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경찰이 공무를 집행하는데 이를 방해하거나 심지어 경찰관을 폭행까지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될 겁니다. 그런데 경찰이 정당하지 않은 공무를 집행 중이었다면, 이를 막으려 시민이 경찰관을 폭행했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을 받게 될까요, 아니면 경찰의 공무가 정당하지 못했으니 처벌을 안 받게 될까요?
이런 일이 코로나19가 한창 확산하던 지난 2021년에 실제로 벌어졌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재판은 항소심까지 포함해 모두 4차례 진행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판 결과는 서로 엇갈리게 됩니다. ‘과도한 집회 금지’냐 ‘공무집행방해’냐 판단이 갈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1년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일대는 경찰버스와 철제펜스가 통행로 곳곳에 설치됐습니다. 앞서 서울시가 코로나19 확산을 우려로 광복절 기간 집회·시위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서울경찰청은 차도에 기동대 버스로 차벽을 치고, 인도에는 철제펜스를 설치해 통행을 막았습니다.
↑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에 세워진 차벽 (사진=연합뉴스) |
↑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에 쳐진 철제 펜스 (사진=연합뉴스) |
같은 날 오전 9시쯤 탈북민 남성 A 씨가 이 펜스를 넘어 들어왔습니다. A 씨는 보수성향 정당인 국민혁명당 소속으로 당시 당이 추진하는 ‘걷기 대회’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름만 걷기 대회일 뿐 사실상 집회를 하려는 거라 보고 A 씨를 비롯한 당원들을 막아섰습니다.
당시 경찰은 A 씨에게 “이 장소는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됐고, 경찰이 질서유지를 위한 차단 펜스를 설치해 일반인 통행을 막고 있으니 펜스 바깥으로 나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A 씨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 내가 왜 나가냐”라며 맞섰습니다. 결국 경찰관이 A 씨를 제지하려 막아섰고, A 씨는 “니가 뭔데 나를 폭행하느냐”며 경찰관의 목을 한 차례 때렸습니다.
여러 경찰관들이 A 씨를 둘러쌌고, A 씨는 “이 개XX들아 다 같이 죽자”라고 욕설을 하는가 하면 철제 펜스를 집어 던지려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찰관들은 A 씨를 공무집행방해와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습니다.
↑ 2021년 8월 14일 당시 광화문 일대 통행을 제한하는 경찰 (사진=연합뉴스) |
↑ 2021년 8월 14일 당시 경찰에 제지당하는 시민 (사진=연합뉴스) |
A 씨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에서 검사 측은 “사전 금지된 집회·시위 장소에서 경찰공무원의 질서와 안전 유지에 관한 정당한 직무집행을 방해했다”며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지난 2022년 12월 형사재판 1심 법원은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 씨가 경찰관을 폭행한 건 맞지만 공무집행방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방해받은 공무가 적법했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하는데 당시 경찰의 공무 즉 집회를 막으려는 시도는 적법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2022년 12월 형사재판 1심 선고
당시 경찰에게 주어진 임무는 ‘집회’를 막는 것이지 ‘통행’을 막는 것이 아닌 만큼 통행을 막는 건 과도하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검사 측이 항소했지만 2심의 결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심에서 검사 측은 ‘행위를 제지하지 않으면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칠 수 있는 급박한 상태’라면 제지할 수 있다는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당시 A 씨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코로나19 확산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통행을 막은 건 정당한 공무집행이었다는 주장입니다. 2심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 2023년 12월 형사재판 2심 선고
검사 측이 상고하지 않아 A 씨는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수사기관이 A 씨를 재판에 넘기는 사이 A 씨는 이에 맞서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자신이 ‘불법체포’를 당한 만큼 손해배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3월 민사재판 1심 법원도 형사재판과 마찬가지로 A 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경찰이 정당히지 않은 공무집행을 한 만큼 A 씨에게 700만 원을 배상해줘야 한다고 선고했습니다.
민사재판 1심 법원은 당시 A 씨를 비롯한 국민혁명당원들이 하려는 걷기 대회를 원천봉쇄하려는 시도부터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집시법이나 감염병예방법은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사후에’ 제지하도록 한 규정이지 ‘사전에’ 막을 수 있게 허용하는 규정이 아니라는 겁니다.
- 지난해 3월 민사재판 1심 선고
법원은 형사재판 결과도 거론하며 “A 씨가 경찰관 목을 가격하고, 철제펜스를 들어 위협했다 하더라도 공무집행방해가 아닌 이상 현행범 체포는 명백히 위법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민사재판에서도 승소한 만큼 A 씨의 완승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민사재판 2심에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연합뉴스) |
저희 취재진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A 씨의 민사재판 2심 결과를 최근 단독 취재했습니다.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7-2부(해덕진·김형작·김연화 부장판사)는 1심판결을 취소하고 A 씨의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가가 A 씨에게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민사재판 2심 법원의 판단 근거도 기존 재판 결과와 180도 달랐습니다. 앞선 재판들은 모두 경찰이 집회를 막는다는 이유로 과도한 통행 제지를 하고 있었던 만큼 정당한 공무집행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반면 민사재판 2심 법원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경찰이 통행을 막을 근거가 충분했다고 판단했습니다.
- 지난달 18일 민사재판 2심 선고
정당한 공무집행이라는 전제가 성립된 만큼 이를 방해한 A 씨의 행위는 자연스럽게 ‘공무집행방해’가 성립한다는 게 이번 법원의 판단인 겁니다.
그런데 A 씨는 이미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언뜻 보면 민사 2심 법원이 형사재판 결과까지 부정하는 걸로 보이기도 하죠. 이에 대해 민사 2심 법원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 지난달 18일 민사재판 2심 선고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건 이미 확정된 사실입니다. 이를 뒤집을 수는 없죠. 다만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A 씨가 경찰을 폭행한 건 사실이므로 그 시점에서는 유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체포한 게 적법하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코로나 시기 과도한 집회금지 논란과 공무집행방해 혐의 간 충돌은 A 씨 사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집회금지를 두고 수많은 법적 다툼이 있었고 결과도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참고 : 코로나 시기 '과도한 집회 금지'…사법부의 역할은 어땠나 [법원 앞 카페]
A 씨 사례 역시 재판마다 다른 결론이 나온 만큼 결국 최종 결과는 대법원의 판단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앞서 형사재판에서는 검사 측이 상고하지 않아 2심에서 무죄로 결론 났지만, 민사재판의 경우에는 A 씨 측이 상고했습니다. 경찰의 제지가 적법한 공무집행이었는지 과도한 집회 금지였는지, A 씨가 경찰의 정당한 공무를 방해한 것인지 부당한 불법체포를 당한 것인지는 대법원에서 가려질 전망입니다.
나아가 대법원은 코로나 시기 정부의 ‘집합금지’ 처분 전반에 대한 적법 여부도 심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맡고 있죠. 사실상 엔데믹을 맞이한 지금 코로나 시기의 논란에 사법부가 어떻게 종지부를 찍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