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임금피크제는 많은 회사에서 직원들의 정년보장을 위해 쓰고 있는 제도입니다. 정년을 맞추거나 또는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급여를 조금씩 줄여 사측의 부담을 줄이면서 고용을 보장하는 방식이죠.
국내에서 임금피크제가 시작된 건 2003년 신용보증기금이 도입한 게 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와 같이 임금피크제가 활성된 건 박근혜 정부 시기인 2013년 법개정으로 2017년부터 60세 정년이 법으로 의무화되면서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24일 기자는 임금피크제를 잘못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정당을 취재해 보도했습니다. 다른 당도 아니고 바로 여당인 국민의힘이었습니다.
5월 24일 보도 - [단독] 40대 직원도 임금피크제 하는 국민의힘…법원 "위법“
기사가 나간 뒤 여러 반응이 나왔습니다. 당을 향한 비판도 있었지만 ‘정당 당직자는 공무원인데 어떻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느냐’ 같은 의문도 있었습니다. 짧은 방송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내용을 좀 더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 국민의힘 당사 (사진=연합뉴스) |
정당 당직자는 일단 공무원이 아닙니다. 국가공무원법이 아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에 해당합니다. 다만, 민간기업처럼 이윤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만큼 공기업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되는 A 씨는 지난 1992년 공채를 통해 민주자유당 당직자로 입사했습니다. 이어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당 수석전문위원과 청와대 비서관 등을 지낸 베테랑 당직자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 입사 26년차인 2018년 A 씨는 임금피크제 전환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때 나이 불과 48살이었습니다. 정년인 60살까지 무려 12년에 걸쳐 급여를 깎는다는 통보였습니다.
이유는 당이 운영하던 정년제도였습니다. 2017년 60세 정년이 시작되기 전까지 당은 ‘계급정년제’를 운영했습니다. 군인, 경찰, 소방 등 특수조직에서 운영하는 제도인데 특정계급에 이른 상태에서 일정 기간 이내에 다음 계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나이와 관계없이 퇴직하는 제도입니다. 국민의힘도 이처럼 아래와 같은 계급정년을 운영했습니다.
1급 – 7년
2급 – 8년
3급 – 9년
4급 – 7년
5급 – 8년
6급 – 7년
7급 – 7년
예를 들어 7급 직원이 7년 이내에 6급이 되지 못하면 퇴직해야 하는 거죠. 최고 직급인 1급이 되면 더 이상 올라갈 직급이 없으므로 7년이 지나면 자동 퇴직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60살 정년이 시행되면서 당 사무처는 노조와의 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합니다. 다만 기존의 계급정년과 연동한 임금피크제였습니다. 기존의 계급정년을 유지하되 계급정년이 되면 ‘정무직’이라는 직급으로 바꾼 뒤 그 시점부터 60살까지 임금피크제를 한다는 거죠. 임금피크제를 할 경우 급여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삭감됐습니다.
1년차 - 11%
2년차 - 21%
3년차 - 30%
4년차 - 37%
5년차 이상 - 44%
임금피크제를 하고 5년차가 되면 급여가 거의 절반이 깎이게 되는 거였죠. 올해 기준으로 임금피크제를 한지 7년차인 A 씨는 44% 줄어든 임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A 씨는 이런 방식의 임금피크제가 부당하다며 2022년 소송을 냈습니다. 이 소송에는 A 씨의 2년 후배로 A 씨와 같은 시기 임금피크제를 시작한 황규필 전 국민의힘 총무국장도 참여했습니다.
재판의 쟁점은 국민의힘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령법의 아래 조항을 위반했는지였습니다.
사업주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 외의 기준을 적용하여 특정 연령집단에 특히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연령차별로 본다.
↑ 서울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
A 씨 등은 계급정년이라는 ‘연령 외의 기준’을 적용해 불리한 결과를 초래한 차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1심 선고부터 지난 4월 2심 선고까지 재판부는 잇따라 A 씨와 황 전 국장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A 씨 등의 주장대로 국민의힘 임금피크제가 고령자고용법 조항에 위반된다고 판단했습니다.
- 서울고법 선고
일반기업에서 사용하는 임금피크제와 비교하며 국민의힘 당직자는 이른 나이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되는 점을 문제로 꼬집기도 했습니다.
- 서울고법 선고
반면, 국민의힘 측은 ‘정당의 특수성’을 주장했습니다. 정당법상 정당 당직자는 중앙당에 100명까지만 둘 수 있는 만큼 계급정년 제도는 청년 신규채용을 위한 방편이었다는 겁니다. 또 임금피크제를 시행해 줄어든 인건비를 청년 신규채용에 썼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급정년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봤고, 국민의힘이 실제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인건비를 이용해 청년을 채용한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잇따른 패소에 국민의힘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일단 대법원 판단을 받기 위해 상고했지만 대법원 판단도 같을 가능성이 큰 만큼 대응책 마련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17일 국민의힘 내부게시판에는 현직 총무국장 명의의 글이 게시됐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달린 글에서 총무국장은 ”임금피크제 소송 2심 결과는 당 사무처 인사관리, 승진제도, 임금체계 등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며 곧 논의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총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법원 판단 취지를 감안해 지혜를 모으겠다“고 밝혔습니다.
2심에서 승소한 황 전 국장은 ”잘못된 제도를 고치면 저 개인 뿐만 아니라 임금피크제 적용대상인 후배들의 상실감도 없애줄 수 있기 때문에 소송을 한 것“이라며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A 씨는 현재 국민의힘에서 불합리한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당직자가 20명 정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전에는 계급정년에 도달했다는 이유로 30대 당직자가 임금피크제 대상이 된 경우도 있다고도 했습니다.
A 씨는 소송을 했다는 이유로 당으로부터 받은 불이익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 대기발령을 하는가 하면 업무를 주지 않은 채 업무계획서를 쓰라고 지시하고, 주기적으로 내선 전화로 근태를 감시하는가 하면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사무실 문을 없앴다는 것이었습니다. A 씨는 직장내괴롭힘을 당했다며 노동청에 신고하고 부당대기발령으로 지방노동위에 제소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노동청과 노동위는 모두 법 위반사항이 드러나지 않았다며 A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지난 2012년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
A 씨와 황 전 국장은 계급정년이 국민의힘에만 있는 제도라고 강조했습니다. 양당 체제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상대편 더불어민주당에는 없는 제도라는 겁니다. 국민의힘에 계급정년이 생긴 건 군사정부 시절의 잔재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A 씨는 임금피크제 문제 해결에 당 지도부, 나아가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서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민의힘의 임금피크제가 생긴 계기가 된 2013년 60살 정년 도입을 주도한 게 당시 새누리당이었고 대표는 황 위원장이었으므로 황 위원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거죠. 또 A 씨는 다가올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들이 임금피크제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워야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