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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덜 짜게 제 아이를 위한 레시피로 국을 다시 끓여 주세요”
“아이에게 먹일 반찬이 없네요. 계란말이, 조미김 좀 주세요”
2년 전부터 ‘노키즈존’(No Kids Zone)으로 전환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제주도의 한 식당 사장님은 이러한 요구에 “손자, 손녀를 두고 있고 아이를 너무도 좋아하는 저희로서도 향후 노키즈존을 언제 끝낼 수 있을지 항상 고민 중에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노키즈존’이란 14세 미만, 5세 미만, 미취학 아동, 유모차 등 조건은 다소 다르지만 어린아이들의 출입을 금지하는 곳을 말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합계출산율은 0.65명입니다. 전례 없는 저출생 시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하다지만, 무리한 요구나 뛰어다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부모를 향한 눈총이 사장과 손님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며 노키즈존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특히 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저출생 극복을 내세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공약이 공개됐습니다.
대표적으로 새로운미래는 ‘노키즈존 방지법’ 입법 제안에 나섰습니다.
새로운미래는 특정 대상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행위가 만연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 출산율 제고 측면에서도 맞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노키즈존 방지법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또한 “노키즈존 방지법 발의와 함께, 어린이가 발생시킨 예기치 못한 사고로부터 사업주를 보호할 것을 약속한다”며 “어린이 손님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피해에 대해 영업배상보험 처리 등 자기분담금과 보험 가입비 일부를 국가가 부담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네티즌들은 “사고 비용을 왜 국가가 부담하나, 이런다고 실효성이 있는지도 의문”이라는 반응과 “예기치 못한 사고로부터 사업주도 보호하고 부모들도 마음 편하게 아이들 키우는 좋은 공약”이라는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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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4.0 캡처 |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4.0은 ‘노키즈존 방지법’에 대해 “어린이와 같은 취약한 그룹이 사회적 공간에서 차별받지 않고 포용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며 “이는 사회적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만 “사업자의 경영 자유와 재산권도 중요한 법적 가치”라며 “사업자가 자신의 사업 모델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챗GPT는 ‘노키즈존 방지법 시행에 따른 피해보상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가족 친화적 정책 촉진 및 인구 감소와 같은 사회적 문제 대응 △피해가 빈번한 소규모 사업자나 영세 사업자에게 경제적 지원이 될 수 있다며 긍정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은 제한적이며, 이러한 종류의 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다른 공공 서비스나 긴급한 사회적 필요에 할당될 자원을 차지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보상 체계가 남용되거나 부정 사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관리와 감독에 추가적인 비용과 노력을 요구할 수 있다”며 남용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와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어린이로 인한 영업 피해 보상에 재정을 할당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고려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내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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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MBN DB |
국내에 노키즈존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은 2010년대 초반입니다.
2011년 부산에서는 뜨거운 물을 운반하던 종업원과 부딪혀 화상을 입은 10살 여자 어린이에게 식당 주인과 종업원이 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어린이는 식당에 설치된 놀이방에 가기 위해 객실 출입문 쪽으로 뛰어나왔고, 다른 손님에게 가져다줄 뜨거운 물이 담긴 플라스틱 그릇을 나르던 종업원과 부딪혔습니다. 얼굴과 목, 가슴, 팔 등 신체표면 15%에 해당하는 곳에 2∼3도의 화상을 입었습니다.
재판부는 보호감독의무자로서 부모의 단속 의무를 지적하면서도 식당 주인과 종업원의 책임을 70%로 판단했습니다. 노키즈존 확산의 도화선이 된 판결입니다.
실제로 노키즈존을 선택한 업주들은 ‘안전사고 발생 시 과도한 업주 배상 책임 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습니다.
2023년 말 보건복지부가 노키즈존을 운영하고 있는 사업주 2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노키즈존을 유지하는 이유로 ‘아동 안전사고 발생 시 사업주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해서’라는 응답이 68.0%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소란스러운 아동으로 다른 손님과 마찰이 생길까 봐’ 35.9%, ‘처음부터 조용한 가게 분위기를 원해서’ 35.2%,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하는 부모와 갈등이 생길까 봐’ 28.1% 등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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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급기야 외신도 한국의 노키즈존 현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했습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한국 사회가 저출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상황을 소개했습니다.
지난해 5월 워싱턴포스트(WP)도 “식당에 다 쓴 기저귀를 버리고 가거나 실내에서 아이들의 소란을 방치하는 부모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잇따라 제보되며 사회적 공분을 산 게 노키즈존 등장의 계기”라고 설명했습니다.
외신들은 아이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 부모의 훈육 책임으로부터 노키즈존 논의가 활발해졌다면서도 해당 문제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공통된 평가를 내놨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7년 노키즈존은 차별이라고 규정했지만, 전국에 이런 업소는 540여 곳이 넘습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키즈존의 배경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에서 시작해야 한
또 노키즈존 방지법과 관련해서는 “맹목적 반대를 위한 정책 입안이 아니라 과연 우리가 사회적으로 보호해 대상자를 위한 정책인지 아닌가에 따라 사안을 검토해야 할 문제”라고 했습니다.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jzero@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