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하던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을 것”
“초등학교 6년, 인생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
“부엌 일은 나에게 운명, 자매가 힘 합쳐 이겨낼 수밖에”
“아들은 ‘큰덩이·막덩이’ 나는 ‘엄마덩이’...집밥으로 대동단결”
“육사 출신 아버지 국가유공자, 59년 만에 현충원에 모셔”
“언니의 한 벌밖에 없는 청바지 빨래... 비서 역할”
“그냥 누구나 옆집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어”
■ 프로그램: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시사스페셜)
■ 방송일 : 2023년 6월 11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 진 행 : 정운갑 앵커 (논설실장)
■ 출연자 : 양희경 배우
**기사 인용 시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시사스페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정운갑 >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바른 말도 잘하지만, 푸근한 이미지로 곁에 있으면 든든할 것 같은 배우 양희경 씨가 지난 70년을 돌아보며 살아온 날들을 책으로 엮었는데요. 양희경 씨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양희경 > 안녕하십니까.
정운갑 > 연기 인생 42년 차, 70살에 작가로 데뷔하셨습니다. 이번 책에는 부모님 이혼 얘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부엌살림을 도맡아 했던 얘기,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과정 등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겼는데요. 사실 인생사를 남들에게 다 털어놓는다는 게 쉽지가 않거든요. 이번에 모든 걸 꺼내놓기로 한 결심,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양희경 > 그런 결심을 따로 한 건 아니고요. 저보다 더한 삶을 사신 분들도 계시고 또 저의 삶을 부러워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그런데 내가 이거를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해서 쓴 글은 아니고요. 그냥 에세이를 쓰다 보니까 우리 부모님 얘기서부터 나의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 지금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까 굳이 그런 것을 감춰서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그 글을 읽으면서 조금 위안이 되는 분들도 계실 테고, 나는 너보다 더 했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테고.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술술 나오게 된 거예요.
정운갑 > 아버지가 현충원에 안장돼 있으시다고요?
양희경 > 아버지는 육사 4기생이고 훈장을 3개를 받으셨기 때문에, 39세에 돌아가셨을 때 바로 현충원으로 모셨어야 하는데, 딸 셋이 너무 어렵고 그걸 주변에서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59년을 그냥 따로 계시다가...
정운갑 > 그럼 지금 유공자가 되신 거죠?
양희경 > 네, 올해 5월 26일에 현충원 제2충원당에 모시게 됐어요. 59년 만에 자기 자리를 찾아가시게 된 거죠.
정운갑 > 6월이 호국 보훈의 달이잖아요. 6월이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나겠네요.
양희경 > 그렇게 거기에다가 모시면서 생각을 지난날의 생각을 또 하게 됐죠. 만약에 그게 순조롭게 일찍부터 됐다면 우리가 조금 덜 고생할 수 있지도 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우리가 다 언니는 72살, 저는 70살이 되고 제 동생은 66살이 되고 이 나이가 돼서 무슨 도움을 받을 일도 없는 그런 상태가 됐지만, 아버지가 제자리로 가시게 됐다는 게 굉장히 큰 의미로 우리한테 다가왔어요.
정운갑 > 그런데 그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혼하면서 새어머니와 살게 됐고, 아버지가 또 일찍 돌아가시게 돼서 다시 친 어머니와 살게 됐다고 하던데요. 이 과정을 초등학교 때 겪으셨는데, 참 많이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양희경 > 1학년 때 8살에 엄마 아버지 이혼하시고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엄마가 다시 저희를 맡아 길러주셨는데, 그 6년이 저한테는 인생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 시간을 언니와 함께 극복하고 또 동네의 친구들과 함께 극복하고, 저에게 언제나 따뜻한 밥을 차려주셨던 동네의 수많은 어머니들, 그분들 덕을 입고 잘 견뎌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중고등학교 때 왔었으면 더 혼란스러웠지 않았을까, 오히려 초등학교이기 때문에 좀 고통이 덜하지 않았을까.
정운갑 > 사춘기 전인가요?
양희경 > 네, 그렇죠. 그래도 참 우울했던 초등학교 6년이었습니다.
정운갑 > 고등학생 때는 어머니가 또 빚보증을 잘못해서 온 식구가 고생했다고 하던데요. 그때부터 양희경 씨가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부엌살림 도맡아 하셨다고요. 사실 그때가 50여 년 전이어서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다녀오면 밥하고 살림해야 하니까 ‘참 서러웠다’ 이런 생각도 들었을 것 같아요.
양희경 > 그런데 서럽다 뭐 이런 생각 전에 저희 언니는 가장이 돼서 돈을 벌어야 했고, 어머니는 그렇게 다 이제 모든 것이 폭망한 후에도 당신의 일을 계속하고 계셨어야 했기 때문에 특별히 살림할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빨래 청소 또 부엌에 가서 식구들을 위한 밥하기 이런 거는 제가 할 수밖에 없어서, 그때는 억울하다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힘들다’ 이런 생각을 했죠. 학교 다니면서 모든 것이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는 그보다 더 힘든 20대 초반을 겪었으니까, 자매가 같이 힘을 합해서 그 모든 것을 이겨 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그냥 이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내 앞에 주어진 일이구나 하는데 그때 시작했던 부엌일을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하고 있으니까 ‘어쩌면 부엌일은 나한테 운명 같은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돼요.
정운갑 > 양희경 씨는 부엌살림을 도맡아 하셨고, 언니 양희은 씨는 통기타 가수하면서 돈을 버셨다고 하던데요.
양희경 > 가장이 됐죠.
정운갑 > 양희은 씨 뒷바라지도 양희경 씨가 했다,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양희경 > 그냥 한 벌밖에 없는 청바지를 열심히 빨아서 줘야 했다든지. 된장찌개나 고추장찌개를 끓여서 열심히 식구들이 나눠 먹어야 했다든지 그런 걸로 도왔고요. 제가 결혼하기 전에는 언니의 가장 가까운 비서 역할을 제가 하다시피 했죠.
정운갑 > 이번 책의 주제로 다시 돌아옵니다. 그렇게 힘겨웠던 시간들을 버티게 해 준 것이 ‘집밥’이었다, 이런 표현을 했습니다.
양희경 > 네, 저는 그때는 그게 그걸 넘길 수 있는 어떤 다리 역할을 한다라는 생각을 못 하고 했지만, 나이 들어서 생각하니까 이게 정말 중요한 일이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고. 비록 봉지 쌀을 사고 된장찌개, 고추장찌개, 콩나물 이런 거 무쳐서 먹는 게 다였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있음으로써 가족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돈독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컸고요. 제가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게 됐을 때도 엄마라는 존재 어떤 엄마로 남아야 할까를 생각하니까... 엄마가 저는 사실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게 4년이잖아요. 인간이 기억을 할 수 있는 4살부터 8살 때까지의 엄마의 음식 생각하면 ‘엄마가 뭐 해줬는데 참 맛있게 먹었다’ 이런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아이들한테 그런 엄마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정운갑 > 사실 대부분 그런 기억들을 갖고 있지요?
양희경 > 네, 그래서 다른 건 못 해 주더라도 밥은 죽었다 깨나도 내 손으로 해 줘야겠다 이 생각을 했고요. 그 판단이 옳았다고 지금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모든 사람한테 어떠한 어려운 일이 있어도 집밥은 되도록 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정운갑 > 아들 둘을 두셨잖아요. 아들 형제를 ‘큰덩이’, ‘막덩이’ 이렇게 부른다고요?
양희경 > (웃음)저는 ‘엄마덩이’입니다.
정운갑 > ‘덩이’ 돌림이네요?(웃음) 연기 활동하면서 참 많이 바빴을 텐데. 시간을 쪼개서 그러니까 집밥을 해 주셨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아들들하고 많은 대화를 한다고 하시는데, 아이들 키울 때 집밥을 해 먹었던 그런 시간이 쌓인 덕분이 아닌가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양희경 > 그게 가장 크죠. 그게 가장 크고 저희 아이들이 저하고 같은 분야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같은 분야에서 일하니까 대화의 소재가 마르지 않죠. 그러면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오늘 이거 너무 맛있다” 이러면서, 하여튼 집밥으로 대동단결(웃음).
정운갑 > 양희경 씨 하면 목소리도 카랑카랑하고, 당차 보이고, 자존심 자신감이 넘쳐서 고생을 과연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말씀을 들어보면 힘든 시간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지난 70년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셨을 텐데,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스스로에 어떤 시간이었습니까?
양희경 > 지난 시간에 힘들고 외롭고 고군분투하던 시간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을 거다. 진심 고맙고, 그런 어려웠던 시간들이 저한테는 대단한 자양분이 돼서 사랑할 수 있었던 힘이 되지 않았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운갑 > 이번에 낸 책을 통해서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셨을까 참 궁금했습니다. 그간 하지 않았던 가족사까지 다 공개하면서, 전하고 싶은 어떤 메시지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양희경 >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보다는요, 사람이 일단 본인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는 거잖아요. 사람이 건강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먹는 음식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조금 어렵고 두렵고 해본 적이 없어서 내가 이걸 과연 할 수 있을까 라고 두려움이 많으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나도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 때 두려움으로부터 시 해서 오늘날까지 왔으니까,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을 바꿔보시면... 그리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거든요,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게 두려움을 조금씩 버리면서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면 나만의 음식, 나만의 레시피, 내가 맛있게 먹었으니까 남들하고 나누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 것들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한번 시작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운갑 >집밥을 함께 한다는 것이 앞서 말씀하셨듯이 가족 간에 중요합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가족 식구라는 게 식사를 같이하는 거잖아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을 텐데, 그중에서도 건강이라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양희경 > 그럼요, 엄청 많이 생각했고요. 저희 어머니가 사실은 지금 94세인데요, 8년 전에 일본에서 심정지가 일어나서 돌아가실 뻔했어요. 13일 만에 한국에 돌아오셔서 제가 일본 병원에 계셨을 때 병원식 그대로 무유, 무당, 무염 그 식사를 한 계속 3개월을 해 주고 병원에 가니까 모든 게 정상이 되신 거예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그러니까 그런 거는 사실은 한 번 약을 먹으면 끊을 수 없다고 하잖아요. 끊었습니다, 완전히 끊으시고 치매도 한 십 원어치 있으셨는데 정신도 맑아지고. 아, 사람의 건강은 피에 있다고 그러더니 역시 피가 맑아지는 게 모든 게 다 좋아지는구나. 그렇다면 그전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집밥의 생각을 흐트러뜨리지 말고 쭉 밀고 나가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건강한 재료, 건강한 요리법 그래서 가족이 둘러앉아서 둘이 됐든, 셋이 됐든 요즘은 우리가 식구가 같이 먹는 밥상이 사라지고 있거든요. 세 식구면 세 번 밥 차리고, 네 식구면 네 번 밥 차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한 번 차려서... 그래서 강부자 선생님은 아침 4시 반에 식사할 때도 있대요.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정운갑 > 새벽 4시 반에요?
양희경 > 4시 반, 5시, 5시 반 이렇게 드셨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식구들이 한꺼번에 둥그렇게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는 가족은 모든 문제가 건강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집밥의 중요성을 일단 재료, 조리 방법 이런 것 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 간의 소통의 시간, 식사의 시간 그런 것들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그냥 제 삶의 이야기하고 엮어서 이렇게 사이사이 넣으면서 했죠.
정운갑 > 사실, 집밥을 통한 건강은 배우님 얼굴 보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웃음) 목소리도 그렇고, 외모도 그렇고 누가 70세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사실 건강식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한 거죠. 형제로는 위로 언니, 아래로는 여동생 있으시지요?
양희경 > 딸만 셋이고요.
정운갑 > 딸 셋 집안인데 언니 양희은 씨는 다 아는 통기타 가수이고, 양희경 씨는 배우시고 그러면 막내 여동생 한 분은 어떤 일을 하는지요?
양희경 > 얘는 왜 공부가 제일 쉽고 공부가 제일 재미있었다 하는 친구. 그래서 박사학위를 받고 아동 심리학을 전공하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정운갑 > 책을 쓰셔서 작가가 됐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으세요?
양희경 > 책은 진짜 어쩌다 제 인생에 나타나게 된 거고요. 그동안 쭉 무슨 제 기록은 쉬지 않고 했던 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런 기록이 된 게 여기 다 들어가지 않았어요, 새로 쓴 거고. 그리고 저는 배우는 외울 수 있고 누군가가 필요로 하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필요로 했을 때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배우를 통해서 고스란히 그걸 보고 있는 사람한테 전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사를 잘 외우고, 작가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고, 주변 스태프이나 동료 배우들한테 피해 끼치지 않고. 그러고 그냥 누구나 옆집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 ‘저 사람은 연기를 하네’ 뭐 그런 정도의 배우로 남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운갑 > 대중과 함께하는, 대중 속에서 같이 호흡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이렇게 들립니다.
양희경 > 네, 그렇죠.(웃음)
정운갑 > 1인 가구도 많아졌고, 가족들도 각자 바쁘다 보니 혼자 밥 먹는 혼밥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가족 간의 대화가 실종된 것도 같이 밥 먹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집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의미의 식구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희경 >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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