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이 형량이 경종을 울릴 형량일지 의문스럽습니다"
지난달 30일 이른바 '강남 스쿨존 사고' 가해자에 대한 선고가 나오자 숨진 피해자인 이동원 군의 아버지가 한 말입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최경서 부장판사)는 가해자 A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구형한 20년에 비하면 3분에 1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음주운전사고로 스쿨존에서 초등학생을 숨지게 한 중범죄에 비하면 너무 가벼운 형량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죠.
특히 지난 4월에는 대전의 스쿨존에서 음주운전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 양 사고도 벌어지면서 스쿨존 음주사고에 대한 엄벌 요구가 강해진 상황이었기에 이번 판결은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마침 같은 4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스쿨존 사고와 음주운전 양형기준을 신설하기도 했기 때문에 엄벌을 기대한 사람들이 많기도 했죠.
그런데 이번 판결을 뜯어보면 새로 생긴 대법원 양형기준이 오히려 형량을 낮게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 지난해 12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이동원 군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뒤 현장에 붙은 추모 메시지 (사진=연합뉴스) |
먼저, A 씨에게 징역 7년이 정해진 과정부터 살펴보죠. A 씨는 지난해 12월 2일 오후 5시쯤, 음주운전을 하다가 서울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앞 스쿨존에서 하교하던 9살 이 군을 들이받은 뒤 밟고 지나가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부가 인정한 범죄는 3가지 ▶위험운전치사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음주운전입니다. 위험운전치사는 음주나 약물을 한 상태에서 차로 사람을 쳐 숨지게 한 경우, 어린이보호구역치사는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차로 쳐 숨지게 한 경우, 음주운전은 기준이 되는 혈중알코올농도 이상으로 취한 상태에서 운전을 한 경우입니다. 위험운전치사는 '윤창호법', 어린이보호구역치사는 '민식이법'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형량을 정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건 법에 따른 형의 범위를 정하는 겁니다. '법에 적힌 형량'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형을 선고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죠. 범죄가 여러 개일 경우에는 가장 형이 무거운 범죄를 기준으로 잡습니다. A 씨에게 적용된 3가지 범죄의 형량은 다음과 같습니다.
위험운전치사 (윤창호법)
: 무기 또는 3년 이상 유기징역
어린이보호구역치사 (민식이법)
: 무기 또는 3년 이상 유기징역
음주운전(혈중알콜올농도 0.08%~0.2%)
: 징역 1~2년 또는 벌금 500만 원~1,000만 원
위험운전치사와 어린이보호구역치사의 형량이 같으니 재판부는 위험운전치사를 '제1범죄'로 정했습니다. 무기 또는 유기 중에서는 유기 징역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법은 유기 징역의 최대 형량을 30년으로 정하기 때문에 기준 형량은 3년~30년이 됩니다. 여기에 우리 형법은 범죄가 여러 개일 경우 합산한 최대 형량은 [제1범죄 최대형량 + 제1범죄 최대형량의 1/2] 까지만 선고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A 씨에게 법적으로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은 3년~45년입니다.
: 징역 3년~45년
다음으로 '양형기준'을 고려해 '권고형'의 범위를 정합니다. 양형기준을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지만 양형기준을 벗어난 형을 선고할 경우 판결문에 별도의 사유를 반드시 적어야 하는 만큼 양형기준의 '권고형'은 가능하면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 씨에게 적용된 3가지 범죄 중 양형기준이 있는 건 위험운전치사 뿐입니다. 이번에 신설된 어린이보호구역치사와 음주운전 양형기준은 오는 7월 이후 기소된 범죄에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위험운전치사
: 징역 2년~5년
어린이보호구역치사
: 없음
음주운전
: 없음
위험운전치사의 기본 양형기준은 징역 2년~5년이지만 누범이거나 난폭운전 같은 '특별가중인자'가 있으면 형량을 더 늘릴 수도 있고, 반대로 피해자에게 과실이 있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든지, 공탁 등으로 피해회복을 했다면 '특별감경인자'가 적용돼 형량을 양형기준보다 더 적게 정할수도 있습니다. 다만 A 씨의 경우 재판부는 특별가중인자나 특별감경인자가 없다고 봤으므로 양형기준은 기본 2년~5년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런데 양형기준이 있는 범죄와 없는 범죄 간에 형을 합칠 때는 양형기준의 원칙은 '양형기준이 있는 범죄의 하한만을 준수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양형기준 상한이 없어진다는 거죠. 그럼 A 씨에게 정할 양형기준은 상한이 없는 '징역 2년 이상'이 됩니다.
양형기준을 정했는데 결과가 법에 적힌 형량과 맞지 않다면 다시 법에 맞게 조정하게 됩니다. 위험운전치사의 법정 형량은 3년 이상이었죠. 그럼 조정한 최종 형량의 범위는 '징역 3년 이상'이 됩니다.
: 징역 3년 이상
재판부가 선택할 수 있는 형량은 결국 징역 3년 이상이라는 하한만 있을뿐 상한은 최대 형량인 45년까지 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선택한 형량은 징역 7년이었습니다.
↑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
3년~45년이라는 권고형 범위 중 '7년'을 정한 이유를 재판부는 선고 공판 때 밝혔습니다. "새 양형기준을 참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새 양형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사건이지만 참고해서 형량을 정했다는 거죠. 그렇다면 새 양형기준을 적용하면 어떻게 형이 정해지는지 볼까요?
일단 법에 적힌 형량을 정하는 과정은 앞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법정 형량은 변함없기 때문에 징역 3년~45년이 법에 적힌 형량의 한계입니다.
달라지는 건 양형기준 적용입니다. 새 양형기준이 없을 때는 '양형기준이 있는 범죄'와 '없는 범죄'를 합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한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범죄에 양형기준이 있으면 상한도 정해집니다. 일단 새 양형기준은 아래와 같습니다.
위험운전치사
: 징역 2년~5년
어린이보호구역치사
: 징역 2년~5년
음주운전(혈중알코올농도 0.08%~0.2%)
: 징역 8개월~1년4개월
양형기준이 있는 범죄끼리 합칠 때는 아래 원칙이 적용됩니다.
"3개 이상의 다수범은 기본범죄 형량범위 상한에 다른 범죄 중 형량범위 상한이 가장 높은 범죄의 형량범위 상한의 1/2, 두번째로 높은 범죄의 형량범위 상한의 1/3을 합산하여 형량범위를 정한다."
쉽게 말해 [제일 무거운 범죄 형량 + 두번째로 무거운 범죄 형량의 1/2 + 세번째로 높은 범죄 형량의 1/3]이 최대 형량이라는 겁니다. 그 결과는 이렇게 나옵니다
즉 신설된 양형기준을 적용해보니 재판부가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은 2년~7년 11개월로 좁아집니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3년 이상을 선고하도록한 법정 형량을 다시 적용하면 최종 형량 범위는 3년~7년 11개월이 됩니다.
: 징역 3년~7년11개월
이렇게 보면 재판부가 선고한 7년이라는 형량은 선고 가능한 최대 형량에 가까운 형 즉 재판부 입장에서는 '엄벌'을 선고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새 양형기준이 신설되지 전에는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도 있었는데 오히려 새 양형기준이 형량을 낮춘 모양새가 됐다고도 볼 수 있게 됐죠.
물론 새 양형기준이 없었다고 해서 형량이 더 높게 선고됐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양형기준이 없었을 때도 어린이보호구역치사 민식이법의 선고 형량은 그리 높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예로 지난 2020년 11월 B 씨가 몰던 화물차가 스쿨존에서 2세·0세 아이가 탄 유모차, 3세 아이와 30대 엄마를 한꺼번에 들이받아서 2세 아이는 숨지고, 나머지 피해자들은 다치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화물차 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어린이보호구역치상,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3가지 범죄가 적용됐습니다. 모두 양형기준이 없고 3년 이상 30년 이하 형 선고가 가능했지만 지난 2021년 1심 법원이 선고한 형량은 징역 5년에 불과했습니다.
형사재판을 맡고 있는 한 현직 판사는 "없던 양형기준을 신설하는 건 양형기준이 없을 때 생기는 선고형의 큰 편차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 크고,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도 고려하게 된다"며 양형기준을 새로 만드는 게 반드시 '엄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당초 어린이보호구역치사와 음주운전의 양형기준을 만든 것도 이런 목적에 따른 것이지 높은 형을 내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는 겁니다.
↑ 지난해 12월 검찰로 송치될 당시 A 씨 (사진=연합뉴스) |
사실 A 씨의 형량이 7년에 그친 데 큰 영향을 미친 건 '도주' 혐의가 무죄로 된 인정된 점도 있습니다. 검찰은 A 씨가 사고 직후 바로 현장 수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기 때문에 특정범죄가중법상 '도주치사' 혐의도 포함해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A 씨가 도주한 게 아니라고 봤습니다.
법원은 "도주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면서도 ▶A 씨의 집이 사고현장 바로 앞에 있었고 ▶A 씨는 사고를 낸 뒤 집으로 가 차고를 열고 들어갔지만 ▶ 곧바로 나와 현장으로 돌아와 주변 목격자와 경찰관에게 자신이 사고를 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 ▶사고 발생부터 A 씨가 현장에 돌아오기까지 45초밖에 걸리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도주 의사를 가지고 현장을 이탈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만약, 도주치사 혐의가 인정됐다면 A 씨의 형량은 어떻게 나왔을까요? 도주치사의 법정형과 양형기준은 앞서 인정된 위험운전치사·어린이보호구역치사보다 무겁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도주치사 역시 새 양형기준이 아닌 이전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만 재판부가 선고에 새 양형기준을 고려한 만큼 도주치사도 새 양형기준을 적용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법정형 :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양형기준 : 징역 3년~6년
이 경우 도주치사죄가 가장 무겁기 때문에 제1범죄는 도주치사죄로 바뀌게 됩니다. 앞서 본 양형기준이 있는 범죄끼리 합칠 때의 형량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면 양형기준에 따른 권고형도 이렇게 바뀝니다.
= 도주치사죄 최대형량 + 위험운전치사죄 최대형량의 1/2 + 어린이보호구역치사죄 최대형량의 1/3
= 6년 + 2년 6개월 + 1년 8개월
= 10년 2개월
즉 A 씨에게 도주 혐의까지 인정됐다면 10년이 넘는 형이 선고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이는 앞선 재판부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가중요인이 없다고 본 결과입니다.
사실 새로 만들어진 양형기준이 엄벌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사실 도주치사가 적용 여부가 중요했습니다. 새 양형기준에서 위험운전치사의 양형기준은 변화가 없었고, 어린이보호구역치사는 없던 양형기준이 새로 생긴 것이지만, 도주치사는 기본 양형기준 권고형 상한을 5년에서 6년으로 늘렸기 때문입니다. 가중됐을 경우 최대형량은 8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났죠.
기본
징역 3년~5년 → 3년~6년
가중시
징역 4년~8년 → 5년~10년
만약 도주치사가 적용됐다면 새 양형기준에 따라 더 높은 형이 선고되는 '엄벌'의 의미가 있었겠지만 A 씨에게는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검찰은 징역 7년이 너무 가볍다며 항소했습니다. 사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20년의 경우 새 양형기준의 가중치까지 최대로 한 형량인 16년 8개월보다도 높기 때문에 양형기준을 넘어선, 선고하기 쉽지 않은 형량이긴 합니다. 도주치사 적용과 양형은 항소심에서도 최대 쟁점이 될 겁니다.
↑ 지난 4월 스쿨존에서 인도를 덮친 만취운전자 차량에 배승아(9) 양이 숨진 대전 서구 둔산동 탄방중 앞 인도에 배 양을 추모하는 시민들 모습 (사진=연합뉴스) |
이번 강남 스쿨존 사고 선고를 통해 앞서 언급한 배승아 양 사고 가해자의 형량도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배 양 사고 역시 새 양형기준의 적용대상은 아니지만 재판부 재량으로 양형기준을 참고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배 양 사고 가해자에게 적용된 주요 범죄 혐의는 강남 스쿨존 사고와 같은 위험운전치사와 어린이보호구역치사, 음주운전입니다. 여기에 배 양 말고 다친 학생들이 있어 '어린이보호구역치상'이 추가됐죠.
배 양 사고 가해자에게는 기소 단계부터 도주치사혐의는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모든 범죄가 인정되더라도 선고 형량은 가장 무거운 범죄인 위험운전치사와 어린이보호구역치사, 그 다음으로 무거운 어린이보호구역치상이나 혹은 음주운전을 고려해 나오게 될 겁니다.
만약 '중대한 위법성'이나 '난폭운전' 같은 가중 요소가 없다면 양형기준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