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박경훈 감독은 강한 압박을 동반한 미드필더 플레이를 중시하는 지도자다. 그런 박경훈 감독의 지도를 몇 년째 받고 있는 제주는 K리그 클래식 14개 팀을 통틀어 미드필드 운영을 가장 잘하는 팀 중 하나다.
그들의 추구하는 ‘방울뱀 축구’란 허리 장악을 통해 주도권을 쥐고 있으면서 호시탐탐 상대의 빈틈을 노리다가 한방에 물어버리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12일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과 제주의 K리그 클래식 11라운드 경기에서는 제주 특유의 미드필드 플레이가 나오지 않았다.
경기 후 박경훈 제주 감독은 “허리싸움에서 인천에게 밀렸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인천의 허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김남일의 노련한 조율에 끌려 다녀서 어려운 경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경기의 맥을 짚던 김남일의 노련함에 당했다는 고백이었다.
찬사가 아깝지 않을 플레이를 펼친 김남일이다. 비록 0-0으로 끝났으나 인천이 내내 주도권을 잡았던 경기고, 골대를 맞추던 불운과 제주 박준혁 골키퍼의 신들린 방어가 없었으면 인천이 손쉽게 이겼을 경기다. 박경훈 감독의 말처럼 허리싸움에서 승부가 갈렸고 이는 김남일이라는 묵직한 추가 인천 쪽에 있었던 영향이다.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김남일의 여유는 여러 차례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거친 몸싸움 없이도 ‘슥-’ 다가가 상대의 공을 가져오거나 그냥 ‘툭-’ 하고 공을 건드리는 것만으로 소유권을 되찾아오던 장면이 여럿이었다. 그런 뒤 전방으로 ‘휙-’ 보내던 중장거리 패스는 꽤나 정확도가 높았다. 김남일이 ‘툭 또는 슥 그리고 휙’ 할 때마다 인천의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한창 뜨겁던 소싯적, 진공청소기라 불리던 때의 빨아들일 듯한 터프함은 줄었다. 하지만 흐름을 읽어내는, 맥을 잡아내는 눈과 불필요한 힘을 뺀 노련하고도 적절한 움직임이 그를 다시 한 번 전성기로 이끄는 분위기다. 2002년을 전후로 최신기종이었던 김남일이 10년이 지난 2013년에도 당당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무기가 달라졌다.
‘회춘모드’라는 칭찬과 함께 웃고 넘어갈 수준도 넘어서고 있다. 진지하게 대표팀 복귀설이 나돌고 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도, 언론과 여론의 흐름도 모두 김남일에게 호의적이다. 그만큼 잘하고 있는 까닭이다. 선택은 최강희 감독의 몫이지만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낸 자체만으로도 박수가 아깝지 않다.
김남일 역시 “이제는 분명 적지 않은 나이다. (이 나이로도 대표팀에 다시 거론된다는 자체가)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이미 축구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만약 대표팀에 다시 오르게 된다면 어떤 부분으로든 보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영광이라는 뜻을 전했다.
불과 1년 전, 러시아에서 처음 돌아올 때만해도 과연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쳐 보일 수 있을까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본인도 부담이 컸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대표팀 물망에 오를 정도의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가 알고 있던 2002년의 터프가이 김남일은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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