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때 북한군에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아 경찰 등에 의해 집단 학살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 유해 40여 구가 발굴됐습니다.
군용 전화선을 가리키는 이른바 '삐삐선'에 양손을 결박당하고 머리에 탄피 흔적까지 그대로인데, 유족들은 국가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이혁재 기자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기자 】
수십 여 구의 유해가 뒤엉켜 있는 참호 속.
한 백골은 팔에 이른바 '삐삐선'이라 불리는 군용 전화선이 감겨 있고, 근처엔 탄피가 떨어져 있습니다.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충남 아산에서 북한군에 부역했다며 경찰과 치안대가 지역 주민을 학살한 현장입니다.
▶ 스탠딩 : 이혁재 / 기자
- "30여 구의 유해가 있던 교통호인데요. 유해 대부분은 이 좁은 공간에서 무릎이 구부러져 있거나 앉은 자세로 발견됐습니다."
▶ 인터뷰 : 박선주 / 충북대 명예교수
- "교통호(방공호) 안에서 많은 분들이 희생당한 모습 그대로…. 감식에 의하면 20대 후반에서부터 40대 초반 정도의 건장하신 남자분들…."
부역자로 몰려 영문도 모른 채 가족을 잃고 차별을 받아야했던 유족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 인터뷰 : 김광옥 / 희생자 유가족
- "한 번도 아버지가 안 그리운 날이 없습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의 넋을 꼭 기려주시고 유가족에게 꼭 돌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장호 / 희생자 유가족
- "(아버지가) 감금됐다해서 (면회를) 가니까 이미 구타를 당해서 눈 한쪽이 빠져나오다시피…. (취직하고) 남산에 있는 반공 드라마센터에서 교육을 받고…."
당시 희생자들이 대부분 가족 단위로 살해된데다, 이후로도 피·가해자가 함께 살아 유해 수습과 발굴까진 어려움이 따랐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집단 학살된 희생자가 8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유해 발굴을 위한 추가 조사와 함께 국가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MBN뉴스 이혁재입니다. [yzpotato@mbn.co.kr]
영상취재: 이성민 기자
영상편집: 송현주
그 래 픽: 이지연
화면제공: 진실화해위원회