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서민교 기자] “리그 최고의 4번타자를 데리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칭찬에 인색한 염경엽(45)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극찬을 주저하지 않는 선수. 넥센의 4번타자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의 넘버원 거포로 우뚝 선 박병호(27)이다.
지난해 최우수선수(MVP) 박병호는 2013년도 단연 최고의 선수다. 팀 성적과 개인 성적을 모두 잡았다. 정규시즌 9경기를 남겨둔 22일 현재 타격 부문 5관왕의 강력한 후보다. 이미 2년 연속 30홈런-100타점 기록은 세웠다. 2년 연속 MVP 수상 가능성도 가장 높다.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가 동료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사진=MK스포츠 DB |
박병호 스스로도 올해는 만족스럽다. 그는 지난 21일 목동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올해는 4번타자의 역할을 한 것 같아서 개인이나 팀으로서 작년보다 의미가 훨씬 크다”고 했다. 넥센이 67승2무50패로 3위에 올라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병호는 올 시즌 개인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며 시기상조를 강조했다. 그는 “개인 기록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기는 것만 신경쓰고 싶다”고 했다. 이어 “시즌 전 목표는 전 경기 출장이었고, 수치적인 목표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계획한대로 하다보면 결과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부담도 없다”고 말했다.
지나친 겸손 같지만, 박병호이기 때문에 이해가 간다. 그는 만년 유망주로 평가받았던 선수다. 지난해부터 잠재력이 폭발했고, 올해 커리어 평균을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다. MVP에 대한 섣부른 생각도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에 대한 그의 생각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2년 연속 MVP 욕심에 대한 질문에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생애 첫 포스트시즌이 가까워져 설렌다”라는 답변으로 대신했고, 일본프로야구에서 아시아 홈런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블라디미르 발렌틴(58개,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비교에 대해서도 “발렌틴은 아시아계 선수가 아니다. 미국과 중남미 선수들은 파워가 분명히 차이가 있다”면서도 “그런데 내가 왜 비교를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웃어 넘겼다. 아직 한국을 대표할 거포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박병호가 올해 유독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는 3할 타율과 볼넷 수치의 상승이다. 그는 프로 데뷔 이후 올해 처음으로 3할대 타율을 유지하고 있고, 볼넷은 82개(1위)를 얻어냈다. 지난해 볼넷 73개(2위)을 훌쩍 넘어섰고, 지난해 ‘볼넷왕’ 김태균(한화 이글스)이 기록했던 81개도 뛰어넘었다. 그도 “내가 꾸준하게 잘하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볼넷으로 나갈 때다. 작년처럼 유인구에 속지 않고 있어서 타율 관리도 잘되는 것 같다”고 했다. 염 감독도 박병호의 커리어 평균 평가에 대해 볼넷 상승 효과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박병호의 겸손에 대한 흔적은 여기서 또 찾을 수 있다. 그는 “올해 특별한 고비가 없었던 이유는 다른 선수들이 다 잘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성이와 (이)성열이 형이 잘해줘서 위기에도 티가 나지 않았던 것 같다”고 했고, 또 “(이)택근이 형이 기술적으로나 경기 상황별 조언을 많이 해준 덕분이다. 특히 볼넷에 관한 조언이 가장 컸다. 정말 감사하다”며 올해 자신의 성적 상승 이유를 동료들에게 모두 돌렸다.
염 감독은 “박병호가 확실한 커리어를 인정받기 위해선 3년을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박병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수는 원래 만족을 모른다. 내년과 내후년 더 발전해 나가겠다”고 현재에 만족하지 않았다. 지나친 겸손은 때론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거포의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한 박병호의 말과 행동에 배어나오는 겸손은 지나쳐도 듬직하기만 하다.
지난 21일 목동 삼성 라이온즈전에 앞서 타격 훈련을 하고 있는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 스스로 인정한 팀 내에서 가장 굵은 팔뚝의 인치는 자신도 모른다고. 사진=김재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