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느냐”
범죄자의 처우를 다룬 기사를 보면 으레 볼 수 있는 반응입니다. 신상공개를 하지 않는 기사에서도 혹은 일반 시민들의 법감정에 못 미치는 형이 법정에서 선고됐을 때 볼 수 있는 반응이기도 하죠.
유죄가 확정된 혹은 확정은 안됐지만 구속 상태인 교도소·구치소 수감자들의 인권을 다룬 기사에서도 마찬가지 반응이 나옵니다. 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재소자에게 무슨 인권을 챙겨주느냐는 식의 반응이 나오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에는 재소자의 인권을 보장하라는 조항이 명시돼 있습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4조입니다.
이 법을 집행하는 때에 수용자의 인권은 최대한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이 명시하지 않고 있죠. 이 때문에 여러 소송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과밀수용’ 논란입니다. 재소자들이 승소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 중 눈에 띄는 부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성 A 씨는 지난 2020년 3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 간 수원구치소에 수감됐었습니다. A 씨가 수감된 방은 15.41㎡ 넓이에 8명이 수용돼 있었습니다. 계산해보면 A 씨가 수용된 방의 1인당 면적은 1.92㎡가 나왔죠.
A 씨를 비롯한 재소자 29명은 국가를 상대로 배상 소송을 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면적에 미치지 못한 면적에 수용되는 바람에 정신적 고통을 입었으므로 국가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럼 재소자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면적’은 얼마일까요? 앞서 소개한 형집행법을 비롯한 현행법에는 재소자에게 최소 어느 정도 면적 이상의 수용공간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명시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이에 A 씨를 비롯한 재소자들은 2.58㎡를 최소면적으로 주장했습니다. 법무부 훈령인 ‘법무시설 기준규칙’에서 재소자 인당 수용면적을 2.58㎡로 규정하고 있다는 걸 근거로 들었습니다.
↑ 교도소 내부. 해당 호실은 약 12㎡이다. (사진=연합뉴스) |
반면 정부는 법무시설 기준규칙이 정한 인당 2.58㎡가 내부 행정절차상 기준에 불과할 뿐 대외적으로 보장해야 하는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교도소 건설부터 수용 호실 구획 등을 나눌 때 임의로 정한 것이지 재소자 1인당 보장해야 하는 면적을 정한 수치가 아니라는 거죠. 이 주장은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졌습니다.
법원은 대신 재소자에게 보장해야할 최소면적을 2㎡로 봤습니다. 법에는 규정돼 있지 않지만 앞서 대법원이 기준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
당시 대법원이 인정한 2㎡ 기준을 제시한 건 지난 2017년 부산고법에서 나온 선고였습니다. 이 선고는 사기죄로 수감됐던 두 재소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배상소송이었는데 이들은 과밀수용으로 최악의 경우 1.23~1.44㎡ 밖에 수용면적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재소자 역시 법무시설 기준규칙에 나오는 2.58㎡를 최소면적으로 주장했지만 당시 재판부인 부산고법 민사6부(윤강열 부장판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재판부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최소면적을 2㎡로 계산했습니다.
- 2017. 8. 31. 부산고법 선고
이어 상급심을 맡은 대법원 역시 2㎡ 기준이 적절하다고 인정했습니다.
- 2022. 7. 14. 대법원 선고
대법원이 2㎡를 재소자에게 보장해야 할 최소면적으로 정한 뒤 여러 소송이 이어졌고 이 기준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점이 입증됐을 경우 국가가 재소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선고가 이어졌습니다.
대법원 판단이 있었던 만큼 A 씨 등이 낸 소송에서도 정부 측은 2㎡ 기준을 납득한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재판에서 정부 측은 새로운 주장을 하나 내놨습니다. ‘여성은 신체구조상 2㎡보다 더 좁아도 된다’는 겁니다.
앞서 대법원이 인정한 2㎡ 기준은 부산고법 선고에서 볼 수 있듯 대한민국 남성 평균 신장이 174cm라는 점을 근거로 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같은 논리로 볼 때 “여성 재소자들은 평균신장이 159.6cm이기 때문에 최소면적을 더 좁게 잡아 1.68㎡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때문에 정부는 A 씨의 경우 제공된 면적이 1.92㎡이므로 여성에게 제공해야 하는 최소면적을 넘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받아들여졌을까요?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소자에게 최소한 제공해야 하는 면적에 남성과 여성 간 차이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 선고
↑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연합뉴스) |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48단독 장원정 판사는 A 씨를 비롯한 원고 29명 중 16명은 남녀 모두 공통적으로 수용면적 2㎡를 보장받지 못한 만큼 국가가 피해를 배상해줘야 한다고 선고했습니다. 과실수용된 날짜 등을 고려해 A 씨에게는 25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고, 나머지 원고들도 최소 5만 원에서 최대 200만 원까지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던 사기범들이나 A 씨는 비교적 운이 좋았던 편에 속합니다. 어찌됐든 과밀수용을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과밀수용을 당했다는 걸 입증하려면 교도소·구치소 측에서 재소자의 수용기간, 수용된 호실 면적, 수용된 인원 정보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A 씨 등 소송에서는 정부 측이 정보를 제공해줬습니다.
A 씨 등을 대리한 고혜련 법무법인 혜 대표변호사는 “A 씨 소송에서는 재판부가 정부 측에 적극적인 정보 제공을 요구했기 때문에 그나마 정보를 받을 수 있었다”며 “A 씨 말고도 맡고 있는 다른 과밀수용 재소자들 소송에서는 정부가 ‘비공개 대상 정보’라며 제공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A 씨 재판을 거론하며 '이미 정부가 정보를 제공해준 만큼 똑같이 줘야 하지 않느냐'고 따지자 오히려 다른 재판의 정부 측 대리인은 “정보를 주지 않는 게 맞는데 그쪽 정부 측 대리인이 잘못한 것”이라고 말했다고도 합니다.
결국, 대법원이 과밀수용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기준에 부합했는지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재소자들이 배상 판결을 받아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서두에서 '재소자의 인권을 왜 보장해줘야 하느냐'에 대해 현행법에서 인권을 보장해주라고 했다는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럼 왜 재소자의 인권을 보장해줘야 하느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앞서 최소면적 2㎡ 기준을 제시한 부산고법 재판부는 과밀수용의 문제점으로 ’재사회화의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교도소 수감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범죄인을 교화하는 것인데 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겁니다. 당시 재판부의 선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 2017. 8. 31. 부산고법 선고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