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급발진' 의심사고…법원서 '사고기록장치' 신뢰성 검증한다

제조사 상대 7억6000만원 손배소 27일 열려
원고 측, 사망사고 운전자 무죄 '대전 사례' 근거 EDR 신뢰 상실 주장 예정

↑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선처 탄원서/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재판에서 차량의 사고기록장치(EDR)의 신뢰성을 검증하기로 해 주목됩니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는 사고 당시 차량 운전자 A씨(68·여)와 그 가족이자, 사고로 숨진 아이의 유족이 차량 제조사를 상대로 낸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두 번째 변론기일을 진행합니다.

이날 재판에서는 지난 5월 첫 번째 변론기일에서 재판부가 원고 측이 제출한 사고기록장치(EDR)와 음향분석 등 2건의 감정신청을 모두 채택함으로써, 전문감정인을 신청해 진행될 예정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모든 급발진 의심사고에서 '페달 오조작' 등 운전자 과실의 근거로 쓰이고 있는 사고기록장치(EDR)의 신뢰성 여부입니다.

해당 사고 차량 EDR에 운전자 A씨가 30초가량 가속페달을 밟은 것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운전자·유족 측은 이 같은 기록이 상식적이지 않다며 EDR의 신뢰성 상실을 증명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원고 측이 이날 재판에서 최근 급발진 의심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 같은 주장에 논리를 더하겠다는 심산입니다.

원고 측은 재판을 위한 준비서면을 통해 "차량이 우측으로 전복되면서도 가속페달을 99% 계속 밟았다고 EDR에 기록된 사례가 있다"며 "차량이 전복되는 과정에서 운전자는 운동력에 의해 균형을 잃기 때문에 가속페달을 변함없이 100% 또는 99%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밟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EDR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차량이 시멘트 벽을 뚫고 나가면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99% 밟았다'고 EDR에 기록된 사례를 소개하며 "시멘트 벽을 뚫고 나갈 때 충격과 에어백이 터져 얼굴을 강타하면서 정신을 잃어 자세의 균형을 잃어버린 운전자가 할 수 없는 행동"이라는 입장입니다.

원고 측은 이 같은 급발진 의심 사례 모두 EDR에 '가속페달 변위량 99% 브레이크 OFF'라고 기록돼 있는 부분과 자동차 분야 전문 교수가 관련 토론회를 통해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차량 EDR에 예외 없이 가속 페달 변위량이 '100% 또는 99%'로 나타나 있고, 브레이크 페달은 안 밟힌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발언한 점 등을 들어 EDR 기록을 신뢰할 수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또 최근 차량 급발진 때문에 사망 교통사고를 냈다고 주장한 운전자에게 법원이 이례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사례도 언급할 계획입니다.

대전지법은 지난 15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56)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습니다.

원고 측은 대전 사고 재판부가 '약 13초 동안 보도블록, 화분을 충격하면서도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런 과실을 범하는 운전자를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을 강조하며 "13초 보다 2배 더 긴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는 더욱더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대전 사례 재판부가 차량의 속도가 시속 10.5㎞→37.3㎞→45.5㎞→54.1㎞→시63.5㎞→68㎞의 속도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가속페달변위량이 50% 이하로 계산된 사실을 근거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100%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도 강릉 급발진 의심 사례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EDR 신뢰성 감정과 함께 차량 음향분석 감정도 함께 진행될 예정입니다.

원고 측은 음향분석 감정을 통해 정상 급가속 시 차량 엔진 소리와 이번 사고의 음향이 다른 점, 운전자의 변속레버 조종 여부 등을 확인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한편 피고인 제조사 측 소송대리인도 재판부에 서면 답변을 보내, 반박 논거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지난해 12월 사고 당시 모습/사진=연합뉴스

한편 지난해 12월 6일 오후 3시 56분쯤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A씨가 몰던 소형 SUV가 배수로로 추락했습니다. 이 사고로 동승자 이모군(12)이 숨지고, 할머니 A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에 사고 당시 운전자 A씨가 지난 3월 강릉경찰서를 찾아 관련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사고로 숨진 아이의 아버지 이씨는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며 국민동의 청원을 신청, 5만명 동의 요건을 충족해 국회 소관위원회인 정무위로 회부돼 제조물책임법 개정 논의가 이뤄질 수 있게 됐습니다.

또 강릉을 지역구로 둔 권성동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도 해당 사고 관련 언급을 통해 제도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변론기일은 6월 27일 열립니다.

운전자의 아들이자 숨진 아이의 아버지인 이모씨는 두번째 변론기일을 앞두고 "지금도 원인을 모른 채 끊임없이 발생되는 급발진 사고 속에서 저희 사건을 통해 하나씩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힘겹게 싸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누리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nu11iee9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