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 건물 날려버릴 정도 위력
2014년 고양시에서 용오름 관측
↑ 영화 '트위스터스'의 한 장면 |
지난 주말 영화 ‘트위스터스’를 봤습니다. ‘미나리’로 잘 알려진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작품으로 토네이도를 주제로 한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토네이도를 용오름이라고 표현합니다. 기상청은 용오름을 ‘강한 바람이 말아 올린 모레, 물방울, 물건 등을 수반한 소용돌이’라고 설명합니다. 쉽게 말해 지상 혹은 해상의 물체를 공중에 띄울 정도로 강한 바람 덩어리죠.
솔직히 우리나라에선 토네이도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전 토네이도라는 단어를 들어도 특별히 느껴지는 게 없습니다. 토네이도가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이미지는 그려지지만, 그걸 떠올린다고 별 감정이 들진 않죠. 마치 용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을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매년 1천 개가 넘는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미국에 살았다면 달랐겠죠. 트위스터스는 미국 거주자들에게 토네이도란 자연재해가 어떤 의미의 존재인지 꽤 잘 표현했습니다. 그들에게 토네이도는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는 공포 그 자체이면서 자연의 힘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구현된 경외의 대상이었습니다. 미국인의 마음을 잘 담았기 때문일까요. 영화 트위스터스는 북미에서 2억 달러 넘게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 토네이도로 쑥대밭이 된 켄터키주 메이필드 마을 |
토네이도가 쓸고 간 지역 곳곳에서 안타까운 소식 들려왔습니다. 1천 채 주택이 터만 남긴 채 사라졌습니다. 켄터키주에선 대규모 공장까지 풀썩 주저앉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건물 잔해 아래에서, 길에서, 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보통 토네이도는 겨울에 잘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더욱 대비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93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그 중에선 태어난 지 5개월이 된 아기도 있었습니다.
↑ 토네이도 등급표 (행안부 잠재재난 위험 분석 보고서) |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한 바람으로 기록된 태풍 매미는 최대순간풍속이 시속 216km에 달했습니다. 강풍 피해도 상당했죠. 그런데 토네이도 등급으로 따지면 EF2 수준입니다. 생각보다 높지 않죠. 우리가 경험한 것 중 가장 강한 바람이 토네이도 세계에선 중간쯤 가는 수준인 겁니다.
EF4 수준의 토네이도가 되면 재앙이 시작됩니다. 2021년 12월에 발생한 토네이도 중에도 EF4 토네이도가 있었죠. 바람은 시속 300km가 넘고 집이 완전히 파괴되고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마지막 등급인 EF5의 토네이도를 만나면 견고한 건축물이 기초째 사라지고 자동차 크기의 물체가 100m 이상 날아가는 공포 그 자체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EF5의 토네이도는 미국에서도 흔치 않지만, 종종 발생해 큰 피해를 남깁니다. 2013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5월에 발생한 이 토네이도의 풍속은 320km를 넘으며 EF5 등급이 매겨졌습니다. 토네이도 이동 경로에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있었고 24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재산피해도 많이 발생했습니다. 2011년에도 EF5 토네이도가 미주리주 조플린에서 발생해 무려 158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 2014년 고양시에서 목격된 용오름(연합뉴스) |
용오름은 보통 커다란 평원에서 발생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으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은 아니죠. 하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고양시의 사례도 그렇고, 2020년 이후에도 육상에서도 종종 용오름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용오름을 잠재적인 재난으로 보고 지난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기후를 가진 일본에서 태풍 등으로 영향으로 용오름이 발생한 사례가 꽤 자주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곳에서도 용오름이 발생할 수 있다며 2021년 체코 산악지역 남모라비아주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해 5명이 숨진 사례를 예로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로 용오름이 만들기 좋은 환경이 됐다며 안심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
갈수록 심해지는 더위와 추위. 거칠어지는 호우와 태풍에 시달리고 있는 21세기. 안 그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새로운 재난이 추가될 수 있다는 소식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