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표권향 기자] 손연재 이전 그녀는 한국 리듬체조의 '원조 요정'이었다. 하지만 4년 후배의 등장과 갑작스런 부상,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비운의 체조스타.'
그녀가 세인의 뜨거운 시선을 받은 곳은 뜻하지 않게도 야구장이었다. 신수지(22)가 일루전 시구로 '시구 종결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했던 신수지의 시구장면은 그녀를 메이저리그로 이끌고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 측과 시구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수지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그리고 자신있게 말한다. "야구로서 제 2의 인생을 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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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을 "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주는 곳"이라고 표현한 신수지는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사진=김재현 기자 |
지난해 야구장을 처음 찾은 신수지는 야구장의 분위기에 매료돼 야구팬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동버스 옆자리’ 인연으로 친분을 쌓은 두산 베어스 김현수에게 티켓을 부탁했다. 신수지는 2008년 마지막날 공항으로의 이동 중 맨 뒤 버스를 탔는데 그때 옆자리에 앉았던 이가 김현수. 올림픽 종료 후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야했던 신수지는 혼자 많은 짐을 카트에 옮기고 있었다. 이때 먼저 달려와 도와준 '착한 오빠' 김현수와 친분을 쌓았다.
야구관람을 원했던 신수지에게 김현수는 지난해 8월 가장 치열했던 ‘잠실벌의 라이벌’전 두산과 LG 트윈스의 경기를 추천했다. 신수지는 친구들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잠실구장을 찾았다.
신수지는 “양 팀 응원전에 압도당해 한 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입만 벌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응원하는 팬들을 보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니 어느 순간 그 흥에 몸이 들썩이기 시작했고 나도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목청 높여 응원가를 불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홈런이 터졌을 때 야구장 가득 울려 퍼지는 함성소리에 반한 신수지는 “야구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재미와 짜릿함이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후 신수지는 집과 가까운 잠실구장을 자주 찾아 응원단석에서 팬들과 목소리를 합쳐 응원했다.
신수지는 “야구팬들의 열정이 멋지다. 운동선수와 일반인을 떠나 함께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다 똑같다. 야구장은 서로 느끼는 흥미가 같은 곳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수지는 “넓은 야구장에서 환호성 치니 몸이 떨렸다. 팬들에게 사랑만 받아왔던 내가 팬심을 가지고 직접 선수들을 응원하니 마치 내가 사랑을 받는 것 같은 감동이 몰려왔다”며 “실제로는 박진감이 넘치는 현장이지만, 이 안에서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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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말괄량이었던 신수지를 잡아준 스포츠가 리듬체조였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은 시작을 한 신수지는 밤낮 없이 연습에 매진했다. 사진=김재현 기자 |
체조는 손가락 하나까지도 세세한 동작에 집중을 요하는 스포츠다. 연기를 할 때에는 경기장이 조용하고 엄숙해 긴장감이 감돈다. 즐기고 싶어도 긴장 때문에 정신집중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신수지의 성격은 활발 그 이상을 넘은 말괄량이다.
신수지는 “올림픽 한 번 나가보겠다고 센 척했다. 그런데 실제 성격은 물러 터졌다”고 운을 뗐다. 신수지는 “어린 시절 우유병 하나 더 들고 힘 있게 빨더니 나중엔 보행기까지 들어 옮기더란다. 하도 사고를 쳐서 엄마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막을 쳐놓고 그 안에 가둬놨을 정도였다. 벽 타서 시계를 발로 걷어차고 엄지발가락을 걸쳐서 기어 올라가다 머리부터 쿵하고 떨어지기도 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 신수지에게 조심성을 심어주고 참을성을 가르쳐준 것이 바로 체조다. 신수지는 “기구를 사용해야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이른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연습하느라 에너지를 쏟으니 사고뭉치였던 둘째 딸은 집에서도 얌전한 딸이 됐다. 새벽부터 나가 연습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니 씻고 잘 시간밖에 없어 사고 칠 시간도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운동에 욕심이 많다는 신수지다. 리듬체조계에서도 승부욕으로 강하다고 소문난 신수지는 쉴 틈 없이 연습에 매진했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체조를 시작했기에 보통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1학년에 시작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늦은 시작이었다.
신수지는 “나는 재능보다는 노력을 믿었다.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야 했기에 오기와 노력으로 13년 만에 내 꿈을 이뤘다. 기회와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조건 따라잡겠다는 의지로 연습에 매달렸다”고 털어놨다.
성공하기 위해선 2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신수지는 “거울에 비친 다른 선수가 1바퀴 턴을 돌면 난 3바퀴를 돌았다. 내 자신을 스스로 때려서라도 했다. 쉬는 시간에는 코치님을 붙들고 계속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만약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자리에 내가 없었을 것이다”라며 지난날을 돌이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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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지는 은퇴 후 방황기를 겪었다. 그러나 곧 기운을 차리고 새로운 도전으로 미래를 설계했다. 사진=김재현 기자 |
지난해 초 발목부상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신수지의 삶은 180도 변했다. 신수지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훈련했던 나였는데, 은퇴 이후에는 ‘이제 뭐하지’란 생각에 자꾸 방황했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나 이대로 머무를 수 없었다. 새로운 목표를 찾아야했다. 신수지는 “모든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힘들어한다. 하지만 마음만 잘 다진다면 금방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며 “다음 목표로 공부를 선택했다. 공부가 모든 시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신수지는 젊음을 앞세워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다. 친구들과의 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혔고 리듬체조 해설위원으로도 변신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양한 종목을 즐겼으며 패션공부를 통해 ‘신수지 가방’을 탄생시켰다. 이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미래를 설계했다.
신수지는 체조 선수의 경험을 살려 MBC ‘댄싱위드더스타2’에 출연했다. 신수지는 “매주 미션을 통해 탱고, 차차차 등을 공연했다. 새벽 3시까지 연습해서 몸이 피곤하기는 했으나, 매주 긴장감 속에서 느끼는 짜릿함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지치지 않는 무한체력으로 인해 ‘괴물수지’라고 불렸던 신수지는 “무대에 오르는 것 자체가 좋았다. 방방 떠있었기 때문에 미션을 통과하면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란 생각에 기대하게 됐다”며 다음 도전을 준비했다.
은퇴 후 남은 에너지를 미래를 위해 쏟아 붓고 있다. 신수지는 “마지막 목표는 ‘여자 이만기’다. 리듬체조 해설위원으로서 내 종목을 지키는 동시에 나에게 적합한 방송을 통해 체조계를 알리고 싶다”고 계획을 알린 뒤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해 지속적으로 후배들을 양성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체조선수로서의 명예도 지키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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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로 제 2의 인생을 열었다는 신수지는 "야구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역전의 짜릿함을 가졌다"고 말했다. 사진=김재현 기자 |
리듬체조계의 베테랑 신수지가 야구선수로 변신했다. 케이블채널 MBC스포츠플러스 진격의 여인구단 ‘여우야’(여자친구들의 야구이야기)에서 여자연예인과 함께 야구팀을 구성했다. 2013 LG배한국여자야구대회 출범을 목표로 한 이들은 2박3일 동안 손혁 박재홍 프로야구 해설위원의 지도하에 연습에 매진했다.
첫 연습이 시작된 지난 9일 경기도 양평 케레카구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간단한 캐치볼로 몸을 풀던 신수지는 차례대로 도착한 멤버들을 맞았다.
신수지는 “우리 6명은 성격은 물론 활동분야가 모두 달랐다. 운동선수 출신인 나에 비해 호리호리한 몸매에 예쁜 원피스를 입고 야구장에 나타나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모두가 열심히 훈련에 임하는 모습에 ‘반전이다’라고 생각했다”며 놀라워했다.
홀로 싸워야했던 스포츠를 했던 신수지로선 동료들의 존재 자체가 반가웠다. 신수지는 “혼자 경기에 나서야했기 때문에 외로웠다. 단체 스포츠 선수들이 부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야구 덕분에 현실이 되니 정말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운동선수 출신이기에 훈련 중에는 버릇처럼 자연스레 말이 줄었다. 부슬비로 인해 메이크업이 지워져도 화장을 수정할 여유도 없었다. 완전히 야구선수가 된 신수지였다. 신수지는 “여자이길 포기했던 것 같다. 정말 더워서 마시던 물을 머리에 끼얹기도 했다”며 “방송이기 전에 야구선수로서의 도전이었다. 나는 진지했다”고 전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손혁 박재홍 해설위원도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런지 역시 다르다"라며 신수지의 노력을 높게 샀다.
야구팬에서 야구선수가 되니 야구의 또 다른 매력을 봤다. 신수지는 “체조는 4종목 중 하나라도 실수하면 끝이다. 그러나 야구는 지고있다가도 역전이 가능하다. 이것이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며 “야구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역전의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신수지는 묘기에 가까운 일루전 시구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다시 알렸다. 그러나 신수지는 시구로 인한 인기의 반대방향에 그림자도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신수지는 "야구장을 찾은 팬들에게 재미를 주고싶어 많이 연구했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하지만 시구를 마치 묘기 부리는 것으로 생각할까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뜻 깊은 자리였으나, 두 번의 시구는 조심스럽다는 신수지는 "첫 번째 시구가 이슈화 됐기 때문에 부담이 생기는 건 사실이다. 한 번은 100바퀴를 돌아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더라"며 "메이저리그에서의 시구는 다른 의미를 두고있다. 국내 시구는 한 번으로서 의미가 더 깊고 깔끔한 것 같다. 만약 기회가 온다고 해도 섣부르게 판단할
야구로서 제 2의 인생을 살았다는 신수지는 “내 인생의 반환점이었다. 마치 진짜 선수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며 “은퇴 이후 아쉬움은 없었다. 그러나 무대와 스포츠 활동성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내가 목말라하던 충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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