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뉴스 (1987년)
예로부터 겨울나기 준비의 으뜸은 김장 김치 담그기였습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 김치는 지금도 든든한 겨울 먹거리로 자리를 지키고 있죠.
그런데 국민들이 값싸고 편하게 김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배추와 무 등을 마구잡이로 비축했다가 썩혀 버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원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농산물을 미리 수매 비축해 수급을 조절하고 가격을 안정시켜야 하는데, 배추와 무는 가격상승 위기 경보 10회 중 3회 비축 물량을 풀지 않았고, 고추·마늘 등은 경보단계임에도, 저율 관세 적용이 가능한 물량을 수입하지 않았으며, 보관기간이 짧은 배추와 무는 산지에서 시장으로 방출하면 불필요한 폐기량을 줄일 수 있는데도 수매 전량을 창고에 보관하다 상당수를 폐기한 겁니다.
이뿐인가요. 한때 품귀현상에 줄서기 파동이 벌어진 달걀 역시 국내 수급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수입하다 2천125만 개를 폐기했습니다.
농식품부와 유통공사가 실제 작황 결과가 아니라 '농업관측 예측생산량' 지표에 의존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탁상행정이었던 거죠.
참 얼마 전 대통령도 공무원들에게 "현장으로 가라!"고 했었죠?
유통 공사의 도덕적 해이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납품 비리로까지 이어졌다고 감사원은 밝히고 있습니다.
식품 관련 법령을 어겨 영업정지·과징금 처분을 받은 업체와 102억여 원의 식자재 납품 계약을 맺었다고도 합니다.
"여자들이 장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무엇인가를 한창 줍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배춧잎을 줍는 것이다. 그들과 어울려 배춧잎을 주워 모아 시장에 있는 해장국집에 팔았다."
먼저 아들을 떠나보낸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중앙시장에서 배춧잎을 주워가며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금도, 바닥에 나뒹구는 배춧잎 하나가 삶이 되고 하룻저녁 된장국 밥상이 됩니다.
그런데도 국민 세금으로 물량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배추와 무와 계란을 썩혀 버렸다고요. 이들은 어릴 때 이런 말도 못 들어봤나 봅니다. 먹는 거 버리면 천벌 받는다고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탁상행정에 썩어나간 먹거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