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학교 생활 어때?”라고 묻는다면 “별일 없지 뭐”라고 답하고 싶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친구들과는 어때?”라는 질문에 “별 걱정 없어”라고 하고 싶고요. 남들은 심드렁하게 내뱉는 그 ‘별일 없다’는 말이 부럽기만 합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의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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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을 당한 아이들에겐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참 ‘별일’입니다.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거든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보인 공통적인 특징은 ‘대인 기피’입니다. 사람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직접적인 폭력을 가한 가해학생(들) 외에도 자신이 폭력 당하는 걸 알고도 방관하고 묵인한 다수 친구들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학교폭력의 유형과 피해의 정도는 다양하지만 가장 중증인 상태의 아이들이 모이는 곳, 바로 대전에 있던 해맑음센터였습니다. 가해자가 있는 학교에는 못 있겠고, 수업을 계속 빠질 순 없고, 자꾸 방에만 틀어박히는 나를 보고 한숨짓는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이런 친구들이 오로지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만 모여, 기숙 생활을 하며, 수업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 해맑음센터의 문을 두드린 겁니다.
그 해맑음센터가 한 달 전 사라졌습니다.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정도로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대전시교육청도, 교육부도 알고 있었습니다. 2013년 해맑음센터가 60년 된 폐교에 문을 열 때부터 예견됐다..고 까진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해 상황이 급박해지자 해맑음센터가 직접 여러 차례 교육당국에 대체 부지를 요청했고, 올 초부터는 언론에도 숱하게 보도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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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가 지난달 15일 해맑음센터에 전달한 안전진단 결과 통지서. 바로 다음날 퇴거하라는 교육부 측에 센터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고, 해맑음센터는 통보 나흘 만인 지난달 19일 폐쇄됐다. |
교육부는 바로 안전진단을 해서 급한 대로 보수를 하고, 옮길만한 대체 부지를 찾고,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면 임시 시설이라도 알아보는 대신, 일단 폐쇄시켰습니다.
교육부에 물어봤습니다. 이곳의 아이들이 부산, 광주 곳곳에서 살던 곳을 떠나 굳이 대전에 있는 여기를 찾아온 거면 반드시 해맑음센터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폐쇄시켜서 입소생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할 게 아니라 공무원연수원이든 청소년연수원이든 임시 시설을 알아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교육부가 답했습니다. “공무원연수원은 어른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라 청소년에게 맞지 않고, 청소년연수원은 민간에서 운영하는 곳이 많아 통제가 어려워서요.“
다시 물었습니다. 교육부가 해맑음센터 입소생들에게 제안한 위센터나 대안학교는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 부적응한 학생들이 섞여 있는 곳이지 학교폭력 피해학생만 모인 곳은 아니지 않느냐고.
교육부가 다시 답했습니다. ”자꾸 학교폭력만 치유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병원에 다양한 원인으로 다쳐서 오는 걸, 예를 들어 못에 찔린 사람만 치료한다고 하면 너무 협소해서 그렇게 하기는 좀 어렵잖아요.“
임시시설을 알아보진 못했고, 꼭 학교폭력 피해학생만 전담하는 기관이 필요한지 모르겠단 취지로 들렸다면 오해인 걸까요.
이른바 ‘정순신 사건’ 이후 학교폭력 관련 취재를 하면서 해맑음센터 외에 다른 기관에서 치료 중인 피해학생들, 아이가 피해를 당한 부모님, 학폭 치유 일선에서 일하는 관계자, 가해 학생들까지 다양하게 만나봤습니다.
그 중에서도 해맑음센터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이 일에 진심인 센터 직원분들도 물론이지만, 그곳을 거쳐 간 아이들이 보이는 반응들이었습니다.
조정실 해맑음센터장은 ”큰 상처를 받아 홀로 서기 힘든 아이들을 일단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치유하고 회복시켜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정부가, 교육당국이 해야 할 역할. 그 일을, 해맑음센터가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지난 10년을 묵묵히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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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해맑음센터를 찾았습니다. 입소생들이 쫓기듯 떠난 뒤 일주일 만입니다. 건물 전체가 '출입금지' 빨간 띠가 둘러진 곳에서 이 부총리는 "학교폭력 피해와 치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임을 반드시 확립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유영 기자 [shine@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