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임성일 기자] 맹수들이 먹잇감 근처로 가기까지의 움직임을 살피면 꽤나 답답하게 느껴진다. 매우 느리게, 다소 건성으로 보일 정도로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면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번쩍’하는 순간, 상황은 종료된다.
그 어설픈 동작들은 모두 호시탐탐(虎視耽耽)의 일환이다. 몸은 느리게 움직이지만 부릅뜬 눈은 매섭게 움직이며 머리와 가슴은 냉정하다. 그래야 한방에 낚아챌 수 있다.
K리그 클래식 역대 최다골(144골)을 보유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이동국은 어슬렁거리는 골잡이의 대표격이다. 오해가 없어야겠다. 게을러 많이 뛰지 않는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이동국의 활동폭이나 수비가담이 예전보다 늘어났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여기서 말하는 ‘어슬렁’은 효과적인 움직임과 맞물린 이야기다.
5월5일 어린이날 전북과 맞붙었던 FC서울 최용수 감독의 표현은 이동국이라는 공격수의 가치 그리고 이동국이라는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는 팀의 든든함을 잘 설명해준다.
최용수 감독은 “확실히 영리한 선수다. 이제는 그 노련함이 점점 더 무르익고 있다. 2선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필요할 때 안으로 슥 들어가서 찬스를 잡아낸다. 그것이 바로 경험의 힘”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먹잇감을 노려보는 범처럼 기회를 살피다가 찾아온 찬스를 정확하게 살리는 능력이 발군이라는 뜻이다.
개인의 능력이야 실상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동국이 근래 더욱 빛나는 것은 조연의 임무, 이타적 플레이에도 확실히 눈을 떴다는 것이다. 이동국 쯤 되는 선수들이 어슬렁거리면, 아무리 2선으로 내려와 있건 측면으로 빠지건 수비는 부담스럽다. 마크가 붙을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스레 동료들에게 찬스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동국 효과’다.
최용수 감독은 “전북에는 골을 넣을 수 있는 자원들이 많다. 언제 어느 때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이동국이라는 공격수의 움직임을 이용하는 틀이 이제는 자리를 잘 잡은 것 같다”는 평가를 전했다. 이 역시 ‘이동국 효과’를 언급한 것이다. 원체 좋은 선수들이 많기도 하지만, 이동국이라는 맹수의 존재감으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5일 서울전에서 이동국은 골을 넣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이동국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이 경기에서 전북은 후반 9분부터 종료 때까지 10명으로 싸워야했다. 선제골을 넣은 이승기가 규정에 어긋난 세리머니를 펼쳐 퇴장 당한 탓이다. 위기였다.
서울은 파상공세로 나왔다. 공격의 핵 에닝요를 빼고 측면 수비수 이규로를 넣는 등 전북은 아무래도 수비적인 전술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전북이 마냥 웅크리진 않았고 서울도 무조건 두드리지는 못했다. 전북의 위협적인 카운트어택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수비에 집중하면서도 전북은 이동국이라는 스트라이커를 앞세워 호시탐탐 역습을 노렸고 실제로 2~3차례 위협적인 카운트어택을 날렸다. 한두 번 가슴을 쓸어내리자 서울은 온전히 공격에만 집중할 수 없었다. 덕분에 전북은 1골을 끝까지 지켜 1-0으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맹수처럼 어슬렁거렸던, 보이지 않는 ‘이동국 효과’를 간과할 수 없는 결과다.
적어도 골을 낚아채는 능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이견을 찾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 그만한 골잡이도 없다. 어슬렁거리는 그의 움직임에서 언젠가부터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적은 나이가 아닌데, 점점 더 무르익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lastuncle@maekyung.com]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