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터 플래시오버' 막는 게 중요
천장에 불연재 사용하고 스프링클러 설치해야
↑ 필로티 구조 건물에 화재가 난 모습 (연합뉴스, 송파소방서) |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29명 사망, 36명 부상)
2018년 오산 원룸 화재 (18명 부상)
큰 인명피해를 낸 이 화재들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바로 필로티 구조로 만들어진 건물에서 난 화재라는 점입니다. 필로티 구조는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축양식입니다. 위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건물을 기둥이나 벽으로 들어 올려 1층을 개방된 공간으로 만든 건물을 필로티 건물이라 일컫습니다. 1층이 비어있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 원룸부터 아파트와 상가까지 다양한 종류의 건물에 적용된 건축양식입니다.
그런데 이 필로티 구조가 화재에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시작된 순간 (MBN 뉴스7) |
위 3건의 화재는 모두 1층에서 불이 시작됐습니다.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는 1층 주차장에 있던 오토바이에서 불이 나 아파트 전체로 번졌습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시작된 불이 주차된 차량으로 옮겨붙으며 폭발적으로 퍼졌고, 오산 원룸 화재는 거주자가 던진 담배꽁초가 1층 분리수거장에 불을 붙이며 시작됐습니다.
이렇게 필로티 구조의 건물 1층에서 불이 시작되면 왜 위험할까요?
①대피로를 막는 구조
여러분이 사는 필로티 건물 1층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가정해 봅시다. 불이 난 사실을 깨닫고 1층 현관으로 나와 밖으로 대피하려고 하겠죠. 하지만 원룸촌을 돌아보면 외부로 오갈 수 있는 현관이 1층의 한가운데에 배치돼있는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외부를 나가려면 무조건 1층 공간을 지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불이 나 이미 엄청난 열기와 연기로 가득 찬 이 곳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실제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에서도 주민들이 1층 현관을 통해 도망치려 했지만 불에 막히는 바람에 창문으로 뛰어내리기도 했습니다.
②연료가 가득한 공간
필로티 건물 1층엔 대부분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장엔 당연히 차가 있을 것이고 이 차에는 모두 기름이 들어있겠죠. 이 차량의 기름은 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게 하는 연료가 됩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주차장에 있는 차량이 폭발하며 불길이 더욱 빠르게 번졌죠. 또 1층엔 분리수거장이 많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쓰레기 역시 불이 시작되는 연료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현관이 1층을 지나칠 필요 없이 바로 외부로 통할 수 있는 곳에 있고, 1층에 주차장과 분리수거장이 없으면 괜찮은 걸까요?
안타깝게도 아닙니다.
필로티 구조엔 다른 문제가 있는데요. 바로 '아우터 플래시오버(Outer Flashover) 현상'입니다.
<필로티 구조 건축물 화재사례를 통해 본 Outer Flashover Mechanism 연구(노영재, 한국방재학회논문집)>에선 이 현상을 ‘천장과 반자 사이의 빈 공간이 실내와 같은 구획된 공간의 역할을 하고 가연성 반자 마감재와 단열재 등의 연소로 인한 열과 가연성 가스가 축적돼 폭발적으로 화염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 아우터 플래시오버 발생 과정 (자료 : 경기도소방재난본부) |
- 필로티 건물 1층에서 불이 납니다.
- 1층 천장 위로는 배관이나 전선이 있는 밀폐된 공간이 있습니다. 불이 천장에 구멍을 뚫고, 이 구멍을 통해 배관 등이 있는 공간으로 열기와 가연성 가스 그리고 산소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 가스와 산소가 밀폐된 공간에 가득 차면 폭발이 일어나는 데 이게 바로 아우터 플래시오버입니다.
오산 원룸 화재의 경우 분리수거장에 붙은 소규모 화재로 시작됐지만 이 아우터 플래시오버 때문에 단 91초 만에 건물 3층까지 번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현상 때문에 필로티 건물 화재는 초기 진화와 주민 대피가 어려운 화재가 되는 거죠.
↑ 가연성 소재 천장에서 플래시오버가 발생하는 모습 (자료 : 필로티 구조 건축물 화재사례를 통해 본 Outer Flashover Mechanism 연구 / 노영재) |
아우터플래시오버를 막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천장을 화재에 강한 소재로 만드는 것입니다. 1층에서 불이 나도 천장에 구멍이 뚫리지 않는다면 가스와 산소가 밀폐된 공간에 축적되지 않을 테니까요.
실제로 위 한국방재학회논문집 자료에선 '불에 강한 금속제 천장'과 '불에 약한 가연성 플라스틱 천장'을 비교한 실험을 해봤습니다. 금속제 천장은 최초 점화 후 960초까지 소실되지도 않았고, 변형되지도 않았습니다. 천장이 버텨주면서 아우터 플래시오버 현상을 막은거죠. 반면, 가연성 천장재는 최초 점화 후 34초 만에 플래시오버가 발생했고, 45초에는 더욱 강력한 두 번째 플래시오버가 발생했습니다. 천장의 재료만 달랐을 뿐인데 결과에서 커다란 차이가 나타난 겁니다.
여기에 스프링클러 설치도 효과적인 예방책입니다. 화재가 초기에 진화되면 당연히 아우터 플래시오버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테니까요.
정부도 필요성을 인정해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이후 필로티 건물의 1층 주차장에 스프링클러 설치하고 천장엔 불에 강한 불연재료 또는 준불연재료를 사용하도록 법을 개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필로티 건물은 모두 안전할까요?
안타깝게도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는 2018년에, 천장에 불연재로 사용은 2019년에 의무화가 됐습니다. 이전에 지어진 건물엔 이런 설비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심지어 여전히 5층 이하 건물의 필로티 주차장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닙니다.
이미 만들어진 건물의 안전 규제를 강화하는 법을 만들 때는
우리는 수많은 사고로 소중한 생명을 잃고도 여전히 안전과 건물주의 부담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습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