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서울) 임성일 기자] 여름을 연상시켰던 낮 기온과 다르게 저녁의 기온은 꽤나 쌀쌀하게 느껴졌던 날씨다. 하지만 환상적인 드라마를 상영했던 ‘상암극장’의 열기는 너무도 뜨거웠다. FC서울 선수들과 서울 팬들은 원 없이 뜨겁게 목 놓았다.
FC서울이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궈안과의 ACL 16강 2차전에서 경기시작 8분 만에 카누테에게 실점을 허용하면서 너무도 어렵게 경기를 풀었으나 후반 아디와 윤일록의 연속골 그리고 종료직전 고명진의 쐐기골을 합쳐 3-1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선수들의 투혼부터 팬들의 투혼까지 박수가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
이기거나, 0-0으로 비겨 연장을 거쳐 승부차기로 꺾는 것이 서울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시나리오였다. 따라서 실점하는 순간 쫓길 수밖에 없던 상황이다. 그래서 넣는 것 이상으로 막는 것이 중요했던 경기다. 하지만 전반 8분 만에 꼬였다.
김치우가 헤딩으로 김용대 골키퍼에게 연결하겠다던 백패스가 화근이었다. 어중간하게 머리에 맞은 공을 베이징의 간판 공격수 카누테가 중간에서 가로챈 뒤 가벼운 슈팅으로 오른쪽 골포스트를 맞고 안으로 굴절돼 들어갔다. 안일했던 김치우의 판단과 함께 최악의 시나리오가 됐다. 서울은 2골 이상이 필요해졌다.
귀중한 1골을 일찌감치 만들어냈으니 베이징 궈안은 급할 게 없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베이징의 벽은 두꺼워졌다. 그래도 전반 중간까지는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듯했으나 이후로는 노골적이 됐다. 카누테와 게론 등 최전방의 외국인 공격수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인 라인을 내렸다.
베이징은 기본적으로 조직력이 좋은 팀이다. 그런 팀이 마음먹고 겹겹이 벽을 쌓았으니 꽤나 답답한 방향으로 경기가 흘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울이 주도권을 잡고 공격을 주도하는 형국이었으나 사실 답답했다.
전반에 만회골이 나오지 않으면서 불안감이 커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도 마음도 급해질 쪽은 서울이고 그렇다면 결국 제대로 된 공격이 나올 수 없다. 집중력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때 선수들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이 바로 서울 팬들의 뜨거운 서포팅이었다.
마치 국가대표팀 경기를 방불케 할 정도의 응원소리가 상암벌을 가득 메웠다. 서울의 아쉬운 찬스가 나올 때마다 팬들의 함성소리는 탄식이 아니라 더 뜨거운 불길로 바뀌었다. 후반 13분 천금 같았던 페널티킥 찬스를 데얀이 실축으로 무산시켰을 때도 데얀의 이름을 연호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일부 서포터들은 추운 날씨에서도 상의를 벗은 채 온몸으로 응원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가둔 채운 간절함은 결국 선수들에게 보이지 않는 힘으로 전이됐고 겹겹이 내려앉아 좀처럼 뚫리지 않을 것 같던 베이징의 벽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디의 동점골 그리고 이어진 윤일록의 역전골은 모두 두 선수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결과다. 선수들의 투혼이 컸다. 하지만 그 뒤에서 함께 목 놓았던 팬들의 투혼도 이날 승리의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종료직전 터진 고명진의 쐐기골은 그
왜 서포터들을 12번째 선수라 칭하는지 증명했던 경기였다. 서울의 주장 하대성은 과거 “팬들의 응원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 아름다운 소름이 결국 FC서울의 ACL 8강을 견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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