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행 기업 사유는 대부분 ‘보육수요 없음’
국가의 강제성은 마땅하지만 실효성 높여야 돼
“직장 어린이집은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이 누리는 복지다. (어린이집을 짓느니) 벌금을 내는 게 더 싸다”.
패션업체 무신사가 신사옥에 직장 어린이집 설치 계획을 전면 철회하며 최영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무신사는 직장 어린이집 실수요 부족으로 설립을 무산한 것으로 밝혀졌는데요. 보육정책을 단순히 비용과 편익 문제로 치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직장 어린이집 의무 미이행 벌금, 정말 직장 어린이집 설치 및 운영비보다 저렴할까요? MBN 사실확인에서 알아봤습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상시 여성 근로자 300명 이상 또는 상시 근로자 500명 이상 고용 사업장은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합니다. 직장어린이집을 단독으로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공동으로 운영하거나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맺어 근로자의 자녀 보육을 지원해야 하죠.
무신사는 현재 직원이 1천 300여 명이며 이 가운데 여성 직원 비율이 55%에 달해 직장어린이집 설치 대상에 해당합니다.
먼저 직장어린이집 설치비와 운영비를 살펴봅시다.
본사 근처 건물을 임대해 직장어린이집을 신축한다면 설치비용은 크게 시설임차비와 건축비(시설건립비, 시설전환비) 등이 소요되는데요.
어린이집 면적 기준은 영유아 1인당 전용면적 4.29㎡입니다. 정원 49명, 1㎡당 어린이집 평균 건축비 212만 원으로 잡는다면 총 건축비는 4.4억 원이 듭니다. 또 미이행 사업장은 대부분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하는데요. 서울 강남 지역의 경우 1㎡당 연평균 임대료가 170만 원으로 정원 49명 면적의 어린이집 연간 임대료가 3.6억 원에 달합니다.
인건비, 급간식비, 교재교구비, 시설비, 관리운영비를 합산한 2022년 표준보육비용에 따르면, 운영비는 50인 기준 연평균 4억 원 소요됩니다.
따라서 직장어린이집을 신설 운영한다면 건축비 4.4억 원, 임대료 3.6억 원, 운영비 4억 원을 합해 초기 비용은 총 12억 원 정도 소요되며, 이후 연간 7.6억 원 소요됩니다.
물론 기업이 비용을 모두 부담하진 않습니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설치비‧인건비‧운영비를 지원해 주기 때문이죠. 지원 한도는 대기업, 우선지원대상 기업, 단독ㆍ공동 설치 유무에 따라 3억 원~20억 원 범위로 상이합니다. 그러나 임대료 지원은 하지 않고, 사업주가 어린이집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50% 이상을 부담해야 하므로 실질적으로 총비용의 25% 정도 지원받는 셈입니다. 연간 5.6억 원 소요되는 거죠.
이제 미이행 벌금으로 넘어갑시다.
시ㆍ도지사 등에 의한 직장어린이집 설치 이행명령을 어기면 1년에 2회, 매회 1억 원 범위에서 이행강제금을 부과 받을 수 있습니다. 연 최대 2억 원을 내야 할 수 있는 거죠.
여기에 더해 직장어린이집 미설치 기간과 사유를 고려해 이행강제금이 5천만 원 이내로 가중될 수 있는데요. 2회 부과까지는 매회 1억 원 범위, 3회부터 매회 1억 5천만 원 범위로 징수될 수 있습니다.
이행강제금 2회 초과 시에는 연 최대 3억 원의 벌금이 부과되는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연 최대 금액까지 부과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다스는 5년째 미이행한 연도에 벌금 누적 8억 원으로, 연간 약 1.6억 원 부과됐습니다. 만약 5년간 최대 금액으로 15억이 부과되더라도, 5년치 임대료와 운영비인 28억보다 훨씬 못 미치는 금액입니다.
종합해 보면, 직장어린이집 의무 미이행 벌금액이 직장어린이집 설치 및 운영비보다 더 싼 것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이에 기업들이 ‘벌금을 안 내고 버티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연 최대 3억 원 벌금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직장어린이집 비용과 벌금을 비교했습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직장어린이집 비용과 비교했을 때 적을 뿐, 미설치 벌금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겁니다. 복지부는 이행강제금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2022년 기준,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미이행 사업장(136개소) 중 영유아보육법령에서 정한 명단 공표 제외 사유에 해당하는 사업장(109개소)을 뺀 27개소가 미이행 명단에 공표됐습니다. 이 중 6개 기업은 2년 연속 이행하지 않았으며, ㈜다스, (주)코스트코 코리아 광명점, 한영회계법인은 올해로 7년째 미이행했습니다.
‘직장어린이집 미설치’라는 꼬리표와 사원들의 업무 환경 만족도 하락 등의 손실을 감안했을 때 벌금을 내고 버티는 것은 결코 이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떤 사유로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지 않는 걸까요? 2022년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미이행 27개 기업 중 최근 2년 연속(22년~23년) 2번 이상 이행하지 않은 6개 기업에 직접 전화해 물었습니다.
정부의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실태조사 결과, 6개의 사업장 직원 모두 보육수요가 낮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회계법인 측은 업무 특성상 직장어린이집을 이용하기 힘든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회계 업무를 맡긴 파트너 사업장에 외근을 자주 나간다는 겁니다. 한영회계법인은 “본사 근처에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해도 고객사로 출근하는 직원들은 다시 본사로 가기에 비효율적이라는 반응이 대다수다”고 말했습니다.
(주)코스트코 코리아 광명점은 365일 24시간 3교대로, 직원들 간 근로 시간이 상이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광명점 관계자는 “직장어린이집 사용을 위해 오전 조 사원들의 근무 시간을 오후로 변경할 여력은 안 된다”며 “주중에 이틀씩 돌아가면서 쉬는데, 이틀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못 나온다”고 해명했습니다.
㈜다스 또한 “직장어린이집에 맡길 어린 자녀가 있는 사원이 없다”며 보육수요가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직장어린이집 설치 의무 미이행 현황을 보면 기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유는 기업마다 다른 형태와 업종, 그리고 변화하는 기업문화에서 기인합니다.
기업이 일정하게 직원을 뽑지 않다 보니 직장어린이집의 필요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강지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제는 주 52시간제 근로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도 생긴 만큼 직장어린이집 설치가 단일한 선호는 아니다”라며 “최근 삼성 공장도 신규 채용률이 굉장히 낮고 대부분 직원이 미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고용 형태가 선진화되며 유연 근무제가 확산하고 있는데요. 최근 부상하는 강남의 한 IT계 스타트업은 재택근무가 잦아 직원들이 직장어린이집 설치보다는 어린이집 비용 지원을 선호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어린이집 하원 시간과 부모의 퇴근 시간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돌봄 서비스를 지원하는 바우처를 시행하려 했지만, 의무 이행으로 인정받지 못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이런 기업들의 사정이 근로자의 일과 돌봄 양립에서 사각지대를 발생시킨다는 우려가 제기되는데요. 김동훈 육아정책연구소 박사는 “이전에는 플랫폼 노동자 사업장 특성상 직장어린이집을 설치하기 힘들어 예외로 인정했는데, 역으로 따지면 그들은 일과 돌봄에서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해당 직종 근로자들도 직장어린이집으로 일과 육아를 보장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기업들의 사정을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직원들의 자녀가 선호하는 어린이집과 계약을 맺어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하는 위탁 보육도 인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위탁 보육은 근로자 자녀의 30% 이상을 위탁해 보육하고, 사업장이 필요 비용의 50% 이상을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근로자 자녀 중 1세 영유아 5명, 2세 영유아 10명, 3~5세 영유아 15명을 어린이집에 위탁 보육하는 경우 회사의 최소 지원 비용(’23년 보육료 기준)은 510.5만 원입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올해 1월부터 위탁 보육을 실시했다고 합니다. 홍보팀 관계자는 “만 0세에서 만 5세의 임직원 자녀가 현재 다니는 지역 어린이집과 위탁계약을 체결해 부모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며 “실태조사에 아직 해당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위탁 보육을 맡길 곳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한 어린이집에 30% 이상의 직원 자녀를 맡겨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려면 사업장 근처 어린이집이 용이한데, 직장 근처에 어린이집이 없다는 겁니다. 한영회계법인은 “사무실 근처에는 주유소와 같은 유해 시설이 있어 어린이집이 없다. 여의도 본사와 가장 가까운 어린이집이 당산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기업들의 다양한 여건을 고려해 유연한 사업을 추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강 부연구위원은 “보육지원에 대한 국가의 강제성은 마땅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형화된 근로 형태를 벗어난 사업장의 특성이 고려된 자녀 돌봄 제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설치가 어려운 경우에는 집 근처 어린이집을 사용을 지원하거나, 야근 또는 유연근무제를 실시하는 근로자들의 육아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틈새 돌봄 플랫폼을 병행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정리하자면, 직장어린이집 의무 미이행 벌금액이 직장어린이집 설치 및 운영비보다 더 싼 것은 대체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저출산 사회에서 보육정책을 비용과 편익 문제로 단순히 접근해선 안 됩니다. 복지부는
기업과 더불어 정부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죠. 강 부연구위원은 “정부는 제재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미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사유에 집중해 협조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국가와 기업, 모두 협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예림 인턴기자 chloej575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