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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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Ideogram |
전기차 핵심부품을 만드는 E 업체는 이른바 ‘유명 이차전지주’로 꼽히는 코스닥 상장회사입니다. 리튬, 이차전지, 심지어 초전도체가 이슈가 됐을 때도 관련주로 이름이 오르내리곤 하는 곳이죠.
이런 E 업체가 최근 한숨을 돌린 일이 있었습니다. 국가보조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타낸 ‘보조금 사기’가 적발됐는데도 국가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보조금 사기 적발을 이유로 정부는 E 업체의 국가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는데 법원은 이를 뒤집었습니다.
왜 법원은 E 업체의 손을 들어줬을까요?
지난 2008년 창립한 E 업체는 2010년대 들어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연구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부터 시작된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5년짜리 사업에 참여해 11억 6,000만 원을 보조받았고 이후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등 여러 국가 기관들의 사업에 참여해 각각 적게는 3억 원에서 많게는 8억 원 가량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8년 국가권익위원회에 E 업체가 국가에서 나온 연구개발비를 부정하게 타냈다는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권익위는 조사 결과 E 업체가 연구과제와 상관없는 부품을 구입해놓고는 구입비를 연구개발비로 정산해 보조금을 받은 점을 확인했고 E 업체는 결국 경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수사 결과 E 업체 K 모 대표와 K 모 연구원이 3건의 연구과제에서 연구개발비를 부정수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속은 피해자 대한민국으로부터 2016년 11월 3일 경 부품비 138만 9,000원을 받은 걸 비롯해 2013년 3월 27일경부터 2018년 4월 30일경까지 모두 40차례에 걸쳐 피해자 대한민국으로부터 1억 1,400만 원을 지급받았다. 이렇게 피고인들은 피해자 대한민국을 기망해 재물을 교부받고 거짓 신청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았다.
- 2019년 K 대표 사기 혐의 등 1심 선고
위 범행으로 2019년 1심 법원에서 K 대표는 벌금 2,000만 원, K 연구원은 벌금 1,000만 원, E 업체 법인도 별도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 받았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E 업체에게 3년 동안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처분을 내렸습니다. 다만 E 업체가 과하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2019년 9월 관리원은 1년 동안 국가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걸로 처분수위를 낮춰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E 업체가 다른 보조금 사기를 저지른 게 추가로 드러난 겁니다. E 업체는 지난 2016년 한국기술진흥원 연구사업을 하면서 정부 출연금 4억 7,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앞서 적발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과제 외에 진흥원 연구사업에서도 보조금을 부정수급받은 게 검찰에 적발됐습니다.
- 2020년 당시 검찰 수사 내용
다만 검찰은 정상참작 여지가 있다고 보고 추가로 드러난 보조금 사기는 기소유예처분을 내렸습니다.
진흥원은 앞선 평가원과 마찬가지로 심의위원회를 열었고 E 업체에 3년 간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 처분을, 또 부정사용한 출연금을 모두 환수하고 추가로 360만 원 제제금을 부과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021년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받아들여 E 업체에 그대로 처분을 내렸습니다.
E 업체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에 해당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E 업체는 추가로 드러난 보조금 사기 건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2016년 9월에 보조금을 신청하기 두 달 전 실제 해당 연구과제에 쓸 반도체 부품을 발주한 사실이 있고 단지 보조금을 신청하기까지 사정상 두 달이라는 시간차가 있었을 뿐이라는 겁니다. 검찰 조사대로 보조금을 받아 다른 데 쓴 게 아니라 앞서 먼저 연구과제에 쓸 부품을 다른 돈으로 결제한 뒤 사후에 해당 액수만큼 보조금을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국가에서 주는 보조금인데 부품 살 때 바로 청구하는 게 일반적이지 이런 식으로 두 달에 걸쳐 비용을 메우는 식의 청구는 이례적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또 E 업체 측 주장대로 보조금 신청하기 두 달 전에 미리 구입했다는 부품들이 실제 국가 연구과제에 쓰인 게 맞는지도 불분명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E 업체 측이 보조금을 돌려 쓴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도 법원은 강조했습니다.
보조금 사기가 맞다고 봤음에도 법원은 국가사업을 제한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잘못에 비해 처분이 너무 지나치다는 이유입니다.
법원은 국가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국가사업의 취지를 고려할 때 역량 있는 기업을 함부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 국가사업 제한 처분 취소 소송 1심 선고
또 E 그룹의 보조금 부정사용 액수가 미미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국가사업 제한 처분 취소 소송 1심 선고
결국 지난해 1심 법원은 정부가 E 업체에 내린 국가연구개발사업 참여제한 처분을 취소한다고 선고했습니다. 다만 보조금 사기는 맞는 만큼 부정수급한 보조금 730만 원은 반납하라고 판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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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고등법원 (사진=연합뉴스) |
이에 정부측이 항소했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3부(함상훈 부장판사)는 1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지난달 26일 항소를 기각해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이후 양측이 상고하지 않음에 따라 판결은 어제(17일) 확정됐습니다.
E 업체가 국가사업에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판결은 '잘못의 정도와 제재로 얻는 공익'을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 그리고 제재로 침해되는 공익'과 비교해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입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유사한 사례로 '잘못이 있다고 무조건 국가사업에서 배제하면 안 된다'는 판결이 최근 대법원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6년 한 대학 연구실이 소속 대학원생들에게 국가로부터 받는 보조금을 연구실 공동계좌에 넣도록 한 사실이 적발됐습니다. 이에 교육부는 연구실이 참여하는 국가사업을 배제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연구실 공동계좌로 돈이 들어가면 사실상 연구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도교수 등이 돈을 마음대로 쓸 우려가 있는 만큼 이런 관행은 당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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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