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울산) 임성일 기자] 활짝 핀 웃음과 함께 겉으로 봐서는 예의를 잘 갖췄던 케이로스 이란대표팀 감독이다. ‘존중’이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한국을 존중하지 않았다.
케이로스의 가식적인 웃음과 준비된 립 서비스는 마치 한국을 축구 후진국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훈계하는 인상도 주었다. 예의를 갖춘 척을 했을 뿐 사실 상대를 내리깔았다.
교통체증으로 인해 약속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은 케이로스 감독은 “최강희 감독이라면 이런 상황에 불평을 늘어놓았겠으나 난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활짝 웃었다. 농담이지만 가시가 돋쳐 있었다. 최강희 감독의 ‘설전’을 비꼰 것이다. 애초 자신이 먼저 불필요한 심리전을 시작해놓고 원인제공자를 졸지에 바꾸려는 수작이었다.
시작은 그렇게 해놓고 이내 한국을 향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란대표팀을 대표해 (본선진출이 유력한)한국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면서 “한국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왔다”는 뜻을 전했다. 심지어 “한국의 본선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이란에서부터 꽃을 가지고 왔다”는 선물 공세까지 펼쳤다. 지난 설전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화해모드의 가동 같았다. 하지만, 꼭 토를 달았다.
한 기자가 케이로스 감독에게 진짜 우즈베키스탄대표팀 유니폼을 최강희 감독에게 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최 감독이 “사실 우즈벡보다 이란이 더 밉다”는 말에 케이로스 감독이 “우즈벡 유니폼을 줘야겠다”고 조롱했던 발언을 다시 끄집어낸 것이다.
이에 케이로스는 “1벌만 준비하려 했는데 11벌을 모두 준비하라 그래서 돈이 없어 못 샀다”며 웃었다. 최강희 감독이 “(우즈벡 유니폼을)줄 거라면 나뿐만 아니라 선수들 것까지 모두 준비하라”고 불쾌한 심정을 드러낸 것을 또 장난으로 받아친 것이다. 뒤에 “기꺼이 이란대표팀 유니폼을 드릴 것”이라 했으나 단순히 ‘위트’라고 하기에는 귀에 거슬렸다.
결정적인 무례함은 훈계였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을 향해 “피와 복수의 축구를 멈춰야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복수전을 운운하고 손흥민이 “피눈물 나게 해주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것을 염두한 발언이었다.
그는 “지금껏 일본 영국 미국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양한 나라에서 30여 년 동안 코치생활을 했지만 피와 복수를 위한 축구는 경험해본 적이 없다. 이제는 멈춰야한다”면서 “이란 팬과 한국의 팬들을 위해 우리는 좋은 축구를 펼쳐야한다. 그것이 곧 FIFA가 지향하는 것이기도 하다”며 페어플레이를 강조했다. 근엄하게, 가르쳤다. 이를테면, “내가 꽤 유명한 축구지도자인데,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수준 이하야”라는 훈계였다.
한국축구계 전반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들은 ‘존중’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개인적으로 케이로스의 말을 들으면서 준비된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 깔아보고 있으니 흥분 좀 하라는 느낌이었다.
한국에게 패하면 이란은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될 확률이 높다. 우즈베키스탄이 카타르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는 한국과 우즈벡이 1,2위로 출전한다. 이란은 지금 상황이 부담스럽다.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야한다. 최강희 감독이 “원래 쫓기고 불안하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라고 했던 것처럼 케이로스도 걱정이 많은 모양이다.
“세계적인 팀을 거치면서 좋은 것을 배웠는지 알았는데 나쁜 것만 배운 것 같다”던
최강희 감독은 “아름다운 축구는 필드에서 하는 것”이라는 말로 출사표를 마무리했다. 지도자 30여년 경력에 빛나는(?) 케이로스 감독이 아직 모르고 있던 것을 잘 배워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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