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폭격기’ 선동열(KIA 타이거즈 감독)이 하와이 와이키키 바다에 몸을 던졌다.
유니폼을 벗어 던진 속살이 의외로 토실토실(?)하다. 뽀얀 피부에 볼록 나온 뱃살이 앙증맞다.
1989년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해태 타이거즈는 그 해 12월 우승 기념으로 선수단 전체가 하와이 호놀룰루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이벤트.
언제 또 다시 이룰지 모르는 한국시리즈 4연패의 감격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서 박건배 해태 구단주가 큰 맘 먹고 베푼 선물이었다.
선수들은 한 시즌의 피로를 모두 잊고 맘껏 휴가를 즐겼다. 지금도 해태 출신들은 “그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되뇌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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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후배 포수 장채근(홍익대 감독)과 매트릭스 튜브를 들고 와이키키 해변을 찾은 수영복 차림의 선동열 몸매가 화제가 됐다.
마운드 위에서의 위풍당당한 모습과 달리 영락없는 ‘곰돌이 푸’ 같았기 때문. 근육질을 상상했던 팬들은 “어떻게 저런 몸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공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선동열 구위의 비밀은 바로 저 몸매에 있다. 선동열의 몸은 타고났다고 할 정도로 유연하다. 선동열의 손이나 팔뚝을 만져 본 사람은 섬세한 근육과 부드러움에 놀란다. 마치 여자의 몸을 보는 듯하다.
이런 선동열의 몸이 투수에겐 최고의 맞춤형이었던 것이다. 투수는 타자와 달리 큰 근육 보다 잔 근육이 발달해야 한다. 여기에 근지구력이 필수다. 겨울훈련 때 투수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장거리 달리기다. 선동열은 해태 시절 이틀에 한 번씩 치르는 10km 장거리 달리기에서 항상 맨 앞에 있었다.
유연성과 지구력 여기에 탄탄한 하체와 적당한 지방(뱃살). 선동열의 가공할 직구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해태는 1990년대 들어서도 4차례 더 한국시리즈 우승을 가져가지만 1989년을 정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는다. 선동열을 시작으로 해태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들도 한명씩 팀을 떠나고 급기야 2001년 ‘해태 타이거즈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매경닷컴 MK스포츠 김대호 기자 dhkim@maekyung.com]
사진제공=장원우 전 주간야구 사진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