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생 이씨가 53년생 박씨로" 팔십 평생 견뎌…4·3 유족의 아픔

75주년 추념식서 첫 도외 거주 유족 사연 소개

↑ 아버지 사연 전하는 박상일씨/ 사진 = 연합뉴스

3일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 4·3으로 성이 바뀐 채 인고의 세월을 보낸 유족의 가슴 아픈 사연이 소개돼 눈물바다를 이뤘습니다.

4·3 당시 부모, 할머니, 두 형, 누나를 잃고 ‘1941년생 이삼문’이 아닌 ‘1953년생 박삼문’이라는 이름으로 팔십 평생을 살아온 어르신 이야기가 영상으로 소개된 뒤 큰아들 박상일씨가 뒤틀린 가족관계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현장에서 전했습니다.

이삼문씨는 4·3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우여곡절 끝에 전남으로 가게 됐고, 거기서 박씨 집안 호적에 올라갈 수 있게 돼 이후로 '박삼문'으로 살아왔습니다.

박상일씨는 "4·3으로 아버지 성이 바뀌면서 저도 이씨가 아닌 박씨로 살아왔다"며 “언젠가 저에게 진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는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아버지가 하도 불쌍해서 저는 그날 방구석에서 한없이 울기만 했다”고 말했습니다.

↑ 위패봉안실 찾은 유족들/ 사진 = 연합뉴스

박씨는 “가족들 발자취를 찾아 헤매다 4·3때 사망한 사람들 위패가 4·3평화공원에 모셔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며 “2016년 아버지가 66년만에 제주를 찾아 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 갔을 때 할아버지 이배근 위패와 함께 살아 있는 아버지의 위패도 있었다. 위패에 적힌 이름은 ‘이삼문’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저는 이배근 희생자의 유족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도 주민번호도 달랐기 때문”이라며 “희생자 취소 신청은 받아들여졌지만, 이배근 희생자 유족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다행히 7월부터 희생자와의 친생자 확인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저는 이배근 할아버지 후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희망했습니다.

박씨 부자는 하늘에 있는 가족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저희 왔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 없고 두려움 없이 평안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제주도 외에 거주하는 유족 사연이 추념식에서 다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제주도는 전했습니다.

사연을 들은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김누리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kr50261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