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MBN 보도 화면) |
지난 5월 서울 신사동에서는 유례 없는 음주운전 사고가 터졌습니다.
심심치 않게 접하던 '음주 뺑소니' 사건이지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트로트 영웅'의 일이라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소속사까지 나서 조직적으로 범행을 은폐하려고 한 사실이 보도를 통해 드러나면서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인기 가수의 일탈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모방 범죄 우려까지 나왔는데, 실제로 김호중 사건이 보도되고 200일 가량 지난 지금까지 음주사고 이후 현장을 이탈해 '술타기'를 한 범행이 계속해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언론보도가 모방 범죄를 조장하는 데 그친 것만은 아닙니다.
이번 '취[재]중진담'에서는, 이른바 '음주운전 및 운전자 바꿔치기'로 불리는 김호중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MBN 최초보도로 김호중 씨가 지난 5월 9일 밤 서울 신사동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달아나 운전자를 바꿔치기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뒤에도 취재진은 김 씨의 사고 후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김 씨가 사고 직후 경기도 구리의 한 호텔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호텔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김 씨가 캔 맥주 4캔을 직접 꺼내 구매하는 영상과 영수증을 입수해 보도했습니다.
↑ (사진 = MBN 보도 화면) |
한 경찰 관계자는 음주운전 후 추가 음주를 일컫는 '술타기'가 범죄자들의 유서 깊은 꼼수라고 말했습니다.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면 편의점에 가서 소주부터 들이켜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오래전부터 전해져 왔다는 것이죠. 하지만 김 씨의 수상스러운 행적은 논란을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캔 맥주 보도 이틀 뒤인 5월 19일 김 씨는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했고 이튿날 대검찰청은 ‘음주 교통사고 후 의도적 추가 음주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 신설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입법 건의했습니다.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냈다고 의심 받는 사람이 음주운전 발각을 면하기 위해 추가로 음주할 경우 음주측정거부죄와 동일한 형에 처한다는 내용입니다.
그 사이 술타기 수법도 계속됐습니다. 캔 맥주 보도 한 달여 뒤인 지난 6월 전주에서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포르쉐를 몰다 경차를 들이받아 10대 여성을 사망하게 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음주 측정 결과 남성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84%로 확인됐지만 경찰은 이 수치를 남성에게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남성이 사고를 낸 뒤 자택 인근 편의점에서 맥주 2캔을 구매해 마셨고 "술은 사고 이후에 마신 것"이라고 경찰에 진술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경남 밀양에서 술을 마신 50대 운전자가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한 뒤 '술타기'로 처벌을 모면하려 했던 사실도 보도됐습니다.
유사 사건이 반복되는 술 타기 방지법에 대한 입법이 지연되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뒤로 '술타기'를 처벌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모두 9건 발의됐습니다. 이른바 술타기 방지법은 지난 9월이 되어서야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고,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289인으로부터 286개의 찬성표를 획득해 의결됐습니다. 인기 가수의 일탈로 그간의 입법 공백이 뒤늦게 해결된 것입니다.
↑ (사진 = MBN 보도 화면) |
술타기 방지법이 통과되기 하루 전인 지난 13일, 김 씨에게는 2년 6개월이라는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김 씨는 선고 결과를 듣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집행유예도 가능하다는 예상이 많았기에 법조계도 술렁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경찰의 촘촘한 수사가 있었습니다.
경찰은 사건 직후인 지난 5월 10일 새벽, 김 씨가 자신의 벤틀리를 직접 운전한 모습이 담긴 CCTV를 확보했습니다. 또 김 씨를 대신해 허위 자수한 매니저 장 모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김 씨와 장 씨 등이 범행 은폐를 공모한 정황이 담긴 음성파일 등을 확보했습니다. 김 씨가 경찰에 출석하기도 전에 운전자 바꿔치기와 조직적 범죄 은폐 정황을 파악한 것입니다.
재판부는 김 씨가 CCTV에 음주의 영향으로 비틀거리는 게 보이는데도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을 한다"며 질타하기도 했는데요. 김 씨가 "음주운전은 했지만 운전을 못 할 정도로 취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해온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입니다.
특가법상위험운전치상 혐의는 음주 등의 이유로 운전을 하기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해 사람을 다치게 했을 경우 적용됩니다. 앞서 경찰은 김 씨에게 특가법상위험운전치상 혐의를 적용하며 그 근거로 김 씨가 비틀거리는 모습이 담긴 CCTV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김 씨 측은 "다리를 비틀거린 것은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발목 부상 때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경찰은 김 씨와 김 씨의 지인 등에게 휴대전화를 압수해 포렌식했는데요. 김 씨가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치거나, 지인들과 과격한 운동을 즐긴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주 사고 전까지 과격한 운동을 즐긴 당사자가 '유년기에 발목을 다쳐 다리를 절뚝거렸다'고 주장한 꼴입니다. 또 경찰은 김 씨의 평소 걸음걸이와 술을 마시고 운전하기 직전의 걸음걸이를 비교한 국과수 감정 결과도 검찰에 넘겼죠. 김 씨에게 내려진 징역 2년 6개월은 이러한 과정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진 = MBN 보도 화면) |
김 씨에게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가 적용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개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김 씨는 음주운전보다 더 형량이 무거운 특가법상위험운전치상 혐의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사법 방해 행위를 했
처음에는 만사가 올바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일은 반드시 올바르게 되돌아간다는 뜻의 사자성어로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김호중 사건은 '술타기 방지법'과 함께, 사필귀정이라는 또 하나의 사례를 남긴 셈이 됐습니다.
[ 안정모 기자 an.jeongmo@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