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담지 못한 취재 뒷이야기를 [취재 백블] 코너에서 자세하게 풀어드립니다.
교직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왕의 DNA' 교육부 사무관 A씨.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 반 아이들의 행동 변화를 매일 보내라는 '황당한 요구'를 하면서, 굳이 본인의 직함이 적힌 공직자 이메일을 사용한 점을 두고 갑질 논란이 일었습니다.
사안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난 11일, 교육부 고위 관계자에게 내부적으로 재발 방지 등을 당부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 문제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조치하면 다른 직원들도 조심하죠. 굳이 초등학생처럼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얘기하는 것보다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가 나오면 공무원들은 다 조심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취지입니다.
↑ 12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열린 '제4차 안전한 교육 환경을 위한 법 개정 촉구 집회'에 참여한 교사들. |
A씨는 지난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자녀의 담임 교사에게 '왕의 DNA를 가진 아이' 등이 적힌 특별 당부 사항 9가지를 보냈습니다.
학생 생활 지도를 해야 하는 선생님에게 드린 첫 번째 내용은 <하지마, 안돼, 그만 등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겁니다.
선생님이 가르치고 살펴야 할 반 아이만 25명 안팎. 하지만 또래 간 갈등이 생기면 <철저히 (내 아이의) 편을 들어달라>는 문구도 있습니다.
A씨는 사과문에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어쨌든 온통 '내 아이만 특별 대우 해달라'는 이 요구안을 후임 담임 교사에게 건넨 건 본인입니다.
A씨는 자신이 요구한 대로 전임 교사가 담임을 포기하고 후임 교사가 배정되자 곧바로 경찰서, 세종시교육청, 국민신문고 등에 전임 교사를 연달아 신고했습니다.
이후 후임 교사에게 문제의 글 뿐 아니라 전임자를 어떻게 신고했는지 그 내용도 고스란히 보냈습니다. 이 때도 공직자 이메일을 사용했습니다.
사안이 언론에 알려진 직후, 교육부는 A씨의 돌출 행동으로만 보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 만큼 조직 차원에서 대응할 부분은 아니라는 겁니다.
처음엔 공식적인 입장 표명도, 내부적으로 당부할 계획도 없다면서, 담임 교사에게 보낸 직권남용이나 갑질 의혹에 대해선 "조사해 봐야 안다"며 '신중론'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결국 언론 보도 나흘 만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 차관은 어제(14일) "교육부 직원의 담임 선생님에 대한 갑질 의혹에 대해 무척 부끄럽게 생각한다. 교육부의 책임이 크다"며 뒤늦게 분노한 교사들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교권회복 및 보호 강화를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장상윤 교육부 차관. (사진 = 교육부) |
'왕의 DNA' 등 자극적인 문구가 부각됐습니다만, 사안의 본질은 ▲A씨가 업무 시간 중에 공직자 메일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그 상대방이 소속 부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교권 보호의 일선에 서야 할 교육부 직원이 교권 침해의 가해자가 됐다는 점입니다.
교육부도 8개월 전에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육부가 직접 밝힌 내용을 보면, 지난해 12월 'A씨가 후임 교사에게 자녀 특별 대우 등 부당한 요구를 하고 공직자 메일을 활용한 갑질‧압박이 있었다'는 내용이 국민신문고에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감사도 벌였습니다.
결과는 구두 경고였습니다. 바로 다음 달에는 승진도 됐습니다.
교육부는 당시 세종시교육청이 '전임 교사'에 대해 방임과 정서학대 등 아동학대를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제보 속 A씨의 문제 행동은 모두 전임 교사가 아닌 '후임 교사'를 향한 갑질, 압박 의혹인데 말입니다.
전임 교사가 수사기관에서 아동학대 무혐의를 받은 것 외에도, "교권 침해가 맞다"는 학교 교권보호위원회의 판단이 새로 나온 것 역시 그 때와 지금이 다르다고 덧붙였습니다.
교육부는 교보위 결정이 나오기 전에는 '아이들 행동 변화를 매일 보내 달라' 등을 요구한 A씨 행위가 교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거나 최소한 애매하다고 본 걸까요?
장 차관은 어제 "교육부 내 독립적인 감사 부서에서 철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엄정한 조치가 있을 예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교육부의 엄정 조치는 아마도 '어떤 수준의 징계를 내려 달라'고 중앙징계위원회에 의뢰하는 걸 겁니다.
결정은 징계위가 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몇 달이 걸립니다.
익명을 요청한 세종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이 전임 교사를 직위해제 할 당시 A씨의 직함(당시 교육부 6급)을 알았을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통상은 알 수 없다. 요즘은 학생 기록에 부모 직업을 적는 칸 자체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세종시는 중앙 부처가 있다 보니 전화를 그렇게 하세요. '저 OO부처 과장인데', '저 OO실 누구인데'. 대부분 학부모님들은 잘 하시지만 그런 분들이 좀 많아
평범한 학부모도, 교권 보호를 외치며 폭염 집회를 이어가는 교사들도 다시는 이런 뉴스를 보고 싶지 않을 겁니다.
교육부든 다른 정부 부처든 "공무원들이 알아서 조심한다"고 장담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사적인 분야에서 공적인 지위를 직·간접적으로 남용하지 않는지 재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 박유영 기자 / shine@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