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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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
정경심의 자택 PC는 증거능력이 있는가?
현재 진행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판에서 쟁점이 됐던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PC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상고심 진행 중인 최 의원 재판이 대법관 4명이 심리하는 '소부'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모두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전원합의체로 넘어가는 경우는 ▶헌법·법률에 위반되는 규칙·명령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소부에서 재판하는 게 적당하지 않는 경우 이렇게 3가지로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최 의원 사건은 세 번째 이유에 해당하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소부 대법관 4명 간에 의견 일치가 안 됐기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공개한 쟁점은 '정경심 PC의 실질적 피압수자가 누구인가'입니다. 왜 쟁점이 됐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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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
일단 이번에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쟁점으로 삼은 '정경심 PC'는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 자택에 있던 PC를 의미합니다. 정 전 교수가 사용했었던 '동양대 PC'와는 다르다는 점을 미리 알려두겠습니다.
지난 2019년 8월 31일 당시 정 전 교수는 자택에 있던 PC 2대에 있던 하드디스크들을 자산관리인 김경록 씨에게 줬습니다. 한 대는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가 같이 쓰던 PC였고, 다른 한 대는 아들 조원 씨가 쓰던 PC였죠. 정 전 교수는 김 씨에게 "하드디스크를 잘 챙겼다가 이 사건이 끝나면 다시 설치해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끝날 때까지 숨기라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11일 뒤인 9월 11일 검찰에 하드디스크들을 '임의제출'했습니다. 당시 조 전 장관 부부의 입시비리를 수사하고 있던 검찰은 이 하드디스크들에서 조원 씨와 관련한 허위 인턴증명서 의혹 관련 증거들을 찾아냈습니다.
현행법은 압수수색이나 임의제출로 받은 하드디스크 같은 정보저장매체에서 증거를 추출할 때는 '피압수자'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이에 따라 제출자인 김 씨에게 참여 의사를 물었고, 김 씨는 참여권을 포기 한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 증거들을 바탕으로 검찰은 조 전 장관, 그리고 허위 인턴증명서를 써준 혐의로 최 의원을 기소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넘어가게 된 논란의 시작이 이 지점입니다. 과연 김경록 씨가 하드디스크의 실질적 피압수자가 맞느냐는 것입니다. 검찰은 김 씨가 피압수자라고 보고 김 씨에게만 포렌식 참여 의사를 물었지만, 조 전 장관과 최 의원 측은 "실질적으로 압수를 당한 사람은 김 씨가 아니라 조 전 장관과 정 전 교수"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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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
조 전 장관과 최 의원 재판을 맡은 하급심 재판부들은 일제히 검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정 전 교수가 김 씨에게 하드디스크를 넘긴 순간 처분 권한도 넘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근거로 앞서 대법원이 '동양대 PC'에 대해 만든 판례를 들었습니다.
- 지난해 1월 27일 '정경심 입시비리 등' 대법원 선고
동양대 PC는 정 전 교수가 동양대에 있던 걸 자택으로 가져와 쓰다가 다시 동양대로 갖다놓은 것이고, 검찰은 동양대로부터 해당 PC를 임의제출 받았습니다. 검찰은 동양대 측을 '피압수자'로 판단했고, 동양대 측에 참여권을 보장해줬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 전 교수 측은 정 전 교수가 압수를 당한 것이기 때문에 정 전 교수에게 참여권을 보장해줬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대법원은 ▶근접한 시기까지 현실적으로 지배·관리 ▶전속적인 관리처분권을 보유·행사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경우여야만 '피의자의 소유·관리에 속하는 정보저장매체' 즉 정경심 소유 PC로 볼수 있기 때문에 한참 전에 동양대로 옮겨진 PC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김경록 씨에게 준 하드디스크 역시 동양대 PC와 같은 경우라는 게 하급심 판단입니다.
- 지난해 5월 20일 '최강욱 허위 인턴증명서' 2심 선고
- 지난 2월 3일 '조국·정경심 입시비리 등' 1심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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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연합뉴스) |
하급심에서 여러차례 '김경록이 피압수자'라는 판단을 내리고, 비슷한 사건인 동양대 PC를 두고 '동양대가 피압수자'라는 대법원 판단도 나왔는데 왜 전원합의체에서 고민을 하는 걸까요?
전원합의체 재판 당사자인 최 의원을 대리하는 대리인 측은 "하드디스크 안에 들어있는 모든 파일은 조국·정경심이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경록 씨에게 하드디스크라는 '물질'에 대한 처분권은 줬다고 하더라도 안에 들어 있는 물질이 없는 '정보'에 대한 처분권을 줬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겁니다. 김경록 씨를 피압수자로 인정한 재판부는 '물질'과 '정보' 처분권까지 모두 넘긴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있죠.
이번 정경심 PC에서 나온 하드디스크처럼 제 3자가 제출했을 경우 최초의 당사자에게 참여권을 보장해줘야 하느냐는 문제는 사법부 안에서도 논쟁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유는 '과연 제 3자에게 참여권이 보장된다고 해도 진정한 참여권이 발휘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장석준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는 지난해 '사법' 저널에 기고한 '임의제출된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전자정보의 증거능력'에서 이 같은 우려를 밝혔습니다.
- 장석준 '임의제출된 정보저장매체에 저장된 전자정보의 증거능력'
쉽게 말해 하드디스크나 휴대전화의 원래 주인은 그 안에 많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들어있기 때문에 압수수색, 포렌식 절차를 거칠 경우 참여권을 보장받으면 적극적으로 선별 작업에 나설 수 있습니다. '이건 혐의와 관련된 정보니 괜찮다', '이건 무관한 개인정보다' 라는 식으로 대응할 동기가 충분하기 때문에 참여권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죠. 반면,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하드디스크나 휴대전화를 제출하면 설령 나에게 참여권이 보장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동기가 약할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제3자가 임의제출한 정보저장매체에서 증거를 추출할 땐 반드시 제출한 제3자가 아니라 정보를 만든 당사자의 참여권을 보장해줘야 '진정한 참여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김경록 씨는 검찰이 참여 의사를 묻자 참여권을 포기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동양대 PC 역시 동양대 측은 참여권을 포기했습니다. 정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이기 때문에 참여권 사용에 적극적이지 않을 거라는 우려를 뒷받침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오는 22일부터 정경심 PC에서 나온 하드디스크의 '실질적 피압수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심리를 시작합니다. 법조계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끝나기 전 서둘러 결론을 낼 것이다 혹은 새 대법원장이 임명된 뒤부터 본격 심리가 시작돼 내년 최강욱 의원 임기가 끝난 뒤에야 결론이 나올 것이다 등 여러 전망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최 의원 임기 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조 전 장관 2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큼 파장도 작지 않을 겁니다.
한 부장판사는 "실질적 피압수자라는 건 법문에는 없고 여러 판례들로만 언급돼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