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최근 한국을 방문한 독일 축구의 전설 프란츠 베켄바워는 “한국 선수들은 투지와 근성이 강하면서 기술력까지 겸비해 독일 내에서 인기가 높다. 영입하고 싶어 하는 클럽들이 많다”는 말로 한국선수들의 인기와 한국축구의 인상을 전한 바 있다.
함부르크에서 12골이나 뽑아내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보다 큰 클럽으로의 이적설이 분분한 손흥민과 아우크스부르크의 ‘지구 특공대’로 호흡을 보여준 구자철 지동원 등 젊은 선수들의 좋은 활약이 독일 내 한국축구의 위상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고맙고, 기특한 일이다. 독일에서 전해지는 낭보는 비단 선수들의 활약에서만 그치고 있는 게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 서동원은 다름슈타드 98(SV Darmstadt 98)의 U-19세팀 코치가 됐다. 다름슈타드는 분데스리가에 ‘차붐’ 열풍을 일으켰던 차범근 SBS 해설위원이 독일로 건너가 최초로 입단했던 팀이다. 그 다름슈타드가 서동원을 U-23세팀 코치로 승격시켰다. 우리 개념으로 따지만 2군 코치로의 발령이다.
비록 다름슈타드가 3부리그 소속의 클럽이나 무려 9부리그까지 엄청난 체계가 잡혀있는 독일 축구리그에서의 3부란 절대 폄하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차범근 이야기를 꺼냈듯 과거에는 더 ‘잘 나갔던’ 팀이 기본적으로 동양에서 건너온 낯선 지도자에게 코치직을 내줬다는 것부터 이례적이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축구의 본토를 자처하는 유럽, 특히나 자존심 강한 독일 축구계의 풍토를 감안한다면 꽤나 놀라운 성과다.
서동원 코치는 독일 현지에서의 MK스포츠와 통화에서 “지난 1년간 U-19세 팀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 인정을 받은 것 같다. 단장이 직접 찾아와 다음 시즌부터는 U-23세 팀을 맡아달라고 하더라”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 나도 얼떨떨하다”는 말로 기쁨을 전했다.
생각지도 못한 쾌거였다. 서동원은 현재 선수가 아니라 지도자다. 눈으로 뛰어난 플레이를 펼쳐보여도 인정받기 쉽지 않은 곳에서 지도력을 높이 샀다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선입견을 깼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여전히 ‘동양’에 대한 시선은 그리 후하지가 않다. 그런 독일의 축구판에서 동양인 코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EO’는 인정을 받았다. 특히, 구단의 재정이 어려워진 상황에서의 승격이라 더 값지다.
서 코치를 만난 다름슈타드의 단장은 지난 1년 동안 지켜본 서동원 코치의 열정과 애정 그리고 성실함을 높이 평가했다며 해고는 고사하고 보다 높은 팀으로의 승격을 제안했다.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것을 뛰어넘어 인정을 받은 것. 더더욱 인상적인 것은 의사소통의 핸디캡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서동원 코치는 웃으며 “아직 독일말이 서툴다. 그런데도 단장이, 조금 더 노력해서 독일어만 유창하게 구사한다면 1군 코치나 감독 뿐 아니라 다른 팀에서도 널 인정할 것이라고 격려해주는데, 솔직히 기분이 너무 좋았다”며 밝은 목소리를 전했다. 그야말로 축구에 대한 순수한 에너지만으로 인정을 받은 셈이다.
다가올 시즌부터 서동원이 보필하게 될 크리스티안 한세츠 감독도 서동원 코치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지난 시즌 서 코치가 이끌던 U-19세팀에서 3명을 U-23세 팀으로 흡수시켰다. 서동
‘원리와 원칙’이 떠오르는 독일이다. 융통성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거둔 성과라 더 값지다. 1년 만의 파격승진,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여준 또 다른 낭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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