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울산) 임성일 기자]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형국이다. 월드컵 본선행 티켓의 중요성은 물론이거니와 양국 축구의 자존심을 건 정면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최강희 감독이 ‘비매너’로 똘똘 뭉친 이란대표팀과 케이로스 감독에게 마지막 직격탄을 날렸다. 케이로스 감독은 예의를 가장한 빈정으로 한국축구를 조롱했다. 경기를 하루 앞둔 17일 공식 기자회견에서의 일이다. 이란을 꺾어야하는 이유들은 이미 상당히 많았지만, 이제는 이겨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이란대표팀의 케이로스 감독은 맞대결이 다가갈수록 도를 넘어선 ‘설전’으로 최강희 감독을 자극해 왔다. “사실 이란이 우즈벡보다 밉다. 더군다나 우리는 이란에게 갚아야할 빚이 있다”는 말로 마지막 경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던 최강희 감독의 발언을 꼬투리 잡았던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 국민들에게 모욕을 줬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발언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와 관련 최강희 감독은 “케이로스 감독은 내년 월드컵을 TV로 보게 될 것”이라는 화끈한 입담으로 강펀치를 날린 바 있다. 최 감독이 공식회견에서 말한 ‘이미 한 마디’였다. 적절한 대응 이후 말을 삼갔던 최 감독은 경기에 임박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말은 그만하고 이제 필드에서 싸우자는 선전포고였다.
최강희 감독은 이란 기자의 도발에 대해서도 깔끔하게 대응했다. 이란의 한 기자가 “왜 FIFA는 페어플레이, 아름다운 축구를 지향하는데 자꾸 싸움을 거느냐”는 얼토당토않은 항의를 하자 최 감독은 “내가 했던 말이 어떻게 전달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더 이상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겠다. 아름다운 축구는, 경기장에서 하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가 원하는 ‘아름다운 축구’는 필드에서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애초부터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란전이다. 9부 능선에 오른 상황이지만 브라질행의 마침표를 찍어야하는 경기다. 비겨도 조 1위가 확정이지만 필승을 외치고 있다. 최종예선 7경기를 치르면서 유일한 패배(4승2무1패)를 안겨준 이란에 대한 복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최강희호의 마지막 항해라는 측면에서도 ‘유종의 미’가 필요하다.
최강희 감독은 “내일 경기가 최종예선 마지막이다. 임기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유종의 미를 거둬야하는 경기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동안 대표팀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와 내용 때문에 질타를 받았는데 멋진 마무리를 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애초 불붙을 것이 뻔한 판인데 케이로스 감독의 ‘예의를 가장한 빈정’이 기름을 부었다.
최강희 감독에 이어 기자회견에 임한 케이로스 감독은, 겉으로는 예우를 갖추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일종의 ‘훈계’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나 늦게 회견장에 도착한 케이로스 감독은 “교통체증에 막혀 늦었다. 아마도 최강희 감독이라면 이것을 두고 설전을 펼쳤겠으나, 난 그냥 넘어가겠다”는 예의 없는 농담을 던졌다. 자신들이 입씨름의 원인을 제공하고도 “30년이 넘도록 코치로 지냈지만, 어떤 나라에도 복수를 운운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제는 경기에 집중할 때”라며 마치 한국을 타이르는 자세를 보였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실컷 할말을 다한 뒤에는 “우리는 한국과 전쟁을 치르러 온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월드컵 본선을 축하하기 위해 이란에서 꽃을 가지고 왔다” “경기 후 최강희 감독에게 이란대표팀의 유니폼
제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 판이 깔렸다. 보여주지 못하면 안 되는 판이 깔렸다. 이쯤이면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형국이다. 이겨야하는 경기였는데, 이제는 이겨야할 수밖에 없는 경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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