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원 뒷돈 받고 '문항 공급 조직'…56명 수사 요청

‘판박이’ 수능 영어 23번 논란 사실로
피라미드식 조직…배우자와 출판사 운영까지

↑ 교육부·수능. / 사진=연합뉴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 경력이 있는 교사들이 조직적으로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공급해 고액의 금품을 받아 챙기는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이 감사원 감사에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실시한 ‘교원 등의 사교육시장 참여 관련 복무 실태 점검’ 감사 결과를 오늘(11일) 발표했습니다.

이에 교사와 학원 관계자 등 56명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 배임 수·증재 등의 혐의로 경찰청에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56명 중 27명이 현직 교사입니다. △대학교수 1명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직원 4명 △전직 입학사정관 1명 △사교육업체 관련자 23명입니다.

↑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영역의 23번 문항. /사진=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공

이번 감사로 20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지문과 대형 입시업체 모의고사 문제가 유사하다는 의혹이 불거진 논란 관련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를 사전에 검증할 수 있었지만 누락한 점, 내부에서 제기된 이의를 조직적으로 축소한 점 등이 밝혀졌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0월 23학년도 수능 영어 출제위원으로 위촉돼 23번 문항을 출제한 A 씨는 평가원 의뢰로 2022년 8월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했습니다. 이때 교재에 수록돼 있던 지문을 무단으로 수능에 제출했습니다.

유명 학원 강사 B 씨는 해당 지문의 원 출제자와 친분이 있는 다른 교원 C 씨를 통해 문항을 받아 9월 말 모의고사를 발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평가원은 수능 문항 확정 전 사전에 사설 모의고사를 구매해 문항 점증 과정을 거치는데, 2022년 당시 문제가 된 입시업체 모의고사를 검증 대상에서 누락해 중복 출제를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또한 중복 출제에 대한 이의신청이 215건이 들어왔지만, 평가원 담당자들이 공모해 이의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 논란을 축소하려 했다고 감사원은 밝혔습니다.

↑ 서울 종로구 감사원. / 사진=매일경제 DB

이 외에도 현직 고교 교사들이 입시학원과 함께 피라미드식 조직을 꾸려 모의고사 문제를 사고팔아 고액의 금품을 챙기는 등의 문제도 적발됐습니다.

수능 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교사 D 씨는 수능·모의형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 및 출제위원 참여 경력의 교원 8명을 포섭해 이른바 ‘문항 공급 조직’을 조성했습니다.

이들 조직은 2019년부터 2023년 월까지 수능 경향을 반영한 모의고사 문항 2,000여 개를 만들어 사교육 업체와 유명 학원 강사들에게 공급해 6억 6,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3억 9,000만 원은 조직에 참여한 교원들에게 나누고, 나머지 2억 7,000만 원은 자신이 챙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배우자와 공모해 출판업체를 운영하는 방법으로 대형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공급한 교사도 있었습니다.

또한 △EBS 수능 연계 교재 파일을 출간 전 빼돌려 비슷한 문항을 만들어 학원 강사에게 공급하고 돈을 받는 사례 △사교육 업체에 공급한 문항을 학교 중간·기말 시험에 출제한 사례 △현직 입학사정관이 사교육 업체에 취업해 자기소개서 작성 강의 등을 하고 금품을 받는 사례 등이 확인됐습니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는 수능 경향에 맞춘 양질의 문항을 공급받으려는 사교육 업체와 금전적 이익을 원하는 일부 교원 간에 금품 제공을 매개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수사 요청 대상 외에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묻는 등 조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지영 디지털뉴스 기자 jzero@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