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로코 마라케시의 커피룸을 재현한 바샤커피 내부. / 사진=롯데백화점 제공 |
중세 모로코 마라케시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한 고급 해외 커피 브랜드가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200종이 넘는 원두를 주문 즉시 원하는 굵기로 갈아 내려주고, 커피를 내려 골드팟에 담습니다.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통한 걸까요. 1만 6,000원~48만 원 사이에 책정된 가격으로 ‘커피계 에르메스’라고 불리지만 연일 사람들로 붐빕니다.
이처럼 해외 커피 업계가 한국에 눈독을 들이는 건 커피 소비량 대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시장 특성을 고려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이기도 한 커피는 2021년 국민영양 통계에서 배추김치에 이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에 달합니다. 전 세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152잔)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입니다. 이는 2018년 363잔에서 연평균 2.8% 증가했고, 지난해 318잔을 소비한 미국보다 80잔 이상 많은 커피를 소비한 셈입니다.
↑ 커피 자료화면.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한국 커피의 시초부터 대중적으로 커피를 향유 하게 된 시점은 언제인지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4o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챗GPT는 한국에서 커피가 기록된 최초의 사례로 “1896년 고종 황제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마신 것”이라며 “이는 한국에서 커피가 상류층과 왕실을 중심으로 점차 퍼져 나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커피’란 기록이 처음 발견된 건 고종이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마셨다는 시점보다 무려 36년 앞선 철종 때로 파악됩니다.
조선 천주교회 4대 교구장이던 베르뇌 신부가 1860년 3월 6일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보낸 편지에 “커피 20kg을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듬해 조선에 입국한 랑드르 신부를 통해 잘 받았다는 베르뇌 신부의 다른 편지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정황에 따라 베르뇌 신부의 커피가 천주교 전도와 함께 조선 왕실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을 공식으로 방문하는 외교관이나 선교사들에게 커피를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최초 의료선교사로 기록된 호러스 알렌은 경복궁에서 커피가 제공됐다고 기록했습니다.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1884년 1월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언덕에 있는 ‘더 하우스 오브 슬리핑 웨이브’라는 별장에 가서 당시 조선에서 유행하던 커피를 식후에 마셨다”고 적었습니다.
커피의 대중화는 조선 말기 때로 추정됩니다.
1899년 8월 31일 자 독립신문에는 ‘윤용주가 홍릉 전차정거장 앞에서 다과점을 개업하고 커피와 차, 코코아를 판매한다’는 광고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윤용주 다과점’은 최초의 한국인 주인의 대중 커피 판매점입니다. 시설과 규모 등에 대해 알려진 바 없지만, 서울전차 개통 이후 우수한 교통입지에 일반인을 상대로 한 커피 판매점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근대화 후에는 커피가 중등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1955년 편찬된 ‘가사교본 요리실습서’에는 커피 끓이는 법 등이 기재됐습니다. 또 조선인삼원에서는 인삼 커피도 만들었는데 이는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출시했습니다.
↑ 동서식품 인스턴트 커피 판매 안내 기사. / 사진=매일경제 |
이후 간편하게 타 마시는 ‘커피믹스’가 개발된 건 1976년이며, 공공장소에 커피자판기 1,100여 대가 설치된 건 1978년입니다. 이로부터 1999년 7월 스타벅스가 국내에 처음 문을 열며 커피 공화국의 막을 열었습니다.
한편 커피와 관련한 유익 연구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이 나옵니다. 최근 이정은 서울대 식품영양학교 교수팀에 따르면 매일 커피를
다만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커피 안에 함유된 화학물질이 질병의 위험성을 높이는 등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한 섭취는 조심해야 합니다.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jzero@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