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양산, 대통령 거부권 행사...이건 정상적인 게 아니다”
“정치는 결국 타협, 적대적 정치서 타협의 정치로 가야”
“야당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대표 기피하는 것”
“새로운 동북아 집을 짓는 데 베팅한 것”
“일본 독도 문제는 경우 없는 얘기, 센카쿠 열도는?”
“대한민국 원년? 민주 공화제 처음 선포한 1919년”
“독립정신 올바로 세우는 것이 우리나라 정체성 제대로 세우는 것”
“2세 시대 광복회 정립의 단계”
“민족정기 선양, 통일 대비, 독립 정신 승화 발전”
“이석영 할아버지 독립자금 대느라 말년에 굶어 돌아가셔”
■ 프로그램: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시사스페셜)
■ 방송일 : 2023년 6월 4일 (일요일) 오후 3시 30분
■ 진 행 : 정운갑 앵커 (논설실장)
■ 출연자 : 이종찬 광복회장
**기사 인용 시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시사스페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정운갑>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종찬>반갑습니다, 대단히 수고가 많으신데요.
정운갑>광복회장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동안 갈등이 많았잖아요. 이런저런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이종찬>네, 조금 문제가 많아서 제가 아마 나이가 많은데도 이렇게 소집을 당한 것 같습니다.
정운갑>사진이 많이 있네요. 여기 이회영 할아버지 모습이죠?
이종찬>그러니까 1919년에 3.1 독립선언 끝난 후에 1919년에 이제 북경으로 다시 망명해서 그때 북경에서 자리 잡아서 찍은 사진입니다.
정운갑>이 사진도 기억나세요? 김구 선생인 것 같은데요.
이종찬>김구 선생이시고, 1945년 10월 25일 중경서 상해로 귀국하면서 상해에서 약 2주간 머무는데 상해의 공항입니다. 네 제가 그때 이제 나가서 맞이할 때의 사진입니다.
정운갑>(오프닝) 제23대 광복회장으로 당선된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자리하셨습니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이종찬>안녕하십니까.
정운갑>광복회장 후보에 출마하면서 ‘광복회는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광복회가 시끄러웠습니다. 회장이 5번 바뀌었고 고소·고발도 많았고요. 어떤 각오세요?
이종찬>글쎄요. 제가 참 안타깝게 생각했습니다. 광복회가 사실은 애국단체 애국지사들이 만든 단체 아닙니까? 그런데 애국지사들이 거의 다 돌아가셨어요. 이제 몇 분도 안 남으셨지만 거동이 거의 불편하니까 이제 2세 시대로 넘어갔거든요. 그러면 2세 시대에는, 과거의 1세대는 그냥 존재 그 자체가 권위입니다. 당시 말하자면 독립투쟁을 했기 때문에 그러나 2세대는 그런 권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것을 다시 2세 시대에는 어떤 광복회가 돼야 하느냐 하는 것을 정립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참 어려운 시기에 제가 맡게 된 것 같습니다.
정운갑>이 회장께서 생각하는 ‘광복회의 정신’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종찬>광복회 정신은 우리 정관을 보면 말이죠. 첫째는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겁니다. 또 두 번째는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겁니다. 셋째는 우리가 독립 정신을 우리 민족정신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것이 있는데 그러니까 굉장히 이게 공적인 기능을 굉장히 강조한 것이 우리 광복회의 특징인데 너무 공적인 것에 대해서 우리가 등한시했다. 너무 사적인 것으로 넘어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운갑>대한민국 건국일에 대한 논란도 여전합니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출범했을 때를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고, 1948년 8월 15일에 주권이 회복됐기 때문에 이때를 건국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합니다. 건국일과 관련해 우리의 정통성은 어디에 둬야 합니까?
이종찬>저는 1919년이 대한민국의 원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919년까지는 독립운동을 하셔도 을사늑약 반대운동, 무슨 국치 반대운동 이런 걸 했지만 전부 일종의 왕조 시대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1919년서부터는 분명한 민주공화제로의 독립운동이 시작된 겁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인데 언제 시작됐느냐, 1919년에 처음 국민주권시대가 선언이 된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선언 자체가 중요합니다. 왜 미국도 (식민지 대표)13분이 모여서 필라델피아에서 독립 선언한 것을 독립기념일로 보듯이, 우리도 1919년에 독립을 선언한 것이 독립의 원년이다 이렇게 저는 보고 있고. 1948년에 이게 주권 회복이라고 한다면, 자칫 잘못하면 1948년에 북한도 정권을 수립했어요.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이 9월 9일에, 우리는 8월 15일에 그렇게 되면 서로 정통성이 어떤 것이 더 우월하느냐 하는 이런 문제에 걸려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1919년까지 끌어올려서 민주공화제를 제일 먼저 선포한 것이 1919년이니까 그때를 원년으로 정하는 것이 우리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데 더 우월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운갑>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이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에서 대활약했고 또 신흥무관학교는 항일무장투쟁의 산실이었는데요. 이회영 선생이 독립운동에 돈을 쏟아붓는 바람에 가족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겠습니다.
이종찬>어려움이 많았죠. 북경까지는 그래도 나중에 1920년에 일본이 대대적인 작전을 전개하기 때문에 만주가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흥무관학교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어서 이 화북으로 와서 북경에 대에 머물게 됐는데 그때가 1919년 바로 3.1 독립선언 직후입니다. 그래서 북경에서 다시 무장독립투쟁을 하기 위해서 단재 신채호 선생, 김창숙 선생 그래서 전부 합쳐서 거기서 의열단을 만들고 조선혁명선언을 하고 그래서 다시 무장투쟁을 전개하자는 것으로 시작이 됐는데 그러느라고 참 자금이 다 떨어졌습니다. 사실은 우리 둘째 할아버지 이 석 자, 영 자. 그 양반의 재산으로 사실은 아까 다 땅을 팔고 갔었는데 그 양반은 혈혈단신으로 상해로 나중에 몰려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는데 불행한 말씀입니다마는 굶어 돌아가셨습니다, 1934년에. 그러니까 그 많은 재산을 가진 그냥 열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만큼 부잔데 말년에는 상해에 있는 아주 허름한 집에서 다락방에서 굶어 돌아가셨어요.
정운갑>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성장했던 가족사가 이종찬 회장의 정치 철학이나 이념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이종찬>그런데 제가 사관학교를 들어 입학할 때도 저는 아는 사람이 없는데 광복군 하신 분들의 추천서를 받아서 갔는데, 딱 일본 지원군 출신 시험관이 “너희가, 네가 독립운동 가문의 출신이야?” 이런 얘기를 할 때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이게 독립운동을 한 것이 일종의 결격 사유가 되는구나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독립 정신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아주 한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걸 세우는 것이 저의 광복회장으로서의 제가 마지막 저의 인생에 매듭을 짓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운갑>아들인 이철우 연세대 법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과 동기동창이고 며느님은 질병관리청장입니다. 그리고 이 회장께서는 광복회장이 되셨는데, 과거 민주당에서 활동하셨잖아요. 김대중 정부 때 국정원장도 하셨고요. 정치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해서 이 질문을 한번 드려보겠습니다. 정치가 사라진 현재의 정치판, 어떻게 보고 계세요?
이종찬>조금 안타깝습니다.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모셨을 때 그분에게 정상적인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많이 느끼고 배웠습니다. 정치라는 건 결국은 타협입니다. 여와 야가 서로 다름이 있지만 결국은 화다, 화이부동이다. 그러나 다름이 있어요. 다르다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다르기 때문에 여와 야가 갈려서 서로 토론도 하고 타협도 하는 건데 이런 타협의 정치가 지금 메마르고 적대적인 정치만 남았어요. 그러니까 서로 ’너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하는 그런 적대적 정치가 대립 상태에 있기 때문에 다시 이게 타협의 정치로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운갑>‘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점을 얘기하잖아요. 말씀하셨듯이 정치가 대화와 타협의 과정인데 지금은 갈등과 정쟁만이 난무하거든요. 이건 어디에서 잘못된 겁니까?
이종찬>저는 이 잘못된 것이 다시 이것을 한 정권이 끝나면 그 정권이 새로운 정권에게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사실 그것을 부담을 주게 돼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 계속 말하자면 수사를 하고 이렇게 해서 정치가 법에 의해 정치가 지배되면 저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법을 뛰어넘는 정치로서의 존재가 돼야 이게 서로 타협이 되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이게 법적으로 재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들어갔거든요. 정치인들의 자기 관리가 첫째겠죠. 제발 법적으로 위배되는 이런 삶을 살지 말자. 요새 자꾸 무슨 정치의 타락, 돈 봉투 이런 것이 나오니까 이런 것을 극복하고 정치다운 정치에서 다시 시작하면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어떤 영역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운갑>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공식 회동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보는지요?
이종찬>저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원내대표가 당선되자마자 바로 대화하자고 그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이건 야당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실례의 말씀이지만, 이재명 대표를 기피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느껴져요. 왜냐하면 사법리스크 때문에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법리스크를 이재명 대표께서 빨리 청산하고, 정말 대표로서 사법적인 리스크는 없고 그냥 야당대표로서 존재하면 타협할 수 있는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이런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 그래서 아마 박광온 원내대표가 되자마자, 그 양반은 사법리스크가 없으니까 바로 대화하자 이렇게 이런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정운갑>윤 대통령은 ‘100년 전에 일어난 일 때문에 일본이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입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한일 외교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인지요?
이종찬>아마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과 일본이 이렇게 계속해서 견원지간으로 남으면 동북아 평화가 어렵다는 어떤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일본, 한국 이것이 전부 이제는 드골과 아데나워가 평화를 부르짖듯이 이제는 새로운 동북아의 집을 짓는 데 서로 가자 그런 뜻에서 베팅한 것으로 저는 읽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베팅을 하는데 현실 정치에서는 일본을 미워하는 혐일, 일본에서는 혐한 이런 것이 굉장히 의식이 강한데, 이것을 던지는 것은 굉장히 모험이지만 정치인은 그런 모험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운갑>일본이 강제징용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와 반성의 표현은 없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가슴이 아프다면서 우회적으로 유감을 표시했고. 문제는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이런 억지 주장과 신사참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세요?
이종찬>저는 말이죠, 윤석열 대통령이 그야말로 베팅을 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분의 말처럼 컵의 반을 채웠어요. 그 나머지 반은 일본이 채워야 할 텐데, 저는 기시다 총리가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참 가슴 아프다고 얘기를 하면서도 국가의 대표적 발언을 자꾸 기피하는 것은 그분의 이런 정치적 상황, 일본의 우익의 소리가 크기 때문에 그걸 조심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서 조금 뭐랄까 너무 인기에 영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사실, 우리 외무부가 참고 있어요. 만약에 우리 외무부가 지금 중립을 지키고 있어요.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 만약 우리 외무부가 ‘너희들이 독도를 주장하자면, 센카쿠 열도는 중국 땅이다’ 이렇게 얘기만 하면 굉장한 충격을 줄 텐데도 우리 외무부는 중립을 지키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안 하거든요. 그러나 국민이 저는 경우 없는 얘기다, 독도 문제는 경우 없는 얘기다 이렇게 저는 말씀드릴 수밖에 없죠.
정운갑>요즘 여야 할 것 없이 여러 논란에 휩싸여 있습니다. 돈 봉투, 코인, 녹취록 등등 논란이 잇따르고 있는데요. 정치는 없고 대립과 충돌만 있지 않습니까? 정치 원로로 지금의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고 보는지요?
이종찬>저는 조금 정치 없는 사람 특히 국회에 소속돼 있는 국회의원들은 저는 21대 국회가 실패한 국회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타협이라는 것이 전혀 없이 전부 일방적인 거예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법을 양산해 놓으면 대통령은 계속 거부권을 하고 이건 정상적인 것이 아니에요. 거부권이라는 것이 정말 한 회기에 한 건, 내지 두 건이 있어야지 이렇게 말이에요. 거부권을 하는 것은 이거는 입법부와 행정부가 이거 정면 대결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이 되거든요. 참으로 21대 국회는 이 실패한 국회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22대 국회는 제발, 내년에 선거가 있는데 제발 사람을 뽑을 때 이 사람이 타협할 수 있는 여야 간의 대화를 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을 여든, 야든 좀 빨리 뽑아서 타협의 정치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의회를 parliament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parlia가 뭡니까? 대화입니다. 그러니까 대화를 잃은 정치는 메마른 정치죠.
정운갑>‘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 말은 호국보훈의 날이면 자주 듣게 되는데요. 아프지만 꼭 기억해야 할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야겠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종찬>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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