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시장경제 논리에 맡기는 건 한계"
보건복지부 "소아과 수가 제도 개편 등 대책 논의"
의대 정원 확대 논의, 여전히 타협 없는 전쟁 중
↑ 소아과 병원이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 모습. / 사진 = MBN |
'소아과 대란' 이슈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오픈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미리 가서 대기해야 합니다.
백화점 문을 열기 전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소아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 지난 3월 29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회관에서 열린 ‘소아청소년과 폐과와 대국민 작별인사’ 기자회견에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을 비롯한 전문의들이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
소아과 대란 문제는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가 '폐과 선언'을 한 지난 3월 본격적으로 가시화됐습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소아과 인프라 붕괴가 이미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파악한 자료를 살펴보면 2019년 80%대를 기록한 소아청소년과(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은 2020년 74%, 2021년 38%, 2022년 27.5%로 계속해서 추락했고, 올해 15.9%로 급락했습니다.
소청과 폐업률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모두 662개의 소청과 의료기관이 폐업했습니다.
강도 높은 노동에 비해 낮은 보상 수가 등 소청과 의료진들이 지속적으로 호소하던 문제는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출생 문제가 심화하면서 소청과의 전망마저 어두워졌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 피부과 간판. / 사진 = MBN |
인력 부족 현상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소청과, 내과, 산부인과 등과 달리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 인기과는 인력 쏠림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공의 충원율은 소아청소년과 28.1%, 흉부외과 47.9%, 외과 76.1%, 산부인과 80.0%로 정원 미달됐습니다.
반면, 재활의학과(202%), 정형외과(186.9%), 피부과(184.1%), 성형외과(180.6%) 등은 정원을 훨씬 웃돌았습니다.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에서도 피부과, 성형외과 등 비필수 과목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달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일반의 신규개설 일반의원 진료과목 신고 현황에 따르면, 2018~2022년 일반의가 새로 개원한 의원은 총 979곳인데 이들 중 86%(843곳)가 진료과목을 피부과로 걸었습니다.
'의료 재앙'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지금, MBN은 대화형 인공지능(AI)서비스 챗GPT에 '소아과 대란 현상을 해결을 위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할지, 혹은 시장경제 논리에 맡겨야 할지' 물어봤습니다.
↑ 사진 = 챗GPT 화면 캡처 |
챗 GPT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챗 GPT는 "시장경제 논리는 주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기반하여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데, 의료 분야에서는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이 우선이기 때문에 경제적 이윤만을 중심으로 두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의 개입 방향 3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로는 '공공의료 서비스 보장'입니다. 챗 GPT는 필수 의료 분야인 소아과 등에 대한 접근성과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공공의료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는 '규제와 지원'입니다. 챗 GPT는 성형외과나 피부과와 같은 선택적인 의료 서비스에 대한 규제나 세제 혜택의 조정을 통해 필수 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봤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의료 인프라 강화'입니다. 정부는 의료 분야의 인프라를 강화하고 지역 간 의료 서비스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하며, 지역 의료 시설의 강화와 의료 전문가의 분포 조절을 통해 필수 의료의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게 챗 GPT의 설명입니다.
↑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기 병상 수급 기본시책을 발표하고 있는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 사진 = 연합뉴스 |
의료계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가 소아과 인력난 해소를 위해 소아과 수가 제도 개편 등 후속 대책 논의에 나섰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소아과 행위별 수가에 대한 보상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복지부는 지난 2월 충남대병원 등 선정된 9개 병원이 소아 전문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일어나는 의료적 손상을 보상하는 '어린이 공공병원 사후 보상 시범사업'을 실시했습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달 진행된 설명회에서 "어린이 공공병원 사후 보상 시범사업 외에 다양한 수가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며 "병원이 필수 의료 부분에서 업무를 한 경우 해당 병원과 인력에 추가적인 보상을 주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박 차관은 소아 필수의료체계 핵심 전략으로 '자원' '네트워킹' '결과 보상'을 꼽았습니다.
자원을 기반으로 대학병원 소속 전문의와 병・의원 전문의가 교류하는 모형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마련돼야 한다는 게 박 차관의 설명입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필수 의료에 대한 근로 여건 개선 방안을 다른 진료과보다 먼저 발표하도록 노력하겠다"며 "단기적으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열심히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법안도 추가로 발의됐습니다.
정의당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 공백에 대한 최우선 해답은 결국 공공의대 설립"이라며 '공공의과대학 및 공공의학전문대학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지역공공의대법), '공공보건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습니다.
지역공공의대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가 공공의대 및 의전원을 설립·운영하고 입학자 중 해당 지역 고교 졸업자(졸업예정자) 및 지방대학 졸업자를 60% 이상 선발하도록 했습니다.
또 배출된 인력은 10년간 의무복무를 조건으로 의사면허를 부여하고, 이를 미이행하면 의사면허가 정지됩니다. 공공의대와 의전원 실습기관으로 지역별 부속병원을 지정하고, 없을 경우 별도 부속병원을 설립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공공의대 설립과 인력 확충은 환자뿐 아니라 모든 의료종사자를 위한 길"이라며 "지금 당장 의협 등 일부 의사단체들만이 아닌 시민사회와 지방정부가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 공공의대 설립을 신속히 논의하자"고 촉구했습니다.
↑ 의과대학 외경. / 사진 = MBN |
필수의료 인력 확충에 대한 논의가 나올 때마다 함께 언급되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해서는 여전히 찬반 입장이 강하게 대립 중입니다.
우선, 복지부를 포함한 찬성 측에서는 흔히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분만실 찾아 삼만리' 등으로 회자되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과 지역 간 의료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늘어나는 의료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는 게 먼저라는 입장입니다.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총량이 늘어나면, 적은 비중이라고 해도 필수과 의사 또한 증가할 수 있다는, 일종의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활동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2020년 기준 인구 1천 명당 2.5명으로 멕시코(2.4명)에 이어 밑에서 두 번째로 OECD 평균(3.7명)에 한참 못 미칩니다.
반대로 의사(전문의 봉직의)의 평균 임금소득은 연간 19만5,463달러(2억5천만 원)로 가장 높아 OECD 평균(10만8,482달러)의 거의 2배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해 의사 수를 늘리면서 동시에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찬성 측 입장입니다.
↑ 대한의사협회. / 사진 = MBN |
반면, 대한의사협회 등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각종 의료 문제의 원인이 의사 수가 아니라 의사 배분에 있기 때문에 의료수가 인상과 제도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기본 전문의도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구조인데, 의사 수만 늘리면 인기 있는 과로 인력이 몰리는 현상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게 반대 측 입장입니다.
또 의협에서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의료비 증가로 이어져 국민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건데 여기에는 이론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의료시장은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가 전문 지식과 정보 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탓에 수요자인 환자의 의사결정을 대신하게 된다는 점에서 일반시장과 차이가 있습니다.
의사는 이를 이용해 수익을 늘리거나 유지할 목적으로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이를 '공급자유인수요(Supplier-Induced Demand)'라고 합니다.
의협은 "의사 정원 확대는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 즉 '과잉진료'를 유발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의사 수를 늘리기 전에 필수과의 낮은 수가를 개선하고, 최선을 다하고도 의료 소송에 휘말리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국민의힘
필수의료 붕괴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의료계, 시민사회 등 전 사회 구성원들이 하루빨리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