운트 때문에 팀이 질 수도 있다란 생각 때문이다. 몸에 공을 맞더라도 출루하고 싶었다.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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