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 사고 대비 레디코리아 훈련 모습 |
2024년 6월 5일, 일본 나리타 공항을 출발한 여객기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낮췄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주변에는 급변풍이 불고 있어 착륙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종사는 침착하게 활주로로 바퀴를 내렸고,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려 각자 목적지로 향할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었고, 활주로를 달리고 있던 여객기가 옆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시각, 활주로 옆에는 승객을 태운 버스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여객기의 움직임에 버스 운전기사는 대처할 수 없었고, 버스와 여객기는 강하게 충돌합니다. 충돌은 화재로 이어졌고, 불은 곧 폭발하듯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난 6월 5일,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레디코리아’ 훈련 시나리오입니다. 인천국제공항 모형비행기 훈련장에서 실시된 이 훈련에는 행안부뿐만 아니라 인천국제공항, 인천 중구청, 영종소방서와 이스타항공 등 많은 기관과 기업이 참여해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 세부공항에 대한항공 여객기 비상착륙 모습 (MBN) |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에도 승무원과 승객들이 침착하게 대처했습니다. 문을 열고 비상탈출 슬라이드를 통해 밖으로 차례로 대피했고, 비행기를 타고 있던 173명이 모두 무사했습니다.
대한항공 여객기를 괴롭힌 건 ‘급변풍’이었습니다. 윈드시어(wind shear)라고도 불리는 급변풍은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갑자기 달라지는 현상입니다. 급변풍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땅을 지나가는 공기가 지면과 마찰로 속도가 늦어지고, 상층 공기와 속도 차이가 벌어져 발생합니다. 대기 상층부와 하층부의 바람 방향 차이, 땅과 바다의 온도 차이, 지형 등 급변풍은 여러 요인으로 발생합니다.
↑ 우리나라 주요 공항 급변풍 경보 통계 (자료 : 기상청) |
최근 5년간 통계를 확인해보니, 인천과 김포, 제주공항 3개 공항에서 연평균 475.6건의 급변풍 경보가 내렸습니다. 하루에 1.3번꼴로 경보가 내려졌던 겁니다. 가장 경보가 많이 내려진 공항은 제주도였습니다. 2021년에는 301번의 급변풍 경보가 발표됐고, 다른 해도 200건을 훌쩍 넘는 수준의 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이혁제 항공기상청 사무관은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한라산을 넘어오며 속도가 빨라지고, 공항 주변에서 튀어 오르며 급변풍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한라산 양옆으로 바람이 돌아서 불어와 공항 주변에 급변풍을 만들기도 합니다.
제주공항기상대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제주공항에 발효된 1,903회의 각종 경보 가운데 급변풍 경보가 1,289회로 67.7%를 차지했다고 밝혔습니다. 급변풍이 비행기를 결항시키는 주범이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급변풍은 감지하거나 예측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각 공항 활주로에는 급변풍을 탐지할 수 있는 저층급 변풍경보장치가 설치돼 있습니다. 이 장비는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발생하는 급변풍을 감지해서 관제탑 등에 알려줍니다. 이보다 더 높은 고도에서 발생하는 급변풍을 관측할 수 있는 장비 도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주공항기상대는 수평·수직 10㎞ 범위 급변풍을 감지할 수 있는 공항라이다와 수평·수직 240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 남이는 자신에게 불리한 바람이 불 때 이 말을 되뇌며 적을 향해 활을 쏩니다. 그럼 급변풍이란 적을 만났을 땐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람은 잘 계산하면 극복할 수 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