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에 가려면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강을 건너는 순간 이승에서의 모든 시름과 기억, 추억은 모두 잊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테에는 진실을 감추고 은폐한다는 의미도 담겨있죠.
- 영화 '부당거래'(2010)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요.
이 대사처럼 자신들이 누렸던 특혜를 '특권'인 줄 아는 집단이 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져 이젠 11명이 됐죠.
당시 선관위 행동강령엔 '4촌 이내 친족이 직무 관련자면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고 돼 있었지만, 박 사무총장만 해도 이런 의무를 아예 몰랐다고 합니다.
사무총장은 장관급인데 그럼 자신이 누릴 권리는 알고, '의무'는 몰랐다는 게 되죠.
얼마나 좋은 보직이길래 선관위 일을 가업으로 이으려고 했던 걸까….
공직사회에서 선관위는 '꿀' 직장이라 불립니다.
큰 선거가 없는 해엔 업무 강도가 낮고 헌법기관이라 아무나 손대지 못하며 승진 속도도 빠른 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박 총장과 송 차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선관위는 "징계성 면직이 아니라 의원면직(본인 의사에 따른 면직)"이라고 국회에 보고했습니다.
"사퇴와 상관없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징계 또는 수사 요청 등 합당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해 놓고는, 실제론 징계 없이 '명예 퇴진'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거였죠.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규정'에 따르면 내부 감사, 조사가 진행 중인 공무원은 임의로 의원면직을 할 수 없는데,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는 예외 기관으로 돼 있거든요.
선관위는 이 와중에 또, 이 같은 '특권'을 활용하려 든 겁니다.
그럼 이들은 연금 삭감도 피할 수 있고, 다른 공직에 재임용 될 수도 있거든요.
공분이 일자 징계성 면직을 하겠다고 하지만, 국민을 바보로 아는 걸까요.
그동안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외부 감시와 견제를 피해 왔습니다.
하지만, 국가 선거를 총괄하는 헌법기관의 청렴성과 공정성이 흔들린 만큼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망각의 강'을 건넌다면 그 다음은 죽음뿐 아니겠습니까.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보는 눈 없다고 채용 세습'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