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출판 만화 통해 새로운 이야기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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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정 작가 / 사진 = MBN |
1983년에 공개돼 올해 탄생 40주년을 맞은 '아기공룡 둘리'.
둘리를 우리 곁으로 보내준 김수정 작가가 오늘(18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을 통해 '둘리 탄생 비화'를 밝혔습니다.
먼저 김 작가는 '시대의 아픔 때문에 아기공룡 둘리가 탄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진행자의 말에 "제가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 였다"며 "당시 만화에는 늘 불량이라는 상표가 따라다니던 시대였다"고 회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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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MBN |
김 작가는 "그래서 만화를 그리게 되면, 특히 아동 만화를 그리게 될 때는 심의라든가, 검열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심했다"며 "그러다 보니 아동들의 동심, 꿈을 만화에서 표현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사람을 캐릭터화했을 땐 제한이 너무 심해서 심의가 조금 완화됐던 동물을 상상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약 20여 개의 검열 조항이 있었는데 '우리하고 우방 국가를 욕해서는 안 된다', '서울의 판자촌을 그려서는 안 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아담과 이브'라는 성인 만화를 그렸다가 이주일 선생을 패러디한 모습이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연재가 종료됐다"는 일화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검열을 피해 동심을 담아내기 위해서 동물을 의인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공룡'까지 떠오르게 됐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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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워터홀컴퍼니(주) 제공 |
김 작가는 "처음에는 공룡을 2마리 설정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나, 둘' 해서 둘리 이름을 '둘이'라고 지었었다"며 "그런데 '둘이'는 좀 딱딱한 것 같고 조금 맹해 보이기도 해서 '둘리'라고 했었다"고 이름 탄생 비화를 전했습니다.
아기공룡 둘리가 지난 1983년 4월 국내 최초의 만화잡지 '보물섬'에 실리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보물섬이 창간되면서 국내에서 내놓으라 하는 작가 18명이 엄선돼 들어갔다. 저는 연재하고 있던 친구 따라 놀러 갔다가 당시에 연재하고 있던 선배 작가 분이 건강이 안 좋으셔서 휴재에 들어갔는데 그 대타로 제가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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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MBN |
김 작가는 '만화가'라는 꿈을 꾸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김 작가는 "형 따라 만화 가게에서 만화를 보고 돌아와서는 노트에 본 것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주변에서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니까 계속 그리고 됐다"며 "아버지가 '이놈을 만화가를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고 굉장히 큰 후원자가 되어주셨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 2학년이 되던 해에 아버지의 죽음이 찾아왔고,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신문팔이, 우산 장사 등 여러 직장에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당시 만화가는 '불량의 대명사'로 치부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김 작가는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집념과 의지로 꿈을 이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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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MBN |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아이들이 꾸어야 할 꿈을 둘리를 통해 대신 꾸게 해주고 싶었다"며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하지 말라고 안 된다는 소리만 하는데, 아이들이 갖고 있는 그 욕구와 꿈을 둘리를 통해 발산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전했습니다.
김 작가는 지난달 24일
[윤혜주 디지털뉴스 기자 heyjud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