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사법부 블랙리스트' 당시 '적폐'로 몰려
"컴퓨터 강제 개봉 반대해 적폐로 몰렸던 서경환 부장판사가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서 대법관이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관 취임식에서 권영준 대법관(왼쪽)과 서경환 대법관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3.7.19 |
불과 6년 전 일입니다. 2017년 법원에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관리했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정치권에서 시작된 '적폐청산'의 태풍이 사법부를 덮친 겁니다.
당시 조사위원회가 꾸려졌는데 의혹 관련자의 컴퓨터를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 개봉해 조사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증폭됐습니다. 조사를 해야 한다는 '강경파'의 목소리는 높고 거칠었고, 다수는 침묵했습니다. 서경환 (당시) 부장판사는 '당사자 동의 없는 강제 조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던 몇 안 되는 소수파 중 한 명이었습니다.
↑ 서경환 대법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3.7.12 |
서 대법관은 이념 과잉의 시대에 소수파 생존법의 모범답안을 보여줍니다. 법원 관계자는 "서슬이 푸르던 시기에 서 부장판사가 거친 표현을 쓰지 않으면서도 설득력 있게 글을 쓴 것이 조직 내부에 상당한 공감대를 얻었다”고 기억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서 부장판사가 파벌에 관계없이 두루 좋은 인간관계를 가져가 비토 세력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과 성향의 차이가 컸지만, 2021년 일선 판사들이 투표하는 법원장 후보자 추천제를 통해 서울회생법원장에 임명됐습니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이면 끝납니다. 퇴임 성적표에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정치권은 온갖 이슈를 서초동으로 가져 오는데, 법원은 인사 편중과 특정 재판의 지연 등으로 독립성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김 대법원장 개인적으로는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형사 고발된 상태입니다. 한 나라의 대법원장이 거짓말 의혹에 휩싸인 것은 '망신거리’일 뿐 아니라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법관 탄핵이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발언은 특정 정파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국 많은 시민이 이목이 쏠린 재판의 판사가 어느 단체 소속인지를 따져 묻는 세상이 됐고, 법원에 대한 신뢰는 크게 훼손됐습니다.
↑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서경환·권영준 대법관 취임식에서 김명수 대법원장과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23.7.19 |
[이성식 기자 mods@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