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유치 지역 갈등 풀뿌리 민주주의로 슬기로이 해결
한동훈 장관 "민주주의 가치 보여줘"
↑ 거창군 한센병 환자들과 만난 한동훈 법무부 장관 / 출처=법무부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거창구치소 개청식으로 경남거창군까지 먼 발걸음을 했습니다.
눈길을 끈 것은 개청식에 참석한 한센인들였습니다.
한 장관이 한센인들을 반기며 웃음꽃이 핀 이유에는 거창구치소 설립 과정에서 한센인을 비롯하여 거창군민이 성숙한 민주적 태도를 보였고 이로 인해 구치소가 설립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창구치소가 있던 부지는 과거 한센인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었는데 인근에 양계장과 양돈장이 함께 있어 악취가 심했습니다.
군청에서도 어찌나 관련 민원이 많았는지 구치소 유치 계획에서 "한센 환자촌 내 양돈·양계장으로 인한 악취 문제도 해결하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한센인들은 지긋지긋한 악취를 해결하고 생활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지난 2011년 법무부에 자발적으로 구치소 유치를 요청했습니다.
이 시기 법무부는 경찰서 유치장을 없애고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을 확대한다는 방침을 세워 한창 교정시설을 세울 수 있는 부지를 찾고 있었고 지역 경제 활성을 바라는 거창군의 이해와도 일치해 지금의 거창구치소 부지에 유치를 결정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유치 설립 결정이 이뤄지고 3년이 지난 2014년에 불거졌습니다.
경찰서 유치장을 대신하는 정도의 규모로 교정시설을 예상하던 주민들의 예상과 달리 훨씬 더 큰 규모로 구치소가 설립되면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친 겁니다.
당시 거창 주민들은 구치소 유치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갈려 극심한 지역 갈등을 겪었습니다.
혐오 시설 유치로 벌어지는 흔한 지역 갈등의 모습으로 마무리될 뻔한 양상은 주민들이 선거와 토의로 갈등을 민주적으로 봉합하면서 반전됐습니다.
지난 2018년 주민 측과 법무부, 거창군, 거창군 의회가 함께 머리를 맞댄 5자협의체에서 갈등을 주민 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민 투표는 2019년 10월 16일 이뤄졌고 64.7%의 찬성으로 사업 추진이 결정됐습니다.
거창군의 사례는 행정안전부의 2020년 지자체 협력·분쟁해결 분야 최우수 사례에 오를 정도로 지역 갈등을 슬기롭게 봉합한 대표 사례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거창군민의 슬기로운 해결법은 구치소 운영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과거 구치소 유치에 반대하던 주민들 중 상당수는 현재 구치소 민간 교정위원회에 다수 참여하면서 구치소 운영에 참여한 것입니다.
민간 교정위원회는 구치소 운영에 필요한 민간 자문과 협력을 받는 기구입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반대 주민들이 다수 교정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지역 주민 이해를 구치소 운영에 반영하는 한편 구치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개청식에 참가한 한 장관도 축사에서 거창군민의 해결법을 축하했습니다.
한 장관은 "오늘의 개청이 특별히 감동적인 이유는, ‘거창 주민들께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여주셨다’는 점 때문입니다. ‘문제해결 수단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뢰, 결과에 대한 존중,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는 통합의 정신이 필수적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2019년, 민주적 절차인 ‘주민투표’를 통해 거창구치소 개청 결론을 이끌어 내셨고 반대하시던 분들도 절차를 신뢰하고 그 결과를 존중하셨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반대하시던 분들께서 거창구치소 개청을 위한 교정위원으로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는 등, 진정한 ‘통합’의 정신을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라며 거창군민의 민주적 성숙함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또한 "십여 년 전, 지금 이 자리에는 한센인 분들의 정착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곳의 주민들께서, 한 분도 빠짐없이 지역사회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내주시고 이전해 주시기로 하면서 거창구치소 개청사업이라는 긴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공직자로서, 성산 마을 주민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라고 심정을 밝혔습니다.
거창구치소는
거창군민의 민주적 숙의성 위에 자율형 구치소가 세워진 사실은 우리에게 갈등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민주적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협 기자 lee.sanghyub@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